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7) 요란떠는 장례에 가지 말고 지게 송장에 가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울르는 : 호들감떠는, 요란한
* 영장 : 장례(葬禮)

 겉으로는 꽃상여를 꾸리며 화려하게 차렸지만 음식 대접이 황당하지 않은가. 차라리 지게로 송장을 나르다시피한 집 대접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겉으로는 꽃상여를 꾸리며 화려하게 차렸지만 음식 대접이 황당하지 않은가. 차라리 지게로 송장을 나르다시피한 집 대접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 사진=픽사베이

겉과 속이 달라, 요란하게 소문이 난 장례에 갔더니 사람만 많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할 뿐, 찾아간 손님 접대엔 소홀하더라는 얘기다. 입소문이 난 것과 실제가 사뭇 다름을 지적하면서, 그렇게 홀대(忽待)한 상제(上帝)를 꾸짖는 마음을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사람의 장례는 인류지대사다. 그만큼 문상객들 대접에도 소홀해선 안된다. 지금은 의식이며 음식 대접, 장례 절차에 따르는 일체를 장례식장에 맡겨 치른 뒤, 비용만 결제하면 그만이니 이런 저런 뒷담화가 나올 여지가 별로 없게 됐다. 하지만 옛날엔 달랐다. 

집안에 상을 당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상제들이 의논하며 일들을 진행해야만 한다. 특히 조문 오는 상객들, 또 시신을 운구하고 장지에 가 성분(成墳, 봉분을 이룸)할 때까지 중노동을 하는 분들을 잘 대접하는 게 자손의 도리라 여겼다. 비록 가진 게 없어 빚을 내는 한이 있더라도 가능만 하며 음식을 걸판지게 장만해 대접하는 게 상례였다.

한데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영장날(장례날) 음식을 풍성했던 것이 우리의 풍속이다. 잔뜩 기대했던, 잘 살아 내로라하는 집은 의외로 대접이 시원찮은 게 아닌가. 겉으로는 꽃상여를 꾸리며 화려하게 차렸지만 음식 대접이 황당하지 않은가. 차라리 지게로 송장을 나르다시피한 집 대접만도 못하다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어 볼 것 없다’는 말과 흡사하다.

‘울르는 영장에 가지 말앙 지게 영장에 가라.’

다른 일과 달리, 무덤을 이루는 궂은일은 하고도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한 동네 장정이 대놓고 말하는 듯 육성이 찌렁찌렁하지 않은가. 

“무슨 일을 실속 있게 해라, 아낄 것을 아껴야지, 아낄 데 아꺼야지.” 실속있는 처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귀 기울일 일이다. 

‘울르는’이란 말, 자기의 위세를 내세워 호들갑 떠는 모습도 음미하면 좋겠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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