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9) 어머니는 배고파서 죽고, 아이는 배 터져 죽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1970년대 제주에서 촬영한 사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아이들을 태운 손수레를 끌고 있다. / 사진=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1970년대 제주에서 촬영한 사진.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아이들을 태운 손수레를 끌고 있다. / 사진=서재철, 제주학아카이브

* 배 고팡 : 배고파
* 배 터졍 : 배 터져

풍요로운 시대라 귀천을 모르니, 이 속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리라. 옛날 못 살던 시절 얘기다. 조팝 보리밥도 없어서 못 먹었던 때가 있었다.

들에 가 찔레의 새순을 뜯어 먹고 삘기를 뽑아 먹으며 곯은 배를 속였다. 보리밭 옆을 지나다 설익은 보리 이삭을 서리해 꺾어선 손바닥에 넣고 보며(비벼) 먹던 게 그냥 일이 아니었다. 배에서 밥 달라 아우성치니 침 흘리다 하던 짓이었다.

밭에 잡풀로 나는 무릇을 파다 큰 무쇠솥에 넣고 끓여 먹기도 했다. 원래 끈적진 거라 끓여 내면 풀풀했다. 

어른들은 둥근 상에 둘러앉아 숟가락질을 하는데, 차마 입속으로 넣지 못해 눈치를 보던 일이 기억 속으로 떠오른다. 지독히 시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 만하다며 “우리 오널 점심이랑 감저 서너 개 먹엉 말게 이?(우리 오늘 점심이랑 고구마 서너 개 먹고 말자이?)” 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귓전으로 내린다.

그러면서 당신은 고구마 두 개, 나와 동생은 네다섯 개. 그것도 당신은 가늘고 작은 걸 드시면서 우리에게는 굵고 큰 것을 앞으로 밀어 놓곤 하셨잖은가. 오랜만의 회상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어머니 사랑은 끔찍했다. 당신은 굶어도 아이는 굶기지 않았다. 오직 “먹으라, 먹으라”고 하는 게 입에 달고 있던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배고파 죽고, 그 아이는 배가 터져 죽는다 한 비유다. 슬픈 시대의 슬픈 언어로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아마 모성애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속담이 아닐까 한다. 자식으로서 가장 경모(敬慕)해야 할 분이 어머니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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