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12) 7조원 넘는 제주도 예산, 감시 필요

지난 2009년 6월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갖고 7만7367명이 서명한 서명부와 주민소환투표청구서를 도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09년 6월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기자회견을 갖고 7만7367명이 서명한 서명부와 주민소환투표청구서를 도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당시에,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로 특별자치도법에 주민소환제도가 포함되었다. 물론 곧이어 국가 차원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하 ‘주민소환법’)’이 제정되면서, 주민소환제도는 제주도만의 제도는 아니게 되었다.

왜곡된 주민소환제도

그리고 제주에서는 도지사 주민소환 투표가 1차례 있었다. 2009년 8월에 있었던 김태환 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주민소환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개표를 못하게 되면서 무산됐다. 

당시에 소환대상자 측에서 조직적으로 투표 불참 운동을 했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등의 많은 문제가 지적됐다. 이렇게 된 원인 중에 하나는 투표율이 3분의 1이 넘어야 개표를 한다는 주민소환법의 조항이었다.

이 조항 때문에 제주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소환대상자가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활동을 했다. 소환에 대한 찬·반 여부가 아니라 투표장에 가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투표장에 가면 소환에 찬성하는 쪽으로 분류하는 분위기에서는, 투표장에 가는 사람 숫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지만, 주민소환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그에 따라 주민소환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소환투표를 하더라도 투표율이 3분의 1을 넘기지 못해서 개표 자체를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쉬워지는 주민소환

그런데 지난 12월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주민소환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20년 12월에 정부가 발의한 개정안이 무려 2년이 지나서야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앞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만 통과하면, 개정 법률이 시행되게 된다. 

이번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개정안을 보면, 그동안 문제가 돼 왔던 투표율 기준을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낮추도록 하고 있다. 물론 4분의 1도 상당히 높은 기준이지만, 그래도 주민소환제도의 실효성이 지금보다는 나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에는 주민소환 청구를 위해 주민 서명을 받으려면 오프라인에서 까다로운 방식으로 서명을 받아야 해서 어려움이 컸다. 그런데 이번에 개정이 추진되는 내용을 보면 전자서명에 의한 서명도 가능하다. 따라서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홈페이지 게시 등을 이용해서 전자서명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서명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어 시행되게 되면, 주민소환 제도가 활용되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주민소환 제도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면, 선출직 공직자들이 독선, 전횡, 부패를 저지르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어느 정도 기대된다.

어느 때보다 권력 감시·견제가 중요한 때

지금 국가적으로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공직자들의 독선적인 행태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방적인 대통령실 이전, 언론에 대한 통제 시도로 보일 수 있는 행태, 이태원 참사에도 주무부처 장관인 행정안전부 장관을 감싸는 행태 등이 그렇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국가 차원에서도 권력에 대한 견제·감시 활동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느 당이 집권당이냐 아니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어떤 권력이든 감시받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항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제주의 경우에는 해군기지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제2공항 문제 등의 여러 현안이 있다. 과거 원희룡 전 지사가 제2공항 문제를 민주적으로 풀지 않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지역 내부의 갈등이 악화된 측면이 있다. ‘제왕적 도지사’로 표현되는 막강한 집행부 권력은 항상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다. 도의회도 견제와 감시가 필요한 곳이다. 과연 제주도의회는 제 역할을 하고 있고, 문제가 없는지를 들여다보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시민단체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2023년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예산이 본예산 기준으로 7조원이 넘는다. 도민 1인당으로 따지면 1인당 1천만원이 넘는 예산이다. 이 예산이 제대로 쓰이는지를 감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잘못을 저지르는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주민소환이라는 최종적인 통제장치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 하승수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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