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사’ 저자 고광민, 신간 ‘제주도구-섬땅의 삶을 일군 지혜’ 발간

“골갱이를 예로 들면, 이 골갱이는 불미쟁이(대장장이) 혼자서 만든 게 아닙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달라는, 그 요구를 대장장이가 한데 모아서 만드는 겁니다. 대장장이 고집이 들어가면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래서 도구라는 것은 도구를 쓰는 백성들이 공동 창작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12월 초에 열린 고광민 작가의 신간 ‘제주 도구’ 출판기념회에서, 저자는 도구에 대한 정의를 명쾌하게 내렸다. 최근 나온 고광민 작가의 신간 ‘제주 도구 ― 섬땅의 삶을 일군 지혜’(한그루)는 척박한 섬 땅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 백성들’의 도구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사진=한그루
사진=한그루

올해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 발간사업의 지원을 받아 출간된 이 책은, 구성부터 평소 자료 수집과 분석에 각별한 공을 들이는 저자의 노력이 느껴진다.

1장(의생활과 도구)은 쓰개와 모자, 옷, 바느질과 빨래, 신발, 비옷, 옷감 짜는 용도로 분류했다. 2장(식생활과 도구)은 음식의 재료나 음식물 저장용, 취사, 식기, 양조, 담배에 따른 도구들을 소개한다. 3장(주생활과 도구)은 주먹돌과 정주석, 지붕 이기, 청소, 난방, 조명용으로 분류했다. 

4장(생산‧생업과 도구)은 산야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비롯해 사냥, 가축 사육, 밭갈이와 파종, 밭매기, 거름 작업, 수확과 탈곡, 그물질, 낚시질, 해녀·어부용, 잔손질용 도구를 수록했다. 5장(운반과 도구)은 육상 운반과 해상 운반으로 나눴다. 6장(사회생활과 도구)는 계량과 놀이 도구를 살폈다. 옛 제주 사람들이 일상 전반에 걸친 도구들을 세세히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저자를 대표하는 책으로 평가받는 ‘제주생활사’처럼 ‘제주 도구’ 역시 원초 경제사회를 시대 배경으로 잡는다. 원초 경제사회에 대해 저자는 “백성들이 삶에 필요한 자원을 자연에서 마련하며 살았던 시대”라고 정의했다. 제주도농촌지도소에서는 제1회 경운기 교육수료식이 열린 1968년 9월 21일까지를 원초 경제사회로 규정지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쟁기가 원초 경제사회 시대의 도구라면, 경운기는 개발 경제사회 시대의 도구였다. 쟁기는 자연에서 마련한 소재로 한 농부가 처한 농토에 맞게 만든 것이라면, 경운기는 한국의 경운기 공장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똑같은 구조로 만든 것이었다. 제주도 도구는 제주도 사람들이 원초 경제사회 때 제주도 풍토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제주도 자연에서 마련한 것들이다. 그러니 원초 경제사회의 도구는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당당한 유산”이라고 제주 도구에 담긴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글갱이’는 나뭇잎이나 검불 따위를 긁어모으는 갈퀴이다. 애월읍 상가리 변○○(1922년생, 남) 씨 집에서 쓰던 것이다. ‘글갱이’ 자루에 6개의 철사를 끼우고 끝을 구부리고 부챗살 모양으로 휘어 철판으로 고정하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나뭇조각을 가로 붙이고 칡넝쿨로 얽어매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것으로 땔감으로 쓸 솔잎을 긁어모으는 도구로 쓰이는 수가 많았다. 이 마을 ‘동노왓’·‘앞동산’·‘뒷동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잎도 많이 떨어졌다. 이웃 마을 사람들도 솔잎을 구하러 이곳까지 왔을 정도였다. 음력 9월부터 섣달까지 ‘글갱이’로 솔잎을 긁어모으고, 크게 뭉뚱그려 묶어 지어왔다. 그것을 두고 ‘보달’이라고 하였다. 

- ‘제주 도구’ 216쪽에서

출판사는 “이 책은 500쪽이 넘는 분량에 300점이 넘는 도판을 수록한 이 책은 각 도구의 형태와 쓰임뿐만 아니라 제주만의 독특한 환경에 따른 지혜로운 생활사를 살피고 있다”면서 “방대한 조사와 충실한 기록, 그리고 제주 전통사회 서민들의 삶에 대한 존경과 애정에서 비롯한 결과물로서 ‘제주 도구 사전’이라 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고광민 작가는 1952년 제주도 출생으로 ‘서민 생활사 연구자’로 알려져 있다. 2년 7개월 짧은 교사 생활 이후 계속 서민 생활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저서는 ▲제주도 도구의 생활사 ▲동東의 생활사 ▲고개만당에서 하늘을 보다 ▲마라도의 역사와 민속 ▲제주 생활사 ▲섬사람들의 삶과 도구 ▲흑산군도 사람들의 삶과 도구 ▲조선시대 소금생산방식 ▲돌의 민속지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제주도 포구 연구 ▲사진으로 보는 1940년대의 농촌풍경 ▲한국의 바구니 등이 있다. 

현재 [제주의소리]에서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의 도움으로 ‘고광민의 제주 생활사’를 연재 중이다. 이니스프리 모음재단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관계사인 이니스프리가 5년 동안 총 100억 원의 기부 약정을 통해 2015년 설립한 공익 재단이다. 평소 ‘제주의 자연과 문화, 인재를 가꾸고 알려 제주에 가치를 더한다’는 취지에 따라 여러 공익사업을 진행해왔는데, 고광민 작가의 제주 생활 문화 연구에 공감하며 연재에 힘을 보태고 있다.

503쪽, 한그루,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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