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21) 교사의 정치참여를 허하라!

19일 민호군의 가족들이 헌화가 끝난 뒤 민호군 조형물 앞에 서 있다. 민호 군의 어머니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민호군의 손을 잡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일 민호군의 가족들이 헌화가 끝난 뒤 민호군 조형물 앞에 서 있다. 민호 군의 어머니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민호군의 손을 잡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토요일 오후. 외출하는 나에게 딸들이 어딜 가는지 묻는다. 나는 무심코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 추모제에 가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되묻는다. “현장실습이 뭐야?”, “그런데 왜 죽었어?” 딸들의 질문에 답이 궁해진다. 현장실습을 하는 학생이 왜 홀로 공장에서 일했는지, 일하다 죽었는데 왜 노동자가 아니고 학생인지. 꼬리를 물고 우왕좌왕 헤매는 내 말들을 보며 현장실습이 얼마나 엉터리 제도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홀로 추모제에 참석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둔 5월 어느 날 민호군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광수 후보의 사무실을 찾아왔는데 근처인 것 같은데 찾지 못하겠다고, 혹시 알고 있는지 물었다. 주변에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무슨 일로 찾아갔는지 물으니 교육감이 되면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으러 갔다고 답했다. 또 다른 민호가 생겨나지 않도록 나쁜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그 아버지를 보며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뒤 만사 제쳐두고 사람들에게 학교현장실습의 문제를 알리고, 산재현장으로 국회로, 선거철에는 후보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며 부끄러워진다. 이런 노력이 모여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김광수 교육감은 민호군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올해부터 학교현장실습에 청소년들을 보내지 않고 있다. 전라남북도와 제주도 이렇게 3곳만 학생현장실습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5주기 추모제에서 민호 아버지에게 제주에서라도 현장실습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 좀 위로가 되었는지 물었다. 담담히 다른 지역에서 계속 사고 소식이 들려와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신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질문한 내가 부끄럽다. 

나는 이렇게 이뤄야 하는 정의라면 사양하고 싶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뤄내는 정의. 그 죽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가족이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온 삶을 바쳐 이뤄내는 정의라면 반대하고 싶다. 역사의 발전이 수많은 죽음들에 빚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는 그 죽음을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도 예견된 죽음들 앞에서 비용이니 관행이니 효율성이니 온갖 이유를 대는 이들은 누구인가?

교육현장의 나쁜 제도가 수십 년 동안 존속되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교사의 정치참여를 막는 현 제도가 한몫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교원의 정치기본권이 보장되는 않는 나라는 OECD 38개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작은 나라들까지 교원의 정당가입과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교원의 정당가입과 활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학교 현장이 정치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유독 한국은 OECD 38개국 중 교사의 정치참여를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시민의식을 소유한 나라인가? 이미 정당법이 개정되어 고등학생의 정당가입이 허용되고 고3이 되면 투표권도 부여받는다. 그런데 정작 교사는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교육에 관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정당인들이다. 오히려 교사가 정당가입을 하고 교육감 선거에 관여한다면 교육현장의 목소리는 더 잘 반영되고 교육권은 더 강화될 것이다. 

청소년 기후활동가로 잘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흔한 환경광고처럼 쓰레기를 줍고 물을 아껴 쓰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 의회 앞에서 매주 금요일, 학교를 빠진 채 시위를 했다. 개인의 실천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결국 제도와 법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셈이다. 

제도를 바꾸는 힘은 정치로부터 비롯된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 민호군의 죽음을 다시금 기억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교사의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법안을 제주의 국회의원들이 앞서서 만들고 전국 유일의 교육의원들이 이런 주장을 강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는 선한 누군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제주에서부터...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 본다.


#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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