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8) 정선용,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사진=알라딘
사진=알라딘

불교에서 사람은 생로병사를 거친다고 했다. 태어나 늙어가며 병들어 죽음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를 일러 사상四相이라고도 하는데,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생겨나면(生), 머물다(住), 변화하고(異), 결국 소멸한다(滅)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실재가 아닌 상相, 즉 감관을 통해 접하는 일시적인 표상(니밋타, nimitta)에 불과하니 괜히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지 말고 벗어나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 중생들이 그리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장자莊子처럼 삶과 죽음이 하나라 하여 마누라가 죽었는데도 동이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사실 장자도 처음에야 어찌 슬퍼 탄식함이 없었겠느냐(何能無慨然)고 문상 온 혜자에게 말했다.(장자, 지락至樂) 이후의 깨우침은 장자의 몫이고, 슬퍼 탄식함은 중생의 몫이다.

사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원래 정해진 것이니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것이 또한 죽음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죽음은, 특히 허망한 죽음은 통곡케 한다. 얼마 전의 죽음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어 대신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관련한 시집을 살펴보고자 한다.  

외로운 밤 찬 서재에서 당신 그리오

언젠가 책 한 권을 얻었다.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는 정선용이 엮고 중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다 유명을 달리한 이미란이 찍은 사진이 함께 들어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두 사람은 부부이다. “남겨진 내가 이제 아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내와 약속하였던 책을 엮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엮었다.” 2011년 7월 한여름 서재에서 남편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아내를 잃은 홀아비의 참담한 심정을 읊은 노래, 이를 도망시悼亡詩라고 한다. 망자를 애도하는, 특히 자신의 반려伴侶를 잃은 이의 애달픔을 표현한 시이다. 중국 서진西晉 시대 하남 출신으로 총명하고 시재가 뛰어날 데다가 시내를 외출했다고 돌아오면 뭇 부녀자들이 던진 과일이 그가 탔던 수레에 가득했다고 할 정도로 미남자였던 반악潘岳이 지은 세 수의 「도망시」에서 비롯되었다. “자나 깨나 언제나 잊으리, 깊은 슬픔 날마다 쌓여만 가는데(寢息何時忘, 沉憂日盈積).” 오매불망寤寐不忘은 살아생전에만 그리한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여전하다. 그 이전에는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시가 없었으니 그가 「도망시」의 첫 번째 시인인 셈이다. 이후 원진元稹, 백거이白居易, 소식蘇軾, 육유陸游 등이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시를 쓰면서 하나의 시체詩體가 되었다. 

책에는 「장부의 눈물」이 86수, 「여인의 마음」이 67수, 전체 153수의 시가 실려 있다. 작가는 '동문선東文選'을 편찬한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용재慵齋 성현成俔,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서화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등 이름을 대면 익히 알 수 있는 조선시대 문인, 사대부를 비롯하여 영조 시절 제주에 유배 온 회헌晦軒 조관빈趙觀彬, 생평이 거의 알려진 바 없는 송월헌宋月軒 임득명林得明 등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짝을 잃고 서러움에 겨워 읊조림을 남겼다. 

장부丈夫의 눈물

「장부의 눈물」에 실린 시들을 살펴보면, “홀연 두 눈에 눈물 주루룩(忽然雙涕垂)”, “남쪽 바라보며 눈물 가슴을 적시네(南望淚沾臆)”, “늙은이의 눈물 빈 사당에 흩뿌리네(老淚瀉空堂)” 등등 구구절절 눈물이다. 심지어 그 눈물이 빈 뜨락에 추적대는 가을밤의 비랑 섞여 흩뿌리다 못해 어찌나 줄줄 흘려댔는지 물결이 생길 정도이다(空階秋夜雨, 和淚洒淋浪)60쪽. 점잖은 사대부 문인들께서 남존여비, 부부유별의 시퍼런 강상綱常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아무리 사랑하는 부인이 세상을 떴다고 할지라도 이렇듯 공공연하게 눈물 흘리며 비통해도 되는 건가? 그리해도 된다. 중종 시절 일어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죽은 기묘명현己卯名賢 가운데 한 사람인 덕양德陽 기준奇遵은 유배지인 함경도 온성穩城에서 이렇게 읊었다. 

빙설 같은 자태 지닌 곱디고운 당신이여,
지난날에 우리 젊어 부부 인연 맺었었지.
가난 속에 오랜 세월 금슬처럼 지내면서,
성품 행실 정숙하고 고결한 걸 알았다네.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살자 하였는데,
하루아침 몸 죽어서 집안이 다 엉망됐네.
이 세상서 다시 당신 얼굴 볼 수 없거니와,
지난해의 이별 바로 영영 이별 되었구려.
장부 본디 아녀자와 같이 슬퍼 않지마는, 
당신 생각 하노라니 간담이 다 끊긴다오. 
- 옥중사가獄中四歌

선비의 속내

장부가 어찌 아녀자처럼 질질 짜느냐는 속내가 있긴 하나 당신이 사라지니 집안이 다 엉망이 되고 간담肝膽이 죄다 끊어지는 듯 고통스러운데, 어찌 울음이 아니 나오겠는가? 어쩌면 고결과 청렴의 상징처럼 보이는 조선 선비의 내심은 온통 수심과 울음이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선비란 현달顯達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임금의 신하요, 비미卑微하면 공부 외에 생업이 없으니 궁핍하기가 그지없다. 게다가 조선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툭하면 붕당朋黨으로 뭉쳐 환국換局을 거듭하였으니 폄적貶謫이니 유배流配를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입신양명立身揚名과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사명이 오히려 선비들의 삶을 왜곡시킨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남아 대장부로 태어났으니 관직에 올라 그 이름이 청사靑史에 남아야할 것이다. 중국 명나라 관리들은 출근할 때마다 유언장을 써놓고 조정에 들어가선 임금에게 “아니 되옵니다.” “통촉洞燭하여 주옵소서.”를 습관처럼 읊조렸다. 그러다 곤장 맞아 장독杖毒으로 인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적어도 청사에 이름이 남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 관리가 되면 오히려 가족들은 불안하다. 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구절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다. 

우리 둘이 부부 인연 서로 맺어서,
지금까지 몇 년 세월 함께 하였나.
이곳저곳 벼슬살이 떠도는 나를,
원망하며 지낸 날이 정말 많았지.
-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살아있는 나는 숨만 붙어있다오」, 원제 「도망悼亡」 50쪽

우리 둘이 부부 인연 맺은 지가 오십여 년,
이렇게도 급작스레 영영 떠날 줄 몰랐네.
아내에게 평상시에 잘해 주지 못했는데,
공경스레 날 대하던 아내 모습 사라졌네.
……
- 서거정, 「갑작스레 사별할 줄 내 몰랐어라」, 원제 「도처悼妻」, 22쪽

대개 보면 부인네들 타고난 성품, 
가난하면 슬퍼하기 쉬운 것인데,
불쌍하고 불쌍해라 나의 아내는,
곤궁해도 얼굴빛이 늘 온화했지. 
대개 보면 부인네의 성품이란 건,
영광 크게 누리는 걸 좋아하는데,
불쌍하고 불쌍해라 나의 아내는,
높은 벼슬 부러워한 적이 없었네.
- 소암 임숙영任叔英, 「당신의 말 나의 귓전 맴돌고 있네」, 원제 「곡내哭內」, 63쪽

난 어쩌란 말이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죽은 이의 육신은 이미 흩어지고 영혼 또한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시는 아내가 없는 홀아비 신세에 대한 한탄과 그리움에 겨워 이루지 못할 기약으로 이어진다. 

혼자된 몸 매 밤마다 잠을 들지 못하거니,
늙을수록 이내 마음 스스로 더 불쌍타오.
오십여 년 함께 했던 좋은 벗을 잃었거니,
당신의 그 잔소리를 듣지 못해 처량타오.
- 저촌, 심육沈錥, 「당신의 그 잔소리가 되레 그립소」, 원제 「도망」, 118쪽

……
어린 아들 무슨 수로 키울 것인가,
이내 몸이 폭삭 늙은 거를 알겠네.
어느 누가 장부의 한 불쌍해 하리,
분명코 내 지음 친구 잃은 것이네.
- 기암 정홍명鄭弘溟, 「갈수록 더 애통한 맘 불어난다오」, 원제 「도망」, 68쪽

눈물이 마르고 속도 타네

아내를 잃고 흘리는 눈물에는 내자內子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것과 더불어 홀로 남은 자신의 그리움과 서러움이 곁들어 있을 터이다. 편찬자는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 아내가 겪었을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자신을 살갑게 해주지 않는 나에 대한 서운함이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나는 못난 남편이었습니다.”(167쪽)라고 하면서 “남정네의 무심함에 대한 서운함, 이별에 따른 아픔, 친정에 대한 그리움”이 주된 내용인 「여인의 마음」을 노래한 시를 수록했다. ‘난 어쩌란 말이오?’라고 서러움을 토하는 남편에게 그녀들이 말한다. 

소첩에게 금비녀가 하나 있지요.
시집올 때 머리에다 꽂고 온 거죠.
오늘 길을 떠나가는 님께 드리니,
천리 먼 곳 있어도 절 생각하세요.
- 난설헌蘭雪軒, 초희楚姬, 「금비녀」, 원제 「효최국보체效崔國輔體」, 221쪽

요 근래에 님께서는 잘 지내고 계시나요?
깁창 비친 달 밝아서 저는 시름 깊답니다.
님께 가는 제 꿈길에 오간 자국 남는다면,
님 집 앞에 있는 돌들 반은 모래 됐을 걸요.
- 옥봉 이숙원李淑媛, 「꿈속의 만남」, 원제 「자술自述」, 213쪽

전자는 선조 시절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쓴 3수 가운데 첫 번째 시이다. 남편 김성립金誠立이 멀리 떠나는 길에 금비녀를 주어 보내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후자는 동시대 여류시인으로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지낸 조원趙瑗의 소실인 이옥봉의 시이다. 꼿꼿하기가 예사롭지 않았던 남자 조원은 남편과 사별한 그녀를 소실로 맞아들이면서 그녀의 시적 재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삼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나 그녀는 몇 번이고 그러마 하고 약조했다. 그러다 사달이 나고 말아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어쩌면 헤어진 후에 쓴 시인 듯한데. 읽어보면 절절하기 그지없다.

이렇듯 규방의 한, 즉 부녀자나 처녀가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거나 한탄하는 시를 규원시閨怨詩라고 한다. 여성이 쓴 경우도 있으나 남성이 쓴 것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당대 시인 왕창령王昌齡의 「규원」이 대표적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에도 남자들이 쓴 규원시가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다. 

적적하고 적적할사 텅 빈 규방에,
비단 이불 어느 누굴 위해 펴리오.
깊은 밤의 그리움에 사무친 한을,
오로지 저 등불만이 홀로 알리라. 
- 백운거사, 이규보, 「등잔불」, 원제 「하일즉사夏日卽事」, 173쪽

님 계신 데 겨울옷을 못 보냈기에
밤 깊도록 다듬이를 치고 있네요.
저 등불은 첩 신세와 비슷하여서
눈물이 다 마르고서 속도 타네요. 
- 괴애 김극검金克儉, 「다듬이질」, 원제 「규정閨情」, 186쪽

그러나 역시 여인이 직접 쓴 규원시만 못하다. 

거울 속의 병든 나를 뉘 가여워해 주리오.
원망 탓에 생긴 병은 약으로 못 고친다오.
다음 생에 님과 내가 바뀌어서 태어나면, 
오늘밤이 애타는 맘 님도 그땐 아실 거요. 
-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 「애타는 맘」, 원제 「기정寄呈」, 262쪽

다시 죽음을 생각하다

누구나 태어나면 살다 죽기 마련이다. 또한 누구나 천수天壽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삶과 죽음은 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는 요절하고 또 누구는 장수한다. 공자의 제자로 안빈낙도의 표상이 되었던 안회顔回는 32살에 세상을 떴고, 중국 위진魏晉 현학玄學의 대표자로 현묘하여 어렵기 그지없다는 삼현三玄(노자, 장자, 주역)에 주注를 달았다는 천재 왕필王弼은 겨우 23살에 죽었다. 그런가하면 춘추시대 악명 높던 도척盜拓은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하며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천수를 누렸다. 무엇 때문에 그리 일찍 죽고 또 무엇 때문에 장수하는 지 알 수 없다. 다만 요절이든 장수이든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안타깝다. 병든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나서 싸운 것도 아닌데, 참혹한 사태로 허망하게 사라지는 죽음은 더욱 더 그러하다. 노래하는 이가 이렇게 울부짖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차마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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