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98) 베트남문인협회 초청 방문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베트남문인협회가 12월 2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약칭 제주펜)를 초청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베트남문인협회가 12월 2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약칭 제주펜)를 초청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12인의 방랑자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베트남문인협회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약칭 제주펜)를 초청했다. 제주펜의 시인(문무병, 고성기, 나기철, 홍창국, 강방영, 강병철, 김원욱, 양금희), 아동문학가(박재형, 장승련), 수필가(김순신), 극작가(장일홍) 등 12명이 올해 12월2일 4박5일 일정으로 베트남 문학기행에 나섰다.

이번 여행은 12월5일 문학 행사를 제외하고는 주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하롱베이’를 관광하는 스케줄로 짜여졌다.

옌뜨 국립공원, 베트남 불교의 성지

12월2일 자정 무렵 베트남 수도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다음 날 옌뜨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옌뜨(安子)는 공자의 제자인 안자가 말년에 수양한 곳으로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인데, 베트남 불교의 성지로 알려진 화인사(700년 전 건축)가 옌뜨산 중턱에 있다.

화인사가 불교의 메카가 된 건 베트남 역사에서 전승왕, 성군으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훼강왕 덕분이다. 훼강왕은 어릴 때부터 스님이 되는 게 꿈이어서 일찍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화인사의 승려가 됐다. 화인사에 그의 사리가 보존돼 있고, 훼강왕을 추모해 쌓은 훼강탑은 베트남인들이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로, 탑 앞에서 소원을 빌면 거개가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

하롱베이 전경.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하롱베이 전경.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하롱베이, 베트남의 꽃

하롱베이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다

하롱베이는 그 어원(하롱=용이 내려온 곳, 베이=만·바다)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의 전설을 간직한 바다인데, 3000개의 바위섬이 점점이 부표처럼 수중에 떠 있다. 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바위는 불이요, 바다는 물로서 음양이 조화를 이룬, 용이 머물기 적당한 곳이다.

하롱베이 관광의 백미는 석회동굴, 티톱섬, 항루언 등이다. 

석회동굴을 베트남어로 ‘메꿍’이라고 하는데, 메는 엄마, 꿍은 자궁이다. 엄마의 자궁처럼 입구는 좁으나 들어가면 넓다. 다른 점은 엄마의 자궁은 생명을 잉태하지만 메꿍은 석회질의 죽은 자궁이어서 덥기만 하다.

티톱섬은 하롱베이 3000개 섬 중 유일하게 이름이 붙여진 섬이다. 소련의 우주 비행사 티톱(1935~2000)이 하롱베이를 방문했을 때, 호치민 주석에게 티톱섬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하자, 호치민은 베트남의 땅은 인민의 것이므로 줄 수 없고 대신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겠다고 했다. 

티톱섬의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하롱베이는 그야말로 절경이요 장관이었다. 그래서 하롱베이를 ‘베트남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베트남이 아닌 하롱베이를 보러 온다. 하롱베이는 베트남을 먹여 살리는 뛰어난 관광자원이다

제주펜 작가들이 하롱베이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제주펜 작가들이 하롱베이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주변이 바위섬으로 둘러싸인 항루언은 ‘하늘 정원’이라는 별칭과 함께 ‘하롱베이의 천지(天池)’라 불린다. 백두산 정상의 천지와 흡사하기 때문. 항루언은 바위섬 밑에 뚫린 구멍으로 쪽배를 타고 들어간다. 이곳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은 관광객이 던져주는 과일이 주식이고 아마도 물고기나 해조류는 별식이 될 터이다. 성산일출봉에서 바위를 타고 돌아다니던 야생의 염소 떼가 생각났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이토록 끈질긴 것이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3000개의 바위섬을 돌면서 “죽기 전에 다시 이곳에 올 때는 요트 갑판에서 미녀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이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런 발칙한 상상을 했다.

베트남에서 관람한 전통 공연.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베트남에서 관람한 전통 공연.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수상 인형극 관람, 제주도엔 왜 전통 공연물이 없는가?

하롱베이 부근 공연장에서 수상 인형극을 관람했다.

무대 전면에 물을 채우고 인형극을 공연하는데, 베트남의 전설과 전통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필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전통극을 구경했다. 한 나라나 지역의 공연물은 그곳의 문화수준과 문화역량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관광객 천만 명을 상회하는 국제관광지 제주도에 전통문화 상품이 없다는 건 대단히 부끄러운 일인데, 대다수가 수치를 느끼지 못한다. 이는 문화의식의 부재, 혹은 결핍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정치인, 행정가, 문화예술인들이 합심 협력해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아우르는 고품질의 공연물을 만들어야 한다. K팝, 드라마, 영화 등 한류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 땅의 문화는 갈 길이 멀다.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 문학 행사

이번 행사의 요지는 ①한국 시인 강방영과 베트남 시인 응웬딘 떰의 공동시집 출판과 한국-베트남 시인 20인의 작품이 실린 제주펜 기관지 ‘엔솔러지 제19집’의 출판을 기념하고 ②한국-베트남 문인들의 친목과 유대를 강화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양국 간 우호증진의 초석을 놓고자 함이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가 펴낸 간행물.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가 펴낸 간행물.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성요셉 성당의 저녁 미사

출판기념회와 만찬이 끝난 후, 하노이 중심가 ‘성요셉 성당’의 저녁 미사에 일행 중 카톨릭 신자 4명(고성기, 박재형, 나기철, 김순신)과 함께 참석했다. 영성체에도 참여했는데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떡)를 받아 먹으면서 내 안에 들어온 성령을 기쁘게 영접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베트남의 미래와 한국-베트남 관계 진전

귀국 비행기에서 만난 베트남 청년들(210명)은 용접, 선반 등의 기능사로 한국의 각 기업체(공장)에 2년 간 파견된다고 한다. 과거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 일본, 중동에서 외화벌이를 한 그때와 판박이다. 

청년들의 형형한 눈빛에서 베트남의 미래를 보았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20~30대 청년이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졌으며 연평균 경제성장률 7%인 베트남의 미래는 밟다. 올해 베트남은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에 올랐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4000여개, 고용인원은 100만명에 달한다.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원수가 경제공동체로, 전략적 동반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강대국의 식민지를 거쳐 분단, 전쟁 체험 등 두 나라는 너무나 닮은 이란성 쌍둥이 국가이다.

베트남에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작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베트남에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작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

높이 날아야 먼 곳을 볼 수 있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베트남 현지 가이드 김정숙 씨는 여러모로 특이했다. 여행객들을 위해 사심없이 헌신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여행길에서 뜻밖의 감동을 만나면 그 여행은 예술이 된다.

미국 작가가 쓴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들은 “높이 날아야 먼 곳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높은 생각, 높은 꿈을 지녀야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다. 여행은 고공비행을 위한 비상(飛翔)이다. 뭐니뭐니 해도 여행은 높이 나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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