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0) 김민수, 한국 구축주의의 기원: 1920~30년대 김복진과 이상, 그린비, 2022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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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은 일제강점기에 새로운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선전)가 대표적인 제도다. 3.1만세운동 이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정책 전환을 시작한 이래, 미술공모전을 통하여 통치수단으로서의 문화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미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평가받으며 비평과 관람을 통하여 예술공론장을 형성한 가장 유력한 제도가 바로 이 선전이었다. 일본인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조선 예술가들이 선전을 통하여 활동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김복진도 선전에 여러차레 출품하고 비평에도 참가했다. 제국의 변방 식민지였다고는 하나 당대의 예술 형식과 의제들로부터 차단된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1920, 30년대 식민지 조선, 특히 경성에는 예술의 꽃이 피어났다. 

불과 100년 전의 이 땅에서 펼쳐진 예술활동은 생각보다 꽤 활발했으며 전 세계적 조류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뿐만 아니라 김복진의 경우,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활동을 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할 정도로 암울한 식민지의 예술가라는 편견과 예단을 넘어서는 활동을 펼쳤다.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구축주의라는 사조는 1920년대 당대의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사회주의혁명의 여파로 생겨난 급진적인 예술운동이다. 김복진이야 워낙 유명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니 그럴 법하다 해도, 이상의 경우에는 괴팍한 천재 예술가 정도의 인식이 지배적인데, 이러한 선입견을 떨치고 이상이 꿈꿨던 새로운 예술운동을 소개함으로써 식민지시대 예술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구축주의는 예술지상주의 입장의 예술운동이 아니라 예술을 통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회변혁운동이다. 구축주의는 일본을 통해 소개된 구성주의 또는 구성파 정도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왔지만, 양자는 경향성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구축주의의 리더인 로드첸코에 따르면, ‘구성(kompozitsiia)’이 조형적인 원리에 초점을 맞춰 기하학적 추상미술 경향을 띄는 것이라면, ‘구축(konstruktsiia)’은 목적의식적으로 예술적 요소를 조직하는 것이다. 구성주의가 예술의 내재적 논리에 환원하는 것이라면 구축주의는 사회적 의제와 연관하여 확산하는 것이므로 양자의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김복진은 카프를 이끈 예술가로서 추축주의 개념을 통하여 자신의 사회예술 운동 지향을 펼쳤다. 그는 새로운 문명의 이미지를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지와 감성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는 창작과 이론적 작업을 통해 구축주의 예술을 펼쳤다. 이 책의 표지에 나타난 김복진의 <문예운동(文藝運動)> 표지 타이포그래피는 기계의 부품 이미지를 조합하여 글자를 만든 것으로서 계급운동과 연관한 현실주의 예술창작의 일환이다. 현실 변혁운동과 예술운동을 함께 추진해온 김복진은 이러한 실험을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사회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예술을 통하여 현실을 변혁할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으로 활동했다. 

이상은 우주적 세계관을 토대로 끝없는 상상력의 세계를 열어나갔다. 흔히들 이상은 비현실적인 몽환의 세계를 걸어간 괴짜 천재로만 인식하고 있지만, 짧은 생애동안 그가 남긴 것은 창의력의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실험과 도전으로 식민지 조선의 정신문화를 한 단계 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진보적인 예술실천이었다.

그는 건축일 이외에 문학 쪽에서 발군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 운동의 선구자였으며, 시와 소설이라는 문학형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그는 현대과학의 행렬과 수식으로 현대물리학의 시공간과 우주론을 펼쳤다. 그의 예술은 식민지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월의 꿈이었으며, 예술공론장을 통하여 삶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사회운동이었다. 

근대예술은 순수예술과 사회예술의 두 갈래 길을 공유한다. 보들레르를 중심으로 한 순수예술파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을 부르짖으며 누군가의 주문이나 지시로 이뤄지는 공예가 아니라 예술창작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예술을 주창했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율성에 입각해서 스스로 창작하고 발언하려는 예술공론장을 개척하기 위한 근대예술가들의 위대한 투쟁이었다.

사회예술(L’Art Social)를 주장한 이들은 생시몽주의자들로서 예술은 사회를 개척하고 주도하는 선구적 역할을 수행해야하며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공존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참여예술이나 공동체예술 등에서 공공예술에 이르기까지 제도예술 바깥에서도 예술창작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정신적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식민지 조선에 불어닥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열풍은 아직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 체제정비를 하기 전에 자유롭게 분출하던 새로운 예술에 대한 러시아 예술가들의 열망에 공감한 전지구적인 현상이었다. 김복진과 이상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암울한 식민시시대의  정신문화를 일군 선구자로서 예술과 사회의 만남을 실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직접적인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든 김복진과 예술운동으로 사회의 공론장 지평을 넓히고자 했던 이상은 비록 그 길을 달랐을지라도 구축주의라는 당대의 급진적인 예술실험을 공유한 예술가로서 한국 구축주의의 기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순수예술이나 참여예술이냐 하는 구분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예술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을 병행한 위대한 사회예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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