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0) 초저녁 잠에 빠지면 부자로 산다고 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어스름 좀 : 초녁 잠
* 미치민 : 빠지면
* 부재로 : 부자로
* 산댕 헌다 : 산다고 한다

초저녁 잠에 빠지는 사람의 주변은 어수선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련, 어쩌면 바지런한 사람이 초저녁 잠에 미치는지도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초저녁 잠에 빠지는 사람의 주변은 어수선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련, 어쩌면 바지런한 사람이 초저녁 잠에 미치는지도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유난히 초저녁 잠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해가 저물어 어스름이 되면 식구들 밥상을 받고 앉아 저녁을 먹는다. 한창 밥을 먹는데 갑자기 툭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난다. 실수한 게 아니라 졸려서 그만 떨어뜨린 것이다.

식구 가운데 초저녁 잠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특히 갓 집안에 시집 온 새아기일 수도 있다. 

하루 동안 일에 쫓겨 몸이 몹시 고단하기도 했겠지만, 생리적으로 초저녁에 밥상만 받아 앉았다 하면 꾸벅꾸벅 고개 숙여 절하는(?) 사람이 있다.

예로부터 ‘초저녁 잠에 미친 사람’이라 해서 좋게 보았다. 일찍 잠을 자면 그만큼 이른 시간에 깨게 마련이다. 새벽부터 달그락 달그락 세간을 만지는 사람이 다름 아닌 초저녁 잠 미친 사람임에 거의 틀림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이 일 저 일 가사(家事)를 살피기 좋은 시간이 아닌가. 아니다. 하다 못한 일을 마무리 짓거나 하루의 계획을 세워 가지런히 일 처리를 하게도 된다. 

그러니 초저녁 잠에 빠지는 사람의 주변은 어수선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련, 어쩌면 바지런한 사람이 초저녁 잠에 미치는지도 모른다.

‘어스름 좀에 미치민 부재로 산댕 헌다’

재미있는 속담이 아닌가. 우리 제주 선인들, 칭찬하느니 부지런한 사름, 축내지 않고 알뜰허게 살림 잘 사는 사름이었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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