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 (하)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 상임부회장 “화해와 상생, 제주공동체 발전 원동력”

제주4.3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인 3만여 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에 공식 신고한 희생자만 1만 5000여 명이 넘는다. 

중산간 마을 대부분이 불타고 9만여 명의 주민은 삶터를 잃고, 이재민 신세로 오랫동안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공식 신고한 희생자 중 86%는 토벌대에 의해 희생됐고 어린이와 노인, 여성 등 노약자 희생도 무려 33% 달했다. 진압 작전 과정에서 군경도 300여 명이 전사했다.

수눌음 정신으로 서로 품앗이하고 평화롭던 제주공동체는 1947년 삼일절 발포 사건 이후 7년 7개월간 제주도는 피의 광풍이 휩쓸며 반목과 갈등의 섬으로 전락했다. 

그야말로 모두가 희생자였고 피해자였다. 제주섬은 4.3 자체로 트라우마를 가진 섬이 됐고, 그 상처와 고통은 남겨진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고통도 모자라 연좌제에 의한 시련도 겪어야 했다. 

서로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지목하며 반목의 세월을 보내온 제주사회는 음지에 있던 4.3을 조금씩 꺼내놓으며 아픔으로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50년 넘게 켜켜이 묵은 한(恨)이었지만,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서로 대립하던 4.3희생자와 군경을 함께 위무하기 위해 도민들은 2003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영모원을 세웠고, 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2013년 두 손을 맞잡고 화해와 상생을 위한 ‘화해선언’을 발표했다. 

화해의 손을 잡은 두 단체는 매해 합동 참배와 순례를 진행하며 과거사 청산의 모범사례가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원로들이 뭉친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을 이어갈 김창범 4.3유족회 상임부회장을 [제주의소리]가 만나봤다.

올해 2월 1일부터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이끌어 갈 김창범 상임부회장은 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의 화해선언을 높이 평가,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제주의소리
올해 2월 1일부터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이끌어 갈 김창범 상임부회장은 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의 화해선언을 높이 평가,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제주의소리
2013년 제주4.3유족회와 경우회가 손을 맞잡고 화해와 상생을 선언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3년 제주4.3유족회와 경우회가 손을 맞잡고 화해와 상생을 선언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유족회와 경우회의 화해선언은 제주4.3을 정의롭게 해결하는 데 있어 큰 힘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화해하지 않았다면 특별법 개정 등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화해와 상생의 토대는 제주공동체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감히 평가해볼 수 있습니다.”

올해 2월부터 4.3유족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할 예정인 김 상임부회장은 10년 전 유족회와 경우회의 화해선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두 단체의 화해선언이 제주4.3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단체의 화해선언은 갈등 해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세계 보편적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로도 꼽힌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갈등은 우연한 계기에 극적으로 이뤄졌다. 2013년 정문현 유족회장과 故 현창하 경우회장이 공식-비공식적 만남을 이어오면서다.

화해를 위해 손잡은 두 단체의 결단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났다. 매해 4.3영령과 호국영령에 대한 합동 참배, 화해와 상생을 위한 합동 순례 등을 진행하며 갈등을 치유해나가고 있다. 

화해선언 8주년이던 2021년에는 사상 최초로 제주경찰청장, 해병대 제9여단장, 해군 제7기동전단장 등 제주지역 군경 최고 책임자가 참배에 참석하면서 그 의미를 진전시켰다. 

앞선 2019년에는 대한민국 경찰 수장인 당시 민갑룡 경찰청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했고 이듬해 5월에는 제주4.3평화공원을 직접 찾아 지난날을 반성하는 방명록도 작성했다. 

김 상임부회장은 이같이 새롭게 써나간 역사는 두 단체의 화해선언이 빛났던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했다. 화해선언이 4.3해결에 있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화해와 상생을 위한 선언 10주년을 맞은 올해, 4.3유족회는 합동 참배-순례에 이어 평화공원에 화해선언 기념 식수도 계획하고 있다. 모든 걸 극복하고 두 손을 맞잡은 유족회와 경우회의 뜻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펼쳐나가길 바라는 의미다. 

더불어 화해와 상생 선언에 대한 의미와 성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도 진행할 계획이다. 어떤 토론회의 한 갈래로 다뤄진 적은 있어도 중심 주제로 다뤄진 적은 없기에 의미와 성과, 과제와 방향에 대해 찬찬히 톺아보겠다는 취지다.

화해선언 8주년 당시 제주도재향경우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제주시 신산공원 6·25참전기념탑과 제주4.3평화공원에서 '화해와 상생'을 위한 합동 참배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화해선언 8주년 당시 제주도재향경우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제주시 신산공원 6·25참전기념탑과 제주4.3평화공원에서 '화해와 상생'을 위한 합동 참배를 진행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합동 순례 당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목포형무소 옛터를 찾아 4.3영령들을 기렸다. 목포형무소에는 제주4.3 당시 600여 명이 수감된 곳으로 4.3 관련 수형인들이 가장 많이 수감된 곳으로 파악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합동 순례 당시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목포형무소 옛터를 찾아 4.3영령들을 기렸다. 목포형무소에는 제주4.3 당시 600여 명이 수감된 곳으로 4.3 관련 수형인들이 가장 많이 수감된 곳으로 파악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 상임부회장은 “화해와 상생을 토대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더 구현하고, 제주를 평화 인권 공동체로 만들어 나간다면 세계적으로 앞장서는 과거사 해결의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4.3특별법 전부개정 이후의 과제에 대해서는 “가족관계 관련 담지 못했던 조항이 있는데 다듬어서 다시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가족관계가 올바르게 정정돼야 소외되는 분 없이 명예회복을 이루고 배·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로 제주4.3 발발 75주년을 맞았다. 유족분들도 많이 고령화된 만큼 유족회의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다시 그려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유족들의 뜻을 모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4.3과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4.3이 75년 동안 험난한 과정을 극복, 과거사 해결의 세계적 모범사례가 되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재향경우회원분들과 도민, 유족회가 혼연일체로 격려하고 응원해준 덕분”이라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 상임부회장은 “유족회를 대표해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4.3 해결 과정에 늘 도민들과 함께하겠다. 4.3에 대해 많은 격려와 아낌없는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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