[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14) 상가리 – 공간 활용의 모범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가 자랑하는 천년 팽나무.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가 자랑하는 천년 팽나무. ⓒ제주의소리

아래로는 탁 트인 제주 앞바다가 펼쳐져있고, 위로는 한라산 중턱의 우거진 산림이 자리잡고 있는 마을. 한라산 북서쪽 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는 넓은 면적만큼이나 그 안에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다. 

상가리의 설촌 유래는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300년대 고려 공민왕 시절 봉수대가 설치됐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무려 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이다.

마을의 옛 지명은 '더럭'이다. 더할 가(加), 즐거울 락(樂)의 한자표기가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더럭의 유래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름다운 무지개색 학교 건물이 CF에 등장하면서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해 최근 본교 승격의 기쁨을 누린 더럭초등학교는 상가리 주민들의 요람이다.

상가리는 옛부터 '선비마을'로 정평이 나있다. 예로부터 학문을 수학하던 하운암은 주민과 예술인이 화합의 장이다. 구불구불한 돌담길은 옛 제주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도내 최고령 장수목인 천년 팽나무는 마을의 자랑거리가 됐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전경.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전경.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상가리는 공간 활용과 주민 간의 조화로운 공존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리사무소를 중심으로 한 불과 반경 100m 안의 마을 부지에는 마을회관과 경로당, 게이트볼장, 어린이놀이터 등 문화·체육시설이 한 자리에 위치했다.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오후 시간대면 시설 이용객들이 북적이곤 한다.

마을은 주민들을 위해 기꺼이 '공간'을 내주었다. 혹자에게서 "창고 하나 지어 임대를 줘도 수익이 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은 보다 큰 가치를 지향키로 했다. 옛 비료창고를 뜯어고친 문화곳간이나 수백평 부지를 기꺼이 내준 운동장 등은 그 자체가 삶을 위한 복지다.

잔디광장 한 켠에는 시골 마을 단위로 들어설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돼 있다. 누군가는 '아이가 없는 마을에 놀이터가 무슨 소용이냐'는 논리를 펴겠지만, 상가리 주민들은 '아이가 놀 곳이 없는 마을에서 아이를 낳겠느냐'는 사고로 접근했다.

상가리의 유휴시설은 주민들은 물론, 인근 마을 주민들도 애용하는 공간이다. 이웃을 초대하는 상가리 주민들은 자연스레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단다.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주민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애월읍 상가리 ⓒ제주의소리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 주민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애월읍 상가리 ⓒ제주의소리

상가리는 타 지역보다 고령층 인구비율이 높은 곳이다. 지난해 기준 850여명 주민 중 고령화 비율이 30%이상이고, 80대가 넘는 초고령 주민도 전체 10%를 넘어서고 있다. 최근 마을은 이러한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복지서비스의 일환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한 '마을 공동세탁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기존 주민과 정착 주민 간의 공존 역시 마을이 추구하는 주된 가치다. 일부 다른 마을에서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주민 간 갈등은 상가리에서 만큼은 남의 일이다. 

변태주 상가리장. ⓒ제주의소리
변태주 상가리장. ⓒ제주의소리

기존 주민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정착 주민 역시 능동적으로 마을의 대소사에 참여하곤 한다. 마을 내 문화관리팀장 등을 정착 주민에게 맡기며 재능기부를 이끌어내는 등은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변태주 상가리장은 "마을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편안하게 삶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주민들의 공감대가 모였다"며 "마을에 큰 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령 등을 고려한 다양한 공간을 조성한 것도 살고싶은 마을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변 이장은 "건물을 올리고, 큰 예산을 들여 만드는 관광시설은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누구나 찾아와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살아가는 삶이 자원이 되는 마을을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다졌다.

상가리는?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는 제주시 서쪽 16km에 위치한 마을로 해안가로부터 중산간 지역까지 길게 뻗은 형세를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인근에 애월리, 하가리, 소길리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지역 방문객은 물론, 정착인구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구는 지난해 기준 420여가구에 830여명으로, 최근 이주 인구가 크게 늘어나는 지역 중 하나다. 반면, 고령화 비율이 30% 이상으로 지역의 인구소멸 속도 역시 높은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은 높낮이에 따라 시점이 바뀌고, 풍광이 변화무쌍한 곳으로,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싫증나지 않는 곳이다. 지리적 특성이 큰 자산으로, 곡선이 지닌 공간적 미학이 아직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마을이다.

임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제주도내 최고령 보호수인 '천년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 700여년 전 상가리가 형성될 당시 팽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폭낭거리'로 유명했으며, 구석구석 나무가 쉴 곳을 내어주는 마을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