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22) 노자(老子)와 학교의 미래

15분 도시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읍면 지역 살리기 일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5분 도시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읍면 지역 살리기 일 것이다. 사진은 지난 11월 3일 제주연구원이 개최한 정책 심포지엄 '15분 도시 제주 조성을 위한 전략과 과제'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코로나19 예방법의 하나로 밀집, 밀접, 밀폐된 공간을 피하라는 의미의 “3밀”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코로나19 이전에 뉴어버니즘(new urbanism)이나 콤팩트시티(compact city)가 도시문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도심 외곽의 무분별한 개발은 지양하고 이동을 최소화한 고밀도 개발이 미래 도시의 주요 모델이었다. 고밀도 개발이 환경문제의 대안 모델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고밀도 개발은 3밀 환경을 조성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도심의 학생 수가 많은 대형 학교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반면 시골의 전교생 100명 안팎의 작은 학교들은 지난 3년 동안 몇 달을 제외하곤 대부분 등교수업이 이뤄졌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잦아질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에 3밀 환경을 조성하는 개발사업은 물론 기존 도시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여기에 기후위기라는 국제사회 공동의 현안 또한 도시가 떠안은 근본적인 문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시대에 대안적 도시 모델은 무엇일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 내외를 차지하는 대도시들이 세계적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C40 도시 기후리더십 그룹(C40 Climate Leadership Group)에는 서울, 런던, 파리, 뉴욕, 도쿄, 상하이 등 40개 대도시가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2020년 코로나19 이후 도시의 대안으로 채택하고 파리의 ‘안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이 재선 공약으로 내걸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탄 도시 개념이 15분 도시다.

15분 도시는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한다.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15분 이내에 학교를 가고 병원을 이용하고 직장을 다니고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도시가 구성된다. 기본적인 생활이 자신의 도보 15분 생활권에서 이뤄지게 되는 셈이니 멀리 이동할 필요가 없다. 밀집시키지 않고 오히려 분산하되 생활공간은 좁히겠다는 발상이다. 15분 이내로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니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인구를 분산하게 되니 전염병에도 위험이 덜해지게 된다. 얼핏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15분 도시에 세계가 호응하는 것은 팬데믹의 공포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대정지역의 한 초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 학생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나 식판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코로나19로 도내·외 도시 아이들이 학교가 폐쇄되지 않은 지역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3밀 지역을 피해 온 사람들이다.

이미 수천 년 전에 노자(老子)는 15분 도시를 이상사회로 설명했다. 노자 도덕경(道德經) 80장을 흔히 노자가 그리는 이상세계라고 말한다.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의 크기는 작게 하고 백성의 숫자도 줄이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전쟁이 없고 굶주림이 없고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사회라고 노자는 설파한다. 이런 사회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가능할 것 같았던 노자의 이상세계를 코로나19와 기후위기가 다시 불러내고 있다. 15분 도시라는 이름으로. 

15분 도시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읍면지역 살리기 일 것이다. 도심의 인구를 분산시키려면 읍면지역, 농어촌마을이 살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농어촌 지역 살리기의 최우선 과제는 학교 살리기다.

농어촌지역의 초·중·고등학교가 누구나 다니고 싶은 학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교를 다니는 동안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미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위를 보는 교육이 아니라 옆을 보는 교육. 이기는 교육이 아니라 즐기는 교육.


#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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