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142) sacrifice, victim 

sacrifice [sǽkrǝfàisǝr] n. 희생(물)
victim [víktim] n. 희생(자), 피해자

하간일에 콤콤허지 못헌 탓
(매사에 꼼꼼하지 못한 탓)


부산지역의 주요 연대체인 부산민중행동(준), 사회대개혁부산운동본부가 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에서 윤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부산지역의 주요 연대체인 부산민중행동(준), 사회대개혁부산운동본부가 8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태원 참사에서 윤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sacrifice는 sacred “신성한(=holy)”과 fic “만들다(=to make)”의 결합이다. 라틴어 facere의 한 형태인 이 fic에서 나온 낱말로는 fiction “소설”, efficient “능률적인”, deficient “결함이 있는” 등이 있다. sacrifice의 어원적 의미는 “(신에게 올리는 제사의 제물로) 신성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한자어(Chinese) ‘희생(犧牲)’은 그런 제사에 올리는 신성한 제물이 주로 ‘살아있는(living) 소(牛)’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victim도 그 어원은 불분명하지만, sacrifice처럼 “희생제물(living creature killed and offered as a sacrifice to a deity)”의 뜻으로 쓰였다. 다만 victim의 경우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여러 가지 사고(accident)나 사건(incident)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the injured)”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자연재해(natural disaster)로 인한 피해자나 코로나 피해자뿐만 아니라 전쟁 피해자, 조난자들(survivals)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이태원 참사(disaster)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분향소(group memorial altar)의 현판 문구가 '이태원 사고 사망자'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바뀌면서, 특히 ‘사망자(the deceased)’가 ‘희생자’로 바뀌면서 또 소모적인(wasteful) 논쟁이 일고 있다. 뒤늦게 정부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commemoration)의 의미를 담아 ‘희생자’로 바꾼다고 했지만, “그게 어떻게 희생인가?”, “희생이라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다는 것인가?”,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갖가지 의구심(doubt or suspicion)들이 쏟아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로는 victim이라 표기되면 끝나는 문제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사망자’니 ‘희생자’니 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가? 거기에는 일단 언어적 차이(linguistic difference)가 있다. 영어와는 달리 우리말에서는 ‘희생’이란 명사(noun)에 대한 동사(verb)로 ‘희생하다’와 ‘희생되다’가 있고. 거기에 기반해 ‘--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나 ‘--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이나 모두 ‘희생자’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이므로 이런 경우는 ‘사망자’, ‘피해자’, ‘희생자’ 등으로 부를 수 있는데, 왜 애초부터 추모의 의미를 담아 ‘희생자’로 한다는 지침(instructions)을 내리지 못하고 ‘사망자’를 ‘희생자’로 한다는 번복 지침을 내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 그 의도성을 의심(doubt or suspicion)하는 정치적 억측(political speculation)이 있지만, 서울시장의 공식 사과(apology) 이후 배포된 보도자료(press release) 등에서부터는 이미 ‘희생자’로 표기해왔기 때문에 그런 억측들은 좀 과한 감이 있다. 

오히려 문제는, 쓸데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정부의 꼼꼼(scrupulous)하지 못한 일처리다. 이럴 때는 당연히 가치중립적인(value-neutral) ‘사망자’를 써야 한다고 섣불리(rashly) 판단하면서 국민정서(national sentiment)를 쉽게 생각하는 마인드가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도 꼼꼼하지 못하면 종종 오만하다는(arrogant) 소릴 듣게 되지 않는가. 정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지향한다는 현 정부도 ‘오만한 정부’라는 질책을 받지 않으려면 효율성(efficiency)만 내세울 게 아니라 그 실천 과정(process)에서 매사 꼼꼼한 일처리를 보여야만 한다. 공복(public servant)으로서의 국민을 위한 희생(sacrifice)과 배려(consideration)는 거창한 구호(grand slogan)가 아니라 바로 그런 꼼꼼한 태도에 담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공직자들은 물난리가 나거나(get flooded) 가뭄이 들어도(have a drought) 그 모두가 자신의 부덕(lack of virtue)의 소치라며 사의(their intention to resign)를 표하곤 했다. 그 정도의 무한책임 의식(unlimited sense of responsibility)을 바라진 않지만, 적어도 공직자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irrespective of rank) 이번 10·29 참사의 희생자들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꼼꼼히 챙기려는 희생정신(spirit of sacrifice)의 결여에서 나온 희생자들임을 뼈저리게 통감해야 한다(regret bitterly).

Good manners are made up of petty sacrifices.
(좋은 예절은 자그마한 희생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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