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행정 창작 공연의 과제] ③ 창작 기회 합리적 제공, 아카데미 등 과제도

공연 예술의 규모, 자본 등을 고려할 때 제주에서는 행정 주도의 창작 공연이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대규모 작품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 여러 작품들이 행정 주최·주관으로 진행됐지만 도민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많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제주의소리]는 제주도 행정 창작 공연의 과거와 현실을 살펴보고 미래를 위한 과제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제주에서 공연 예술은 타 장르와 비교할 때 척박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 미술·음악은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온 제주대학교라는 정규 고등교육과정, 그곳에서 배출한 많은 창작자와 단체 등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제주도와 행정시, 제주문화예술재단 등 지역 행정기관이 운영하는 시설이나 예술단은 미술·음악 비중이 매우 높다. 오랜 노력 끝에 제주문학관이라는 핵심 거점을 마련한 문학 등 주요 장르는 저마다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극예술을 비롯한 공연 예술로 기준을 삼으면 확연한 공백이 느껴진다. 안정적인 고등교육과정, 인적 네트워크, 거점 시설, 공립예술단까지 전반에 걸쳐 격차가 존재한다. 그나마 무용 예술은 도립무용단이 있다지만 특별한 경우에 가깝다.

제주 공연 예술의 이러한 공백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가 있다. 바로 제주시 창작 뮤지컬 <만덕>,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대로 <만덕>은 배우부터 연출까지 거의 모든 요소를 타 지역에서 통으로 수입했다. 반대로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는 제작진 주축이 제주지역 예술인들이다. <만덕>은 모양새는 갖췄으나 지역 공연 예술 발전을 위한 작은 씨앗도 남기지 않았다.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는 낮은 작품 완성도에 제작 과정까지 논란에 휩싸였다. 

<만덕>은 뮤지컬 경험이 풍부한 인력들이 참여했으나 대다수가 제주와 무관했다.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는 뮤지컬 제작 경험도, 어린이 대상 예술교육 경험도 부족한 제주 제작진들이 전면에 나섰다.

제주 바깥에서 직수입하거나, 뮤지컬 경험이 없는 지역 예술인이거나.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사례가 공존하는 배경은, 제주에 뮤지컬 장르를 제대로 만들 인력과 여건이 충분치 않아서다. 특히, 그 공백을 채우는 과정이 합리적이거나 건강하게 이뤄지지 않고, 결과물마저 평가가 엇갈리면서 문제가 두드러졌다.

제주에서는 공연 예술에 투자하는 자본이 전무하다시피하기에 행정기관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제주도, 제주시, 서귀포시 등 행정기관이 공연 한 편에 억대 예산을 투입할 만큼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공연예술 발전의 기초를 다지는 노력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진=픽사베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공연 예술계 인사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전문인력 육성, 보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판단에 따른 폭넓은 창작 기회 부여 같은 의견에 공감했다. / 사진=픽사베이

제주에서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 예술 교육에 수년간 공을 들여온 예술인 A씨는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에서 “이제는 높은 수준의 공연이 많이 나오고, 덩달아 관객들의 보는 눈도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영상 매체들 영향으로 높아졌다”면서 “뮤지컬은 결코 쉬운 예술이 아니다. 연극과도 오페라와도 다른 고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오페라와는 대사 발성도, 감정 표현도, 극적인 요소도 다르다”라고 피력했다.

특히 A씨는 “제주에서는 공연을 올리는데 목적을 두기 보다는 사람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며 “아무리 크고 좋은 공연을 만들려고 해도 안에는 배우나 제작진이 부족하다. 정작 타 지역에서 데려와도 그들이 대하는 자세는 제주 출신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제대로 할 수 있는 공연 인력을 제주 안에서 키워야 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제주 출신들도 고향에서 더 많이 활동할 수 있도록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좋은 공연 기회, 유익한 판이 지속적으로 마련된다면 인력풀도 넓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공연 예술을 위한 예산이 합당하게 쓰이기보다는, 행정이나 정치권과 잘 아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과연 옳은지 따져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귀포관악단 소속 타악기 연주자 김경택은 뮤지컬 장르에 대한 경험이 최근 제주 안에서 누구보다 풍부하다고 평가 받는다. 제주 설화·실화들을 소재로 만든 창작 뮤지컬 <손 없는 색시>(2019), 제주4.3으로 인한 공동체의 상처와 회복을 다룬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2022) 등에서 작곡을 포함한 제작에 상당부분 참여했다. <동백꽃 피는 날>은 지난해 6월부터 한 달 동안 서울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한 창작 뮤지컬 <창업>(2021~2022)에서 작곡 겸 음악감독을 맡았고, 지난해 제주 블랙박스 공연장 비인에서 열린 실감공연 <그림책 속 제주 이야기>에도 작곡자로 참여하는 등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활발히 현장을 누비는 제주 예술인이다.

그는 “제주에 공연 인력이 많진 않아도, 알게 모르게 경험자들이 다수 분포돼 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제주 출신 배우들도 제법 많다. 그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서 연계하고 묶을 수 있는 기회, 예를 들어 아카데미든 페스티벌이든 만들어 행정이 장기적으로 지원해 발전시킨다면 든든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창작 공연도 중요하지만 일단 지역 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부터 고민하면 좋겠다. 그래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도 자극이 되고 힘도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더욱이 “공연 예술 전반에 대한 지표 조사도 필요하다. 왜 뮤지컬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기획 공연이 앞으로 필요한지 같은 정책 판단을 위해서는, 과거에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파악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당부했다.

제주 문화콘텐츠기획사 브로콜리404 정도연 대표는 2004년부터 공연 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여성 최초 창극연출가로 회자된 바 있다. 경기도, 정읍시, 부산국립국악원, 광주시립창극단 등 다수의 지자체 공연에서 연출을 맡았다. 특히 지난해는 정읍시 창작 국악 뮤지컬 <쌍화지애>을 연출했다. 제주에서는 <제주올레 걷기축제>(2010~2014), <제주4.3 70주년 뮤직·토크콘서트>(2018)를 비롯해 안덕면 서광동리 마을 뮤지컬 <광해악의 노래>(2016)에서 작·연출을 소화했다.

그는 지자체가 제작하는 창작 공연, 일명 ‘브랜드 공연’에 대해 목표부터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도연은 “행정이 공연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공연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부터 기획 단계에서 확실히 정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정도가 아니다. 도민 향유인지, 상설화인지, 타 지역 진출인지 목표를 정해야 그 다음 과정도 이어진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 다음은 소재다. 행정이 기대하는 목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브랜드화 할 수 있는 가치·소재를 고심해서 결정한다. 이 단계에서 기획자와 연출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그렇게 단계가 넘어가면 일종의 쇼케이스를 만들어 평가를 거친다. 규모 확장 여부, 단점 보완·수정 등 시행착오를 통해 비로소 완성도를 갖춘 정식 공연으로 발전시킨다. 뿐만 아니라 가용할 수 있는 공연장과 예술 자원도 확인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3단계, 최소 2단계 절차를 거쳐야 브랜드 공연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도연 대표 역시 제주 안에서 전문 인력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좋은 공연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사람이 필요하다. 특히 제주 같은 제작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교류하고 협력하고 융합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제작 단계부터 제주 내외 인력들을 만나게 하고, 연결하고, 서로 경쟁하고, 교육하고, 협력하는 판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배우들에게는 트레이닝과 오디션의 기회, 창작자들에겐 협업의 기회를 만드는 셈”이라고 당부했다.

이 밖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공연 예술계 인사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전문 인력 육성 ▲보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판단에 따른 폭넓은 창작 기회 부여 같은 의견에 공감했다.

덧붙여 무대 소품·장치 등을 지역 예술인 누구라도 자유롭게 공유하는 관리 시스템, 호평 받는 중소 규모의 뮤지컬 작품 여럿을 초청하면서 동시에 제주 안에서 만든 작품도 공연 기회를 제공해 도민 향유와 창작 기회 제공을 함께 만족시키는 뮤지컬 축제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대 소품·장치 공유 체계는 서울시·대구시 등에서 논의되거나 유사한 방식이 운영 중이며, 뮤지컬 페스티벌은 2020년 제주문화예술진흥원이 개최한 ‘제주뮤지컬페스티벌’에서 일부 시도된 바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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