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심상찮은 흐름…다시는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최남단 제주가 느닷없는 핵 배치 문제로 한 며칠 발칵 뒤집혔다. 

다름아닌 핵이다. 그런데도 논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자체로 메가톤급 위력을 지닌 사안이지만, 진원지인 여권이 관련 보도를 오보 혹은 가짜뉴스로 몰아가자 논란은 점차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핵은, 오영훈 지사의 말마따나 제주와 도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다. 있을 수도 없고, 검토조차 없어야 한다. 국책사업의 소통 부재를 나무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핵 문제 앞에서 ‘세계평화의 섬’과의 부조화는 어쩌면 한가한 소리다. 제주가 전략적인 핵 배치 요충지가 되는 순간 제주섬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어쩌랴. 일련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이른바 ‘갑툭튀’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의힘 북핵특위가 최근 최종보고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제주 핵 배치'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오영훈 지사는 제주와 서울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 즉각 폐기를 요구하는 등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국민의힘 북핵특위가 최근 최종보고서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제주 핵 배치'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오영훈 지사는 제주와 서울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 즉각 폐기를 요구하는 등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제주의소리

굴뚝의 연기는 누군가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북핵특위가 보고서를 채택하기 이전에도 군불때기가 여러차례 있었다.

보고서 채택 두 달 전 쯤인 10월31일, 한기호 국힘 북핵특위 위원장이 주최한 ‘북핵위기 대응 세미나’에선 충격적인 제언이 나왔다. 

‘제주도 전략도서화와 전략군’이라는 제목의 제언에는 제주도에 향후 핵 전력을 운용할 전략군과 해병 제3사단을 창설하고, 기지방어사령부, 스텔스비행단, 제2미사일사령부, 제2잠수함사령부, 제2기동함대사령부 등을 설치하자는 내용이 들어있다. 

완벽한 군사요새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패색이 짙던 일제가 미군과의 본토 결전에 대비해 ‘결7호 작전’을 세웠던 해방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당시 제주 주둔 일본군은 7만명에 육박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미나 나흘 전인 10월27일에도 한 위원장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제주에 대한 전략도서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3성 장군 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낼 동안 국방위를 지켰던 국방·안보통, 집권여당의 특위 위원장이 주도한 행사에서 나온 내용들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시계추를 잠시만 되돌려보자. 10월이면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이 고조될 때였다. 덩달아 우리나라도 전술핵 재배치로 대북 억제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권 내에서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군사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술핵 재배치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거스르는 것일 뿐더러 핵을 제공해줘야 할 미국의 태도가 매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남한의 전술핵 재배치는 ‘동북아 핵 도미노’의 뇌관을 건드리는 일일 수 있다. 

미국은 1950년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에 전술핵 무기를 배치했다가 소련 해체 직전인 1991년 9월 한반도에서 철수시켰다.  

국힘은 제주 핵 배치는 오보라면서도 최종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아 의심을 키우고 있다. 

흐름상 미심쩍은 지점은 또 있다. 보고서 채택 과정의 논의 내용 중에 제주 제2공항 건설시 고려해야 할 점으로 △미(美) 전략폭격기가 이착륙 가능한 활주로 건설 △핵무기 임시 저장시설 구축 검토가 언급됐다는 점이다. 

이게 하루아침에 나온 얘기가 아니라면, 당정간에 교감이 있었다면, 국토교통부가 왜 제주 제2공항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는지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다. 

국토부는 12월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주 제2공항은 순수 민간공항으로 건설될 예정이라며 군사공항 활용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정작 원희룡 장관은 입을 닫고 있다.

사실 제2공항은 이미 추진 명분을 잃은 사업이었다. 1년여 전 환경부가 최종 반려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하자가 중대해 치유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국토부는 ‘보완 가능성’까지 연구해가며 불씨를 되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작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보완 가능성 연구 용역을 끝내놓고도 두 달 넘게 보고서 완전공개는 거부하고 있다. 

제주 핵 배치가 또다른 무언가를 노린 모종의 애드벌룬 일 수도 있다. 무서운 건 애드벌룬도 자꾸 대하다보면 우리의 의식이 무뎌진다는 점이다. 어느 시점에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시나브로 애드벌룬이 현실화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렇게 되리라는 운명은 아닐진대 한편으로는 제주의 지리적 특수성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해 과거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아온 제주. 거슬러 올라가면, 13세기 원(元)나라 시절부터 그랬다. 당시 제주는 일본과 남송(南宋)을 치기 위한 원의 전초기지였다. 

가깝게는, 1980년대말 송악산 공군기지 건설이 시도됐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그 동쪽으로 해군기지가 건설됐다. 

일찌감치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알아차렸던 것일 게다. 해방 직후 한 외신은 제주가 훗날 서부 태평양지구에 있어서의 지브롤터화할 가능성을 점친 바 있다. 

지중해의 끝. 대서양으로 향하는 길목. 그래서 유럽 각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퉜던 반도. 외신의 예언은 제주가 동북아의 화약고가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였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킨 제주다. 세계평화의 섬으로 우뚝 세워도 모자랄 판에 핵 기지는 어림도 없다. 시련으로 점철된 제주의 아픈 과거를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제 정신이 박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다. 다시는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한다. 군사공항도 가당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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