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아트랩 KOJI 전시 ‘나는 나를 몰랐다’

2023년 계묘년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해가 바뀌면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짐’을 한다. 전후가 바뀌는 분기점을 계기 삼아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이런 저런 다짐을 스스로 혹은 누군가와 약속한다. 물론 그해 12월 31일에 대미를 장식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익숙함을 깨고 조금이라도 달라지겠다는 마음은 좋게 볼 일이다.

새해를 맞아 당신이 무언가를 다짐했다면, 1월 20일까지 예술공간 이아 2전시실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꼭 만나길 당부한다. 

커뮤니티아트랩 KOJI(대표 민경언, 이하 코지)가 주최하는 전시 <나는 나는 몰랐다>는 7명의 제주 청년 장애인들이 지난 2021년 8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1년 넘게 진행한 프로젝트(두 번째 집)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한 자리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예술공간 이아에서 전시 '나는 나를 몰랐다'가 진행 중이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전시장 전경.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박재원, 김혁종, 임예은, 이준영, 김대홍, 부정훈, 김소라. 7명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이면서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다. 코지는 청년장애예술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몇 개월 간 연습하고 연말에 작품을 선보이는 식의 보통의 예술 교육을 밟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일정을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지키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참가 장애인 7명 가운데는 민경언 코지 대표가 제작한 장애인 뮤지컬 <딜레마>(2018), <바리스타즈>(2018), <레인보우 런웨이>(2019), 음악극 <캄캄>(2019·2021·2022) 등에 배우로 참여한 이들도 있다. 특히 뮤지컬 <바리스타즈>(2018)는 한국장애인문화연구원 웹진 이음으로부터 “너무나 문제적 걸작”이라는 극찬 받은 바 있다. 때문에 무대가 선사하는 환희, 기쁨을 알고 있는 일부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기본 중의 기본은 다소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경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몇 번의 무대 경험으로 스스로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지는 경우를 실제로 마주하면서,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닌, 과정 자체가 중요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올해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장애인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두 개의 지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솔직함’과 ‘자립’에 관계된 것이었다. 장애유형에 따라 또 개인별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늘 결정적 순간에 청년 장애인들에게서 ‘솔직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됐다. … 일상의 전반에 걸친 솔직하지 못함으로 기인되는 다양한 현상들은 솔직하지 못한, 솔직할 수 없는, 솔직하지 않아야만 자신과 관계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을수 있다는 무의식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들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이들의 생존 방식은 스스로를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넣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 민경언 <두 번째 집의 자기 극복을 위한 예술적 방법론의 기초 개념> 중에서

그렇게 ‘청년장애예술가 랩(lab), 두 번째 집’은 2021년 8월 시작됐다. 

‘두 번째 집’은 크게 세 가지 활동으로 나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9시부터 1시간 동안 청년 창애인들은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해 코지와 함께 만남을 가졌다. “매일의 일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로 ‘생각의 방’이다.

‘실현의 방’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일명 몸 다스리기라고 볼 수 있는데, 언어·자세·태도·운동을 예술공간 이아 아트랩과 연습실을 이용해 진행했다. 비장애인 관련 분야 종사자와 1대 1 마스터클래스를 가졌고, 주어진 분야에 대한 자발적 수련도 저마다 주어졌다. 

‘타인의 방’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이뤄졌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미술 치료, 가족 상담 등 특강하는 방식이다. 1년을 넘는 '두 번째 집' 일정과 현재 진행 중인 전시까지 모든 과정은 민경언 대표와 신소연 작가(손의기억 대표)가 함께 기획-운영했다. 

매일,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입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듯 단순하지만 기초를 다지는 마치 ‘훈련’과도 같은 과정. 생각이 깃드는 몸을 변화 시키고, 그 틀 안에서 나는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글로 정리해 써 내려갔다.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피하지 않으며 마주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소통 안에서 찾아갔다. 시간이 흘러 낯선 땀흘림이 점차 익숙해졌고 근육에 힘이 붙고 목소리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왜 무대 위에 서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지, 왜 예술을 하고 싶은지 명확한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365일, 시간으로 환산해 3651시간을 진정으로 쏟아 붙자 ‘변화’가 생겼다. 걸음걸이와 손동작 등 시작할 때와 비교할 때 분명히 달라진 신체 구동, 솔직하고 당당한 자기 생각과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민경언 대표의 설명이다. 

예술공간 이아 2전시실에 차려진 <나는 나를 몰랐다>는 이런 과정을 영상과 글자로 기록한 전시다. 영상 안에는 참가자들의 지난 훈련이 요약돼 담겨 있다. 또한 함께 시간을 보낸 마스터들의 진심 어린 조언이 자막으로 덧붙여 있다.

이준영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이준영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임예은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임예은 참가자에 대한 영상.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진행했던 '생각의 방' 영상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진행했던 '생각의 방' 영상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연기를 꿈꾸는 이준영·박재원, 극작을 꿈꾸는 김소라, 직조 예술에 매진하는 김혁종, 성악을 희망하는 임예은, 시를 쓰고픈 부정훈, 그림을 그리는 김대홍까지. 전시장 속 영상, 글, 그림 등에는 시간을 참되게 보낸 그들의 진심어린 땀이 배어있어 관람객의 마음을 흔든다.

특히, 한 손으로 매듭을 짜는 김혁종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길다란 형태의 직조 작품은 중간마다 작은 메모가 적혀있다. 메모 안에는 중간 단계인 날짜가 적혀 있다. 두 팔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하루 만에 완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손, 그 중에서도 몇 개의 손가락만을 움직이고 몸통까지 지지하는데 사용해 만드는 모습과 결과물은 시선을 한동안 붙잡아 놓는다.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과 영상, 글이 전시된 공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김혁종 참가자의 작품과 영상, 글이 전시된 공간.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장애가 핑계가 되지 않도록 용기 있게 살 거에요.”
“이렇게 노력해서 당장 예술가가 되지 않아도 실천하는 지금이 좋아요.”

- ‘두 번째 집’ 참가자의 소감 가운데

보통의 예술은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보이는 결과물로 지난 과정을 대신한다. 관객 역시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몰랐다>는 그런 생각이 편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집' 참가자들에게는 잠자리에서 눈을 떠서 다시 잠자리에서 눈을 감기까지 하루하루를 쌓은 한 달, 분기, 일 년이란 시간 자체가 예술이었다. 창작의 완성은 특정 장소와 물체가 아닌 참가자 개개인 안에 담겨 있다. 전시장은 이런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는 일종의 보고이자 절차에 가깝다. '두 번째 집'은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기대를 모은다.

참가자 김대홍의 그림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 김대홍의 그림 작품.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 김혁종이 쓴 글과 마스터 민경언 간의 대화.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 김혁종이 쓴 글과 마스터 민경언 간의 대화.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들이 지난 1년간 남긴 글이 인쇄돼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들이 지난 1년간 남긴 글이 인쇄돼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들이 지난 1년간 남긴 글이 인쇄돼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참가자들이 지난 1년간 남긴 글이 인쇄돼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두 번째 집'의 취지가 영상으로 나오면서 양 쪽에는 참가자들의 소감이 문장으로 전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두 번째 집'의 취지가 영상으로 나오면서 양 쪽에는 참가자들의 소감이 문장으로 전시돼 있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두 번째 집'에 참여한 박재원 참가자에 대한 감사패.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두 번째 집'에 참여한 박재원 참가자에 대한 감사패.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두 번째 집'을 기획-진행한 민경언은 제주 정착 예술인이다. 최초 경력은 배우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전시, 공연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기획자·연출자로서 제주에서 활동 중이다. 현재 민경언의 작업은 제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장애인 뮤지컬을 비롯해, 원로 무용인 홍신자와 함께하는 공연 등 지역 예술계에서 흡사 공백처럼 놓인 분야를 다룬다. 그러면서 확고한 예술관을 바탕으로 한 예술성을 빠뜨리지 않는다. 유명세를 쫓지 않기에 지역 사회 안에서 모르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가장 저평가된 제주 예술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나를 몰랐다>는 예술이 무엇인지, 삶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근사한 회화와 영상, 화려한 무대와 음악만이 예술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실천 자체가 예술이라고 일깨운다. 

2023년 계묘년이 왔다. 새해에 무언가를 다짐한 제주도민이 있다면 예술공간 이아 2전시실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만나길 꼭 당부한다. <나는 나를 몰랐다>는 분명 긍정적인 자극이 될 것이다. 전시는 1월 20일 금요일까지 열린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이 작업들은 앞서 이야기한 솔직함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 솔직함이야말로 예술에 닿는 가장 빠른 길이자 그 자체로 예술이기도 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 민경언 <두 번째 집의 자기 극복을 위한 예술적 방법론의 기초 개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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