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8) 어린 각시 달래려 하면 주머니에 엽전 담아서 생글생글 돌린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어린 각씨 : 젊은 아내, 젊은 여자
* 달래쟁 허민 : 달래려면
* 두리중치 : 호주머니
* 사슬돈 : 엽전
* 담앙 : 담아서, 넣어서

남편으로서도 어린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재력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행여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잘 따르라는 심중을 표현함이다. 사진=픽사베이
남편으로서도 어린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재력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행여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잘 따르라는 심중을 표현함이다. 사진=픽사베이

젊은 아내에게 호감을 사려면 뭐니 뭐니 해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것 이상이 없다는 말이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 가만있으면 누가 알겠는가. 견물생심이라고,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는 구체적인 술수를 쓰고 있다. 

주머니에다 엽전을 잔뜩 담아서 생글생글 웃으며 눈앞에서 돌리고 있지 않은가.

말로 하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다. ‘이것 보아라. 내가 이래 봬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네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하는 것이다.

돈 많이 가진 남정네를 좋아하지 않을 여자가 있으랴. 더욱이 아직 혼전의 규수라면 돈주머니 돌리는 모습에 홀딱 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여자의 심리를 꿰차고 하는 행위다. 

그 아내(여자), 남편이 돈이 있으니 평생 고생하지 않고 살게 됐다는 미더움이 생겨 더욱 고분고분 순종할 것임은 말할 것이 없다.

남편으로서도 어린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재력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행여 헛된 생각을 하지 말고 잘 따르라는 심중을 표현함이다.

주머니를 뜻하는 ‘두리중치’와 엽전을 뜻하는 ‘사슬돈’은 그리 흔히 쓰이지 않던 우리 방언이라 눈길을 끈다.

언뜻, 소극(笑劇)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이 해학적이다. 한 남자가 여인 앞에서 동전 주머니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덩실 더덩실 흥겹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돈만 가졌다고 만사 해결이 아니다. 돈주머니를 돌리며 한바탕 춤추는데, 마음을 열지 않을 여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옛날 우리 서민층의 소박한 삶의 한 단면을 대하는 느낌이다. 남편이 환심을 사려 하는 마당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어린 그 아내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질 것이고, 그날 저녁 밥상이 산해진미로 푸짐할 것이 틀림없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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