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그루
사진=한그루

제주 작가 김병심이 생애 첫 소설집을 발표했다. 《제주 비바리》(한그루)는 225쪽 분량에 단편 소설 6편을 모은 책이다. 

▲제주 비바리 ▲시절 인연 ▲푸른 새벽을 지나온 햇살 ▲식게 ▲유령이 되어 떠도는 시간 ▲근친주의 등을 담았다.

출판사는 소설집에 대해 “여섯 편의 소설은 섬을 바탕에 두고, 그곳에 깃든 이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출판사에 따르면 표제작인 ‘제주 비바리’는 ‘제주체’라는 제주 여성 주인공이 어느 화가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 이후를 그린다. 섬이 가진 습속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성장한 제주체와 외지인으로서의 화가와의 만남은 때로는 섬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기도 하고, 뜨겁게 불태우며 개별의 존재를 더 드러내기도 한다.

‘시절 인연’과 ‘푸른 새벽을 지나온 햇살’에서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제주 여신 신화를 끌어오면서 부침 많은 이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제사를 뜻하는 ‘식게’라는 소설은 제주의 한 집안을 현실적으로 그린 제주식 우화라 할 수 있다. ‘유령이 되어 떠도는 시간’은 보이스피싱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근친주의’는 젬마, 앤디, 악기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현실을 부유하는 존재들의 갈망과 이상을 보여준다.

제주체는 한 번도 해녀가 되겠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해녀들이 잡아 올린 미역과 천초가 도로 양쪽을 점령하는 오뉴월은 비린 냄새로 멀미가 날 정도였다. 종자씨를 하려고 말리는 마늘까지 널어둔 마을을 지날 때면 옷에 냄새가 묻어날까 봐 투덜대기도 했다.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걸어 다닐 수도 없었지만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과 도로로 나와 걷는 사람들조차 항의를 하지 않았다. 해녀들의 수입으로 섬은 지탱되고 있었다. 
- 《제주 비바리》 32-33쪽

부모의 덕분으로 태어났어도 자신의 삶은 자신이 바꿀 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가 되라고 엄마는 말하곤 했다. 여희가 보기엔 엄마는 가믄장이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었다. 부모가 장님이 되어버린 삶 속에서 배꼽 밑의 선 그믓 삶으로 가려면 무지개를 넘어가야 했다. 스무 살. 여희에게는 스무 살이 이 집을 나갈 수 있는 배꼽 밑의 선이었다. 선 안에는 아이의 집이 숨어 있었다. 비밀이 많은 과수원에는 유자들이 햇살처럼 빛났다. 삼나무를 방풍림으로 심던 마을에서 여희는 애기동백꽃을 심은 집에서 태어났다. 여희가 첫 생리를 했을 때 홑겹의 애기동백꽃이 눈이 덮인 올레에 뚝, 하고 떨어졌다. 
- 《제주 비바리》 83쪽

저자는 책머리에서 “나에게는 글을 쓰게 만든 섬이 있었다”고 짧지만 의미 있는 소감을 남겼다.

김병심은 제주 출생으로 제7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더이상 처녀는 없다 ▲울내에게 ▲바람곶, 고향 ▲신,탐라순력도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돌아와요, 당신이니까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동화집 ▲바다별, 이어도 ▲배또롱 공주 ▲돌하르방 등도 발표했다.

225쪽, 한그루,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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