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52) 제주갤러리, 비엔날레, 새 아트페어 등

올 한해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그룹전, 기획전 등 많은 전시가 열렸다. 예술가로 고뇌하는 모습부터 예술을 한다는 재미에 빠진 모습까지 전시장에서 보이는 모습도 다양했다. 그런 작가들을 위한 미술 제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필자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본 올해 제주미술계의 변화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먼저 서울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지하에 들어선 제주갤러리이다. 제주도의 지원으로 문화정책과와 제주미술협회가 운영하는 제주갤러리는 고영훈 작가 전시를 시작으로 지난 3월 16일 개관했다. 그동안 제주와 타지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작가들의 개인전을 비롯해 <4.3미술 아카이브 기획전>, <플랫폼: 제주예술가 프로젝트>, <Turning Point 2022: 제주 청년작가>, <제주-서울 2022> 등 여러 기획전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인사동이 가진 문화적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은 제주 작가들의 서울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제주 출신 작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초대 디렉터를 맡아 부지런히 운영하던 강지선 씨가 올해 말로 떠나고 내년부터는 새 디렉터가 부임한다.

전시 '제주-서울 2022'가 열린 제주갤러리 /사진=양은희
전시 '제주-서울 2022'가 열린 제주갤러리 /사진=양은희

올해 새 공간의 약진이 두드러진 한해였다. 제주시 용담로터리에 있다가 2021년 관덕정 인근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스튜디오 126’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권주희 대표에 따르면 올 한해에만 개인전과 기획전을 합쳐 14개 정도의 전시를 열었다고 하니 그 열성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원도심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오래된 정취를 풍기는 건물 1, 2층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스튜디오 126에서 열린 조기섭 작가의 전시 / 사진=양은희
스튜디오 126에서 열린 조기섭 작가의 전시 / 사진=양은희

관덕정 서쪽에 3월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 빈공간’도 전시장, 가게, 빵집을 결합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상홍 작가가 운영하는 이곳은 기획전 <비롯하여 오롯>과 고닥, 이지유, 박숙은 등 여러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다. 작은 전시장에서 예술을 감상하고 나서 바로 옆 빵공간에서 고소한 빵 한 조각 사들고 나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원금을 받아 제주시 원도심에 거주하는 30-50대 주민들을 초대한 ‘예술로 재미나게 노는 삼촌모임’을 비롯해 이상홍 작가가 만드는 카레를 드로잉하고 같이 카레를 나눠먹는 ‘이작가와 끼니: 카레드로잉’이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며 조용한 원도심에 사람 냄새를 풍기고 있다.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 사진=양은희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 사진=양은희

저지리에 새 미술관이 들어섰다. 12월에 문을 연 유동룡미술관은 이타미 준 재단이 설립한 곳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했던 한 건축가의 철학을 볼 수 있다. 비오토피아 내에 위치한 수, 풍, 석 뮤지엄으로 유명한 그는 그동안 제주와 인연이 많았는데 드디어 그의 사고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저지문화예술지구의 위상을 높일 정도로 깊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주비엔날레의 부활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언론에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제주비엔날레’라고 평하고 있다. 삼성혈부터 가파도까지 제주의 매력적인 장소를 잘 활용했다. 사실 이만큼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박남희 예술감독이 제주에 집을 얻고 거주하며 매일 준비과정을 챙겼기 때문임을 아는 이들이 적다. 그러나 아직도 비엔날레 운영구조는 허약하다. 소수의 임시직 코디네이터를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예술감독의 위상과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다음 비엔날레도 과거처럼 흔들릴 수 있다. 예산 집행 구조와 준비 기간 때문에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 비엔날레가 열릴 수밖에 없는 현실도 안타깝다. 타 비엔날레처럼 관람객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5월부터 10월 사이 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여전히 비엔날레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역 작가들을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다. 지속가능하고 제주의 주요 문화자산이 될 수 있는 제주비엔날레의 운영구조를 찾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 / 사진=양은희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 / 사진=양은희

올해도 아트페어의 꿈이 이어졌다. 그동안 아트페어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왔는데 그나마 성공한 사례가 ‘아트제주’이다. 여름 휴가철인 8월에 중문에서 열린 ‘아트제주 2022’는 판매액도 관람객도 역대 최고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듯 새로운 아트페어가 등장했다. 올해 제주화랑협회가 결성되어 처음으로 ‘2022 제주국제화랑미술제’를 7월에 열었고 제주도의 지원으로 만든 ‘탐라국제아트페어’가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첫선을 보였는데 추운 날씨로 인해 관객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두 아트페어 모두 향후 어떻게 운영될 지 주목된다. 

탐라국제아트페어 전시장 / 사진=양은희
탐라국제아트페어 전시장 / 사진=양은희

이외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돌문화공원의 오백장군 갤러리에 지역작가 초대전과 대관 전시가 많이 늘어나서 작가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제주문예회관의 기획전이 예전보다 늘어나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개관 20주년을 맞은 이중섭미술관은 확장 계획을 세우고, 어렵다고 소문난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미술관 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해서 변화를 꿈꾸고 있다. 그에 비해 중광미술관은 컬렉션 소개도 타당성 사전평가 통과도 요원한 채 가상의 개념으로만 남아있다. 한 개인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을 세금으로 짓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동안 연례전, 또는 2년마다 열리는 전시를 표방해 온 지역의 미술축제도 역할을 충실히 이해한 한 해였다. <아트 페스타 인 제주>는 산지천을 중심으로 한 연례 축제로 자리를 잡은 듯하며, <제주미술제>, <4.3미술제> 등 수십 년간 진행된 미술제도 조금씩 경계를 확장하며 변화를 모색한 한 해였다.


# 양은희

양은희는 제주출생으로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큐레이터 및 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현대미술과 미술제도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 번역서를 발표했다. 저서로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2017, 공저) ▲디아스포라 지형학(2016, 공저) ▲뉴욕, 아트 앤 더 시티(2007, 2010) 등이 있다. ▲개념 미술(2007) ▲아방가르드(1997) ▲기호학과 시각예술(1995, 공역)을 번역했다. 현재 스페이스 D의 디렉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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