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간들의 삶을 생태 관계 안에서 회복해야

2016년 노르웨이 국립공원에서 순록 300여 마리에 벼락에 의해 일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2016년 노르웨이 국립공원에서 순록 300여 마리에 벼락에 의해 일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2016년 촬영된 사진 속 현장은 노르웨이 툰드라 지역 하르당에르비다(Hardangervidda) 국립공원 내 한 언덕이다. 당시 이곳에 살던 순록 323마리가 벼락을 맞고 한꺼번에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공원 측은 사체를 수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고 밝혀 비판받았다. (출처 : “벼락맞아 죽은 순록 323마리 4년간 방치한 결과”) 

이 기사는 여러모로 분석이 되었는데, 대체로 인간의 자연 개입을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필자는 그러한 분석은 사건 전체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개입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질서를 존중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립공원 측이 온갖 사회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산록의 사체를 인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생태적 질서에 순응하도록 상황을 관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폴 호건의 책 ‘한 세대 안에 기후위기 끝내기’(박우정 역)는 생태계의 각 영역에서 한 개체의 소멸이 가져오는 생태 질서의 혼돈을 잘 설명하고 있다. 굴 암초의 멸종이 가져온 생태계의 변화, 성게를 먹는 해달의 실종이 가져온 갈조류의 손실, 바다 습지의 역할, 휴지로 전용되는 북방림, 자연을 되살릴 수도 있는 불, 로키산맥 북부 회색늑대의 몰살 그리고 엘크와 사슴 등 초식동물들의 나무 습격, 자연 정화기를 만드는 비버의 비극 등…. 

인간의 개입으로 발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변화가 가져온 비극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폴 호건은 이 비극이 결국 인간 삶의 황폐화라고 설명한다. 폴 호건은 다양한 생태학적 사건들을 통해, 인간들이 생태계를 돌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들의 행동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함을 설명한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관해 필자는 탄소 배출의 저감, 그 자체에만 매몰되는 것은 결국 현재 인간의 탐욕적인 소비 행태를 유지하면서도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생각한다. 탄소 배출의 저감은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탄소 배출만 줄이면 인간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환상을 넘어 망상이 된다. 탄소 배출 저감에 대한 신화적 망상으로 인해 탄소 저감 논쟁은 인도 등 농업생산국에 농업 생산 분야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라는 요구까지 하게 된다. 소위 ‘소 방귀’ 논쟁이 생긴다. 소 등 가축의 장내 발효로 발생하는 탄소까지 문제 삼는 것이다. 

먼 나라 이야기 일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농림수산부의 ‘농업, 농촌 탄소 중립 및 기후변화 적응’이라는 핵심추진과제(https://www.mafra.go.kr/2021plan/2691/subview.do) 에서도 농업온실가스의 주범 중 하나로 가축 장내 발효 문제가 거론된다. 심지어는 벼 재배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도 문제 삼는다. 농기계의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 증가 또는 대량 생산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탄소는 저감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 생존을 위한 식량 생산조차 탄소 저감 정책의 목표로 삼으면서, 인간의 생존권과 기후위기를 대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 먹는 것을 생산하는 행위 자체를 공격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이 연출된다. 기후위기 해소도 인간이 생존하고자 하는 행위인데 말이다.

생태계 질서는 자연스러운 탄소 축적과 배출의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일부로서 그 질서 안에서 자연스런 탄소 배출로 생산물을 내어 생존하는 것이다. 생태계 질서의 흐름을 회복해야지, ‘탄소’라는 ‘악의 원소’만 제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탄소 저감에만 집중할 때 생기는 허점이다. 

근래 기후변화와 인권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조효제 교수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세계인권선언문 28조를 설명하고 있다. 

“개별 권리와 자유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국제적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질서를 가질 권리 또한 중요하다고 나옵니다. … 개별 권리와 함께 개별 권리를 보장하게 해주는 질서(체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소거된 채 법리적인 접근이 인권의 전부인 것처럼 좁게 보는 오해가 생겼죠. 저는 개별 권리의 구제와 가해자의 단죄도 중요하지만,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면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후변화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인권을 조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출처 : 한겨레신문, 2022.7. 31 “소비자가 원하니 ‘탄소 상품’ 생산? 책임 관계 뒤집는 교묘한 논리”) 

조효제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고, 보호해줄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탄소 배출로 된 상품을 소비한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너희도 가해자’라는 인과율적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되며, 탄소 배출 시스템을 가지고 부를 창출하는 집단,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일조하는 국가가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순록 사체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고, 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됐다.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노르웨이 정부는 순록 사체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고, 많은 동물들의 먹이가 됐다.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뼈만 남은 순록 사체.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뼈만 남은 순록 사체. / 사진=노르웨이 환경청

한 마디로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이며, 국가가 더 큰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탐라개국 신화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중 하나인 고을라가 외쳤다. “맞아! 벌레 때문이었어. 벌레가 없어져 농사가 잘될 수 있었고, 바로 그건 ‘불’ 덕분이야.” 1년 전 하늘에 제를 올릴 때 실수로 불이 번져 온 섬을 태웠다. 모두가 실의에 빠졌지만 그 해 농사는 대풍이었다. 반면 별 탈 없이 농사를 지은 이듬해에는 수확량이 오히려 줄어 모두가 이상하게 여기던 차였다. 그때 부을라가 말했다. “우리가 농사짓는 땅 중에서 어느 한 두 곳을 정해 불을 피우는 곳과 피우지 않은 곳을 정해 농사를 지어봅시다.” 

우리는 노르웨이 한 국립공원에서 벌어졌던 순록의 이야기에서 생태 질서의 강력하면서도 풍부한 회복력을 신뢰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폴 호건의 이야기들을 통해 기후위기에 관한 생태 질서의 혼란과 더불어 이를 회복하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이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행동이자 실천’임을 깨닫게 된다. 그 행동과 실천은 방조나 방치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태질서 회복을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생태질서에 대한 고민이 제거되었을 때 탄소 저감은 오히려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는 생태질서가 교란되는 기후위기가 인권침해임을 깨닫고 무한한 사회적 책무를 가져야만 한다. 인간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태 질서에 복무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가 이러한 책무를 수행할 때 인간다운 삶이 오히려 더 풍부해지고 인간다워질 수 있다. 

고을라, 부을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불(자연)을 방조하거나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불(자연)이 가진 생태적 능력을 존중하면서 불(자연)을 관리하면 좀 더 인간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음을 보았다. 우리가 왜 돌고래를 보호하고 바다로 돌려보내며, 각종 위기 생물들을 돌보려고 할까? 세금만 들이고,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은 그런 일을 왜 우리는 사회적 논쟁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하려고 할까? 바로 우리 제주 섬을 둘러싼 생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생태 질서가 잘 유지되도록 관리하려는 인간들의 노력인 것이다. 

더불어 모두가 다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여기에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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