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6) 위 골고루 아래 조금씩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우 : 위, 윗사람, 윗분
* 골로로 : 골고루
* 알 : 아래, 아랫사람
* 족족 : 조금씩

‘공정’이란 말이 지니는 뜻이 ‘모두에게 똑같이 바르게’이다. 말의 뜻대로 하면 된다. / 사진=픽사베이
‘공정’이란 말이 지니는 뜻이 ‘모두에게 똑같이 바르게’이다. 말의 뜻대로 하면 된다. / 사진=픽사베이

‘골로로 족족’은 골고루 조금씩이라는 뜻이다. 빠짐없이 고르게 조금씩 하라고 전면에 ‘평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인간 사회가 아무 탈 없이 잘 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한 일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공정과 공평의 문제는 상식 논리로 통하는 보편적인 가치다. 옛날에는 이 공정과 공평의 문제가 보다 심각했을 것이다. 워낙 못 살았기 때문에 특히 먹는 것에서 보다 절실하게 나타났을 게 아닌가.

비근한 예로 제사 퇴물(退物)을 나누는 데도 앞집 다르고 뒷집 다르면, 몇 안된다. 고기 한 점, 떡 하나 더 놓고 덜 놓은 게 동네에서 바로 소문이 돌았다. 사람 차별을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다. 큰 마음먹고 제사 음식을 나눠 준 사람으로선 하지 않으니만 못한 일이 돼 버리니 이런 억울할 데가….

시골 사람들은 정겹게 지내다가도 남의 흉을 잘 보거나 이웃의 단점을 꼬집어 가며 여기저기 말전주를 잘한다. 소박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라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는 심성도 있었던 것이다. 살림하는 주부로서 꿰차고 있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단 제사 퇴물 나누는 조그만 일에 그칠 일이랴. 동네가 공동으로 채취해 분배하는 듬북(거름으로 쓰는 해조류)이나 감태, 모자반 따위에 이르러서는 칼같이 공정을 꾀해야만 한다. 그게 곧 돈이기 때문이다.

가장 객관적인 방법은 분배의 ‘기준’을 정하는 일일 것이다. 혹여 집안에 어르신이 있을 때는 일정량을 더 얹어 주는 방식에 다들 공감할 것이면, 그쪽으로 하나의 관행같이 만들어 가면 무난할 게 아닌가. 

어른과 아이로 구분해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불평, 불만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가 있을 것이다. 어른과 아이에게 별도의 기준을 정해 불공정함이 없도록 하면 될 일이다. 현명하게 대처하면 탈이 없다. 정한 이치대로 하자는 얘기다.

‘우 고로로 알 족족’

간략한 표현 속에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윗사람들에게 골고루, 아랫사람에게 조금씩, 기막힌 공정의 원리다. 이렇게 처리한다면 누구 한 사람 불만을 터트릴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정’이란 말이 지니는 뜻이 ‘모두에게 똑같이 바르게’이다. 말의 뜻대로 하면 된다.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어느 한편으로 기울었을 때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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