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8) 외돌고래 뒤에는 큰고기가 뒤따른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웨좀수기 : 외돌고래, 남방큰돌고래
*큰궤기 : 큰고기, 상어를 일컫는 말

해녀들은 잠수를 하다가 돌고래가 외톨이일 때는 급히 피신한다고 한다. 바로 뒤에 사람을 해치는 상어가 따르기 때문이다. 사진=제주도청.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해녀들은 잠수를 하다가 돌고래가 외톨이일 때는 급히 피신한다고 한다. 바로 뒤에 사람을 해치는 상어가 따르기 때문이다. 사진=제주도청.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릴 적에 웨좀수기를 ‘고메기’라고 했었다. 해안가에서 바라보아도 바닷물을 헤치며 떼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천천히, 느긋하게 서쪽 바다를 향해 가로지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바람에 구경꾼들이 호기심에서 모여들곤 했다. 

그때는 멀리 떨어진 곳에 출현했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길에서 손에 닿을 듯 지척지간에서 배회해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꺼번에 수십 마리가 물살을 가르니 어디서 이런 고래가 연출하는 희귀한 풍경을 볼 것인가.

200여 마리였다 급격히 그 수가 줄어 지금은 124마리(또는 104마리)라는 설이 있다. 아쉽기 그지없다. 녀석들이 출몰할 무렵이면 관광객들이 기다리기까지 한다는데…. 관련 행정부서와 환경단체의 제휴로 서식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웨좀수기 뒤엔 큰궤기 또른다’

자연 생태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세계다. 이 경우가 그렇다. 남방큰돌고래 뒤에는 큰고기가 따른다니. 겁도 없이 고래 뒤를 고기가 따른다는 것부터 흥미롭다. 한데 실제 벌어지는 상황이다. 몇십 마리씩 무리 지어 다니는 돌고래인데도 이따금 한 마리만 다닐 때가 있단다. 

이 경우, 그 뒤에는 필시 커다란 고기인 상어가 뒤를 따른다. 사람에게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해녀들은 잠수를 하다가 돌고래가 외톨이일 때는 급히 피신한다고 한다. 바로 뒤에 사람을 해치는 상어가 따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경험칙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큰고기’라 함은 상어를 좋게 우회적으로 불러 달래고자 한 의도가 숨어있다. 사나운 고기를 직설적으로 일컫지 않음으로써 화를 면하려 한 것이다. 일종의 금기적 표현으로 봐도 좋겠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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