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규의 film·筆·feel] (31) 여순 벙커

사진작가 양동규. 그의 예술은 ‘학살로서의 4.3’을 살피는 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를 든 그의 시선은 늘 제주 땅과 사람에 고정돼있다. 그러나 섬의 항쟁과 학살이라는 특수성의 조명은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평화라는 보편성으로 확장하기 위한 평화예술의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실천적 작가다. 매주 한차례 [양동규의 필·필·필 film·筆·feel]을 통해 행동주의 예술가로서의 그만의 시각언어와 서사를 만날 수 있다. / 편집자 글 


벙커-국군 제14연대 주둔지_2022 / ⓒ2022. 양동규<br>
벙커-국군 제14연대 주둔지_2022 / ⓒ2022. 양동규

여순순례를 떠났다. 첫 방문지는 벙커였다. 일제가 만든 벙커다. 벙커는 국군 14연대가 있었던 곳에 있다. 14연대가 있던 곳은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곳이 되었다.

국군 14연대는 1948년 5월 4일 여수에서 창설되었다. 그해 10월 19일, 14연대 군인들은 제주도 인민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미 제주도 토벌을 위한 훈련도 끝냈다. 오전부터 제주도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14연대 소속 군인들은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호소문을 내걸고 봉기했다. 동포를 학살하라는 명령에 대한 거부였다. ‘부당하므로 불이행’한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군인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이라 칭하며 그들이 일으켰던 항쟁이 정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거부, 부당함에 대한 불이행의 결과는 참혹했다. 14연대 군인들 중 대부분은 소작농 출신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미군정에서까지 혹독한 수탈을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명령을 거부했던 이들은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14연대 군인들이 봉기를 일으키기 하루 전 1948년 10월 18일, 제주도 해안은 봉쇄되어 물 막은 섬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여순을 완전 진압한 군인들은 11월 13일 제주도에서는 초토화 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 뒤,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렇게 제주섬은 불타는 섬이 되었다.


# 양동규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20대에 흑백카메라를 들고 제주를 떠돌며 사진을 배우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골프장 개발문제, 해군기지 건설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접하며 그로 인해 변화되어가는 제주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사진과 영상을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섬의 하루」, 「잼다큐 강정-범섬에 부는 바람」 등을 연출, 제작했다. 개인전 「터」(2021), 「양동규 기획 초대전 섬, 썸」을 개최했고 작품집 「제주시점」(도서출판 각)을 출판했다. 제주민예총 회원으로 「4.3예술제」를 기획·진행했고 탐라미술인협회 회원으로 2012년부터 「4.3미술제」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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