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5) 여자 셋만 모이면 사기 접시에 구멍 뚫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예펜 : 여자
* 싓만 : 셋만, 세 사람만
* 사기 젭시에 : 사기 접시에
* 고망 : 구멍
* 똘른다 : 뚫는다

수다가 지나치면 그야말로 ‘소음 공해’다. 또 그 내용이라는 게 남의 ‘뒷담화’ 수준으로 저급한 것. 하지 않아 좋은 것이 수다다. / 사진=픽사베이<br>
수다가 지나치면 그야말로 ‘소음 공해’다. 또 그 내용이라는 게 남의 ‘뒷담화’ 수준으로 저급한 것. 하지 않아 좋은 것이 수다다. / 사진=픽사베이

쓸데없이 말수가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누군지 알 수 없는 제3자의 얘기를 시도 때도 없이 또 한도 끝도 없이 풀어놓는 사람, 수다쟁이다.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러울 정도인데도, 수다를 늘어놓은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는다. 수다쟁이 셋이 모이면 죽이 맞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고 한다.

몇 시간이고 떠들어대므로 그런 자리나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고역이 없다. 참 고통스러운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해나 다름없는 피로감을 안긴다. 수다의 속성이 이미 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므로 듣기 싫은 말을 연속해서 들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어쩌다 수다를 떠는 사람이 윗사람이면 중간에 끼어들어 하는 말을 끊을 수도 없으니 전전긍긍하게 된다.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수다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을 안 하면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느끼기 때문이라 하지만, 당하는(들어야 하는) 사람의 처지는 그 정반대다. 그걸 알 리 없다.

예전에는 여자 특히 가정주부들이 수다를 많이 함으로써 고립된 환경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욕구가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가 옅어지면서 남자들도 수다쟁이의 대열에 끼어들어 만만찮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어쨌거나 수다가 지나치면 그야말로 ‘소음 공해’다. 또 그 내용이라는 게 남의 ‘뒷담화’ 수준으로 저급한 것. 하지 않아 좋은 것이 수다다. 남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대화를 독점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시민의 자질에서 벗어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펜 싓만 모이민 사기 젭시에 고망 뚤른다’

‘젭시’가 식기이니 여성을 지목한 말인 게 명확한데, 여인들이 집 안에 모여 얼마나 수다를 떨었으면 접시에 구멍이 났겠는가.

여인들이 셋만 모여 앉으면 수다로 날 저무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니, 그런 여인들의 생태를 기가 막히게 꼬집었다. 놀라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사기 접시라고 그냥 있겠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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