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노뜰 ‘이방異邦의 물고기’

1. 
“사진집에 담긴 히라노운하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외로움과는 다른 고단한 슬픔이 전해진다.”
- 조지현 사진집 《이카이노》 김시종 시인 해설 중에서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를 남북으로 흐르는 히라노운하(平野川)에는 한국인과 밀접한 역사가 서려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 부흥을 꿈꾼 백제인들이 663년 백촌강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상당수가 이 근방에 정착했다는 역사부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이 모여든 때는 오사카가 공업도시로 탈바꿈한 1920년경이다. 1919년부터 1923년까지 히라노운하 개수공사가 이뤄졌는데,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노동자들이 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1923년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뱃길이 열리면서 많은 제주인들이 일본으로 향했다. 그 규모는 당시 제주도 농업 인력이 부족하고, 조상묘가 방치됐을 정도라고 알려진다. 수치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시 교육위원회의 1991년 발표 자료를 보면, 1934년 기준 재일(在日) 한인 규모는 53만7695명이다. 이 가운데 제주 출신은 5만53명(9.3%)이다.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약 20만명)를 감안하면 4명 중 1명이 일본으로 간 셈이다. 재오사카 한인(17만1160명)으로 기준으로 잡으면 제주 출신자는 3만7938명으로 비율이 22.2%로 늘어난다. 무엇보다 전체 재일제주인 중에서 오사카에 거주하는 비율은 무려 75.8%에 달한다.

40년이 지난 1974년에 같은 자료를 보면 제주인들의 오사카 집중 현상은 여전히 도드라진다. 1974년 재오사카 한인은 17만8720명으로 40년 전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제주 출신자는 6만3972명으로 2만명 넘게 증가했다. 

일본 이쿠노구청이 1997년 발표한 ‘이쿠노의 50년 역사와 현황’에서는 “1919년 히라노운하의 개수공사에 토목작업원으로 왔던 한인들이 공사가 완공된 후 떠난 자리에 제주도 출신자들이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재일제주인들이 모이게 됐다”고 기술한다. 안미정 연구원은 2008년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32호를 통해 발표한 논문(오사카 재일제주인 여성의 이주와 귀향)에서 이 같은 자료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쿠노 지역은 마치 ‘작은 제주’라 할 만큼 일본 사회 안에서 제주출신자들의 집단적 거주지였다”고 밝힌다.

19293년부터 1945년까지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오간 여객선 군대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293년부터 1945년까지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오간 여객선 군대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군대환에 탑승한 승객들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군대환에 탑승한 승객들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당시 제주인들이 오사카로 향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제주4.3을 전후로는 위협에서 피하고자 고향을 떠나기도 했다. 

1922년생 박승자 할머니는 제주4.3연구소가 펴낸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2019)에서 일본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밝힌다. 

그는 ‘야학으로 글을 배우고 싶다’는 이유로 1935년 열 네 살 나이에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군대환(君代丸, 기미가요마루) 배에 오른다. 낯선 타국 메리야스 공장에서 밤 12시까지 고무줄 놓는 일에 매진했는데, 실먼지에 눈이 아파 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밭일 중에 ‘군대환아 날 실어가라’ 혼잣말을 할 정도였고, 결혼 후 다시 일본으로 향한다. 미군 공습을 몸소 겪으며 목숨 걸고 귀향했지만, 1947년 관덕정 3.1절 발포사건에 휘말린 남편이 먼저 일본으로 밀항해 떠났다. 박승자는 군인들에 의해 어머니와 남동생을 잃고 난 뒤, 부산·마산을 거쳐 작은 고깃배를 타고 9살 자녀와 함께 일본으로 간다. 일본에서의 삶은 자녀 생일도 챙기지 못할 만큼 척박했다.

“일본 가서 남편 만날 때까지 이런저런 말하지 못 할 말들이 많았지. … 내가 많이 한 일은 우리 한복 만드는 일이야. 남자 한복, 여자 한복 만들어 장사해서 돈 벌었지. 일만, 일만 죽을락 살락하며 살았어. … 아이들 생일 같은 거 나 해 본 적 없어. 생일이 어딨어. 딸들 보육원 가니까 신청하는 날 있다고 해서 우리 딸 네 살 즈음인가, 안된 때지. 아랫아이 업고 큰 년 손잡고 가니까 받아주지 안 했어. 이름 부르길래 가니까 거기 남자가 나를 상담해서 ‘안됩니다’ 하는 거야. ‘다스께데 구다사이(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했지. 아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갈 때도 과자가 어딨어. 아무 것도 못 해줬어. 나중에 보니 수학여행 갈 때 친구들 부끄러워서 자기만 나무 아래 앉아서 먹었다고. 친구들은 부모들 반찬도 하고 과자도 하고 갔지만 없으니깐. 허허. 죽을락 살락 일을 해도….”
-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박승자 편 중에서

고된 현실과 억압, 차별을 긴 시간 감내해온 재일교포들,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아픔은 이카이노(현 이쿠노구) 지역과 히라노운하에 깊이 배어있다. 운하 주변으로 모여든 제주인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분노 혹은 침묵하며,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씌워진 이방인·경계인이라는 굴레에 고뇌했다. 

강원도 원주시를 기반으로 하는 극단 노뜰이 최근 신작 공연 <이방의 물고기>를 원주와 제주에서 가졌다. 이 작품은 서글픈 재일제주인들의 삶을 히라노운하 물고기에 빗댄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짊어진 듯, 자신을 감싸는 제약들을 헤치는 듯 힘겨운 몸부림으로 대를 이은 재일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의 한(恨)을 위무한다. 동시에 묵직한 음악, 단순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장치, 극적인 구성이 만들어내는 노뜰 특유의 여백은 관객에게 긴 여운을 안겨준다.

'이방의 물고기'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제주 공연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이방의 물고기' 출연진과 제작진들이 제주 공연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2.
<이방의 물고기>는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다. 

고요한 무대에 배우가 들어서고 뒤쪽 영상에 일본어 자막이 뜬다. 이내 배우의 대사가 이어진다. 자막과 대사의 조합은 네 차례에 걸쳐 순서대로 등장하는 네 명의 배우와 함께 진행된다. “정체성을 밝히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잘 정착하고 싶었다”, “집, 우리 집, 가족 살던 집”, “일본인으로 태어나면 좋았을 텐데, 그 생각이 혐오스러워 고통스러웠다.” 일본어 질문에 한국어로 답변하는 의도된 구성은, 답변 내용과 맞물려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후술할 마지막 장과 이어지는 극적인 요소로 쓰인다. (1장, 당신은 누구입니까)

배우들은 바닥에 위치해 있다. 그들의 동작은 명확히 규정짓기 어렵다. 힘겹고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은 이내 느낄 수 있다.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자막이 등장한다. “히라노 운하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산다. … 차별과 혐오로 씻기 위해 밤마다 물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그들 중 일부는 물고기가 돼 밤새 운하를 헤엄친다”는 자막 내용은 음울한 현악기 연주와 꿈틀대는 배우 몸짓 연기가 맞물려 ‘재일교포’와 ‘물고기’라는 개념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돌을 붉은 끈에 단단히 묶어 바닥에 내려놓고 위로는 천장에 연결해 원형으로 배치한 장치 안에서, 배우들은 마치 철창에 갇힌 듯 고통스럽게 꿈틀댄다. 분단, 고향, 이산, 조국, 남겨지다, 차별, 경계선 등 단어들이 자막을 채우며 작품 주제에 대해 힘주어 강조한다. (2장, 물고기)

남자가 한 줄기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여자 한 명이 그 손에 얼굴을 들이밀고 팔을 잡는다. 이내 두 사람은 치열한 몸부림으로 대립한다. 여자는 남자를 집요하게 잡고 끌어당기며 얽매이면, 남자는 뿌리치고 걷어내려 애쓴다. 관객은 일본 사회 안에서의 차별과 질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부단한 저항을 떠올린다. (3장, 차별과 저항)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바람 소리와 함께 3장에서의 남자 배우가 별도로 설치한 붉은 끈 돌 앞에 선다. 돌을 들고 움직여본다. 가까스로 끌어안고 한발 씩 앞으로.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정 반대에 매달려 있는 끈은 쉽게 끊을 수도 없어 보인다. 한참 힘겨루기 끝에 한 여자가 등장해 품은 돌을 잡고 내려놓는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조국’이 자신을 붙잡는 걸림돌이 되는 운명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4장, 당신에게 조국은 무엇입니까?)

이 나라 언어 밖에 모르고, 여기 밖에 직장과 집이 없고, 여기 밖에 친구와 아는 사람이 없는 여기가 삶의 기반이다. 싫으면 나가라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 그래도 여기 밖에 살 곳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뛰는 단어일 조국(祖國), 모국(母國), 고국(故國)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의 압박으로 다가온다. 업고, 들고, 눕히는 또 다른 저항의 몸짓과 자막을 통해 2세대 이후 재일교포들의 겪는 디아스포라를 드러낸다. (5장, 당신의 모국은 어디입니까?)

실제 4.3을 겪은 노(老) 재일제주인의 음성을 배경으로, 작품 한 구석을 차지하는 붉은 선 원형 안에 배우가 자리한다. 철창처럼 경계처럼 세워진 붉은 선을 잡고 당기고 뒤틀지만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온몸의 근육을 동원해 손과 발로 돌을 끌어안고 품은 뒤에야 경계 틀이 변화하고, 배우는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경계인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운명을 배척하기보다 받아들일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일까. (6장, 경계인)

배우 한 명이 무대 한 가운데 서서 말한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인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인이 아닌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야기. 음악도 몸짓도 없이 그저 길지 않은 대사만으로 끝나는 장이지만, 마주하는 관객은 재일제주인이 겪었을 디아스포라가 오늘 날 한국 땅 어딘가에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7장,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흰 종이로 접은 배가 사람 모양으로 변한다. 그리고 무대 전체를 자유롭게 누빈다. 종이를 든 배우는 “어머니, 이제사 집에 왔수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자막은 2장에서 보여준 히라노 물고기 내용을 반복한다. 시각적으로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청각적으로는 사뭇 다른 느낌이 깔린다. 어색하게 튀는 음을 반복하는 건반 연주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명백히 대치되는 의도된 불편함을 담은 연출. 현실은 동화가 아님을 강조하는 듯 내내 관객의 마음 한 구석을 붙들었다. (8장,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

모든 출연진이 무대를 천천히 이동한다. 마치 자신 앞의 누군가를 껴안고 반기며, 자신 옆의 어느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고 웃는 행복한 모습. 그들의 종착지는 무대 한 쪽 붉은 선에 묶인 돌무더기. 6장에서 해체된 경계는 배우들에 의해 하나씩 원래 자리를 찾아가면서 다시 복구된다. 재구축된 경계 안에서 밝게 웃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무표정과 힘겨운 동작 만이 남는다. 그 순간 한글 자막이 등장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잊은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그 순간 관객은 자막 내용이 1장의 일본어 자막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다. 1장에서 등장했던 질문의 답변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렇게 해방 전후 제주인들의 희망과 좌절을 함축적으로 그려내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재일제주인들의 삶은 배우들의 몸짓에 공연 초반 보다 선명히 새겨진다. 첫 장과 마지막 장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는 격렬한 현악기 연주와 맞물려 감정을 고조시킨다. (9장, 물고기)

3.
1920년대부터 주변 공장에서 버려진 금속 조각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고, 1960년대에는 플라스틱 공장들의 폐수가 여과 없이 흘러들어갔을 오염된 물길. 그곳은 물고기는 물론, 어떤 생명체도 살기 힘들지 않을까. <이방의 물고기>는 재일제주인들과 얽힌 히라노 운하의 역사성에 주목해 ‘물고기’라는 이미지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사용했다.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물고기, 애초 성립할 수 없는 오류를 품은 작품 소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 타국에서 발버둥 치는 재일제주인들을 투영한다. 운하를 따라 강으로 향해 바다로 들어가 고향 제주 바다로 향하고픈 물고기의 마음이다.

그런 비애를 표현하고자 배우들은 처절한 신체 언어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신체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하며 허리를 꺾고 몸을 돌리며 다리를 올리는 등 고난이도의 동작들은, 대사나 표정과는 다른 영역의 것이다. 특히, 저항이란 메시지를 중요하게 드러내는 3장과 5장에서는 두 사람의 마찰되는 몸짓 연기가 더 빛을 발한다.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br>
'이방의 물고기' 공연 모습. / 사진=노뜰 페이스북

이 뿐만 아니라 음악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맡았다. 현악과 건반을 오가며, 때로는 명확한 의도를 가진 채진솔 음악감독의 구성은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한껏 증폭시켰다. 

“(제 어머니는) 일본에 가시고 남한 정부는 안 믿겠다 해서 북한을 지지하며 살아오셨잖아요. 그런 분이 많거든요 오사카 조총련 중에. 4.3 체험자나 4.3을 피해 오사카에 오신 분들이 많아요. (어머니에게는) 아들을 다 북에 보내면서까지 4.3이 그렇게 크나 했었어요. 그렇게 한국 정부를, 그렇게까지 한국을 부인하고 북한을 지지할 이유가 되는건지, 4.3이 그렇게 큰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여기(4.3평화공원) 와서 보니까 이런 고향을 품고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실은 어머니를 원망했어요. 왜 오빠를 다 북에 보냈냐고. 4.3을 알고 나니까 탓하지 못하겠네. 그래서 불편하네요.”
-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가운데 양영희 대사

“소년시절, 10살 때 말도 모르는 이국에 건너온 아버지. 먼저 돈 벌러 왔던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왔다. 마침 제주도에서는 도민 봉기가 있었던 해, 1948년이었다. …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여러 고통스러운 경험, 외롭고 억울한 일을 아버지는 겪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아버지 인생에 깊숙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지금에서야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아버지는 우리에게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술 마시기만 하면 무언가에 분노하며 생각이 터져 나오곤 했다.”
- 조지현 사진집 《이카이노》 조지현의 딸 조지혜 해설 중에서

재일 디아스포라는 세대 별로 다른 차이를 보인다고 알려진다.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생활한 1세대, 일본에서 나고 자라며 1세대를 통해 고국에 대해 접한 2세대, 그리고 3~4세대. 저마다의 경험과 처지가 다르고, 시기마다 불거지는 갈등(인종차별, 영주권, 고교 무상화 지원 배제 등)도 고려할 때 세대 별 느끼는 고충은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방의 물고기> 5장은 작품의 영역을 한층 더 넓혀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여겨진다. 일본에서 태어나 주로 일본어를 쓰며 자란 다음 세대들의 고민을 아우르기에, 자칫 1세대들의 고통에만 쏠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잡아준다. 앞으로 더욱 외면하기 힘들어질 난민 이슈를 통해 본 주제를 환기시킨 7장 역시 마찬가지다.

설치 미술가 오타 나오미의 장치는 단순하지만, 경계와 저항이란 재일 디아스포라의 핵심을 알맞게 구현한다. 20년째 노뜰 작품에 출연하며 베테랑의 저력을 온몸으로 증명한 이은아를 비롯해 제주 출신 홍한별, 주동하와 현승진 등 출연진들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연기력으로 무대를 장식했다.

<이방의 물고기>는 무대 맨 뒤 영상화면으로 자막을 적극 활용한다. 첫 1장과 마지막 9장에 등장하는 일본어·한국어 질문이나 5장의 독백 형식 등은 명료한 쓰임새로 다가온다. 다만, 2장에서 나열되는 단어들이나 운하 물고기 설명, ‘이카이노, 작은 제주’, ‘전 세계 이산 60만명’ 등 8장과 9장에 등장하는 자막까지 포함한 텍스트 정보들은 전체 흐름과 비교해도 다소 과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나’라는 인상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었다. 단순한 개념으로 풀기 힘든 재일 디아스포라를 관객과 충분히 공감하며 나누고픈 창작가의 고뇌도 십분 느껴졌다.

4.  
노뜰은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삼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 수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이방의 물고기>다. 노뜰은 2022년 한 해 동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주와 일본 두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제주 예술 기획자, 간드락소극장 오순희 대표는 공동기획자로 이름을 올리며 준비 과정에 함께 했다.

디아스포라 연작 두 번째는 멕시코 애니깽 농장에서 강제 노역한 이민자, 세 번째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 사업은 최대 3년 동안 창작 프로젝트에 대한 리서치, 개발, 제작, 유통 등 전 과정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노뜰 역시 올해를 시작으로 2024년까지 매년 작품을 선보인다는 포부다.

신체 언어를 중요시 여기며 역사 문제를 긴 호흡으로 탐구하는 노뜰의 공연 예술은 관객의 한 사람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노뜰이 제주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소재로서 공연 장소로서 제주와 함께 하는 정성은 제주 관객의 한 사람으로 무척 반갑다. 앞서 노뜰은 지난해 전쟁 연작 두 번째 작품 <침묵>을 제주에서 공연한 바 있다. <침묵> 소재 가운데 하나로 제주4.3을 다뤘다. 

사실 단체가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두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제주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제주를 직접 찾아와 관객과 만나는 예술인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할 뿐이다. 더욱이 무거운 주제를 선택함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관객과 함께 곱씹어보는 창작을 공들여 빚어낸다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게 된다. 노뜰의 남은 멕시코, 중앙아시아의 디아스포라 연작도 성공적인 공연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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