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84) 노동시간은 단축의 역사로 흘러왔다 

설 명절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랜만에 반가운 친지를 만나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며 재충전을 해야 할 명절이지만, 명절 이후 사업장 폐쇄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에게는 반가운 명절만은 아니다. 설날만큼은 넉넉한 마음을 나누고 싶지만, 받아야할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의 마음은 겨울바람 보다 더 차갑다. 지난해 제주지역 체불임금은 총 147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작년 12월, 윤석열 정부는 화물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불법’프레임을 씌우고 ‘선복귀 후교섭’ 입장을 유지하다가 ‘업무개시명령’등 이례적으로 행정력을 동원했다. 결국 화물연대는 조합원 투표를 통해 업무에 복귀하고 교섭을 진행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정부와의 교섭은 이뤄지지 않았고, 핵심 쟁점이자 정부가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시행 연장’은 사라졌다.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된 직후 정부는 마치 승전고를 울리듯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구성한 임시기구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를 위해 노동, 교육, 연금 3대 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며, 그 중 노동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하겠노라고 취임 초부터 밝혀온 바 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출범한 2022년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은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 “근로자의 건강권 강화”등을 위해 근로시간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2월 발표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근로시간제와 관련한 권고문을 살펴보면 과연 노동부장관이 밝힌 취지에 부합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우리 미래세대와 미래노동시장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래에서는 미래노동연구시장의 권고문의 내용 중 근로시간제도에 대한 핵심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19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규탄 대회에 등장한 손팻말 / 사진=오마이뉴스
19일 부산시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규탄 대회에 등장한 손팻말 / 사진=오마이뉴스

하루 11시간, 주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권고안은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 노동시간제도는 기본적으로 주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노동시간을 1주 40시간을 한도로 하되, 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 1주간 12시간의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이렇게 주 단위로 규제하고 있는 노동시간을 월 단위, 분기 단위, 반기 단위, 최대 연 단위까지 가능하도록 ‘노사 간의 자율’에 맡겨두자는 것이 이번 권고안의 핵심내용이다. 주 단위 규제가 월 단위의 규제로 바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를 들면 현행 근로기준법상 한도로 매주 12시간씩 연장근무를 꾸준히 한다고 하면 월 52시간까지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노동시간을 월 단위로 규제하겠다는 것의 의미는 1달간의 52시간 연장근무를 1주에 몰아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산술적으로는 기본 40시간+52시간=96시간으로 되어, 1주간의 노동시간이 96시간까지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작년 6월 노동부에서 노동시장개혁 추진방향으로 발표한 내용이다. 

당시에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었고,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발표한 권고문에서는 근로일간에 11시간 연속휴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포함되었다. 각 근로일간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을 반영하면 하루 13시간 중 휴게(식사)시간을 뺀 11.5시간이 1일 최장 노동시간이 된다. 주휴일까지 7일 일한다면 한주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여론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장시간 근로체계로 회귀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제도 도입의 취지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해명자료를 내기에 이르렀다. 법상 주휴일도 지키지 않은 것을 가정한 것일 뿐더러 한주에 80시간 일한다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는 거다. 

정말 그럴까? 작년 6월, 제주오일장과 시내 곳곳에서 ‘2022년 최저임금인상에 대한 도민 설문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도민 누구나를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약 220명의 도민이 참여했다. 그 중 응답 유효한 195개의 설문지 중 1주 노동시간이 80시간이라고 답한 경우는 실제로 존재했다. 80시간을 넘는 케이스도 존재했다. 현행 1주 52시간을 넘게 일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총 14명이었다. 응답자의 7% 수준이었다. 답변자들은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사업주 또는 자영업자에 해당되었다. 

장시간 노동시간이 용인되는 노동존중사회는 성립할 수 없어 

고용노동부장관도 언급할 정도로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 주48시간(최대 주60시간)의 근로시간제로 시작되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989년 개정된 노동법으로 주44시간제가 도입된 이후, 200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주40시간(주5일)제가 시행되었다. 

현행 주52시간은 결코 짧은 노동시간이 아니다. 2020년 한국은 OECD국가 중 3번째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해 1900시간대에 이르는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이번 노동시간 제도의 설계 과정에서 유럽국가의 근로시간제를 참고하겠다고 밝혔고 11시간 연속휴무 도입 등 일부 반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된 것이 있다. 정부가 참고한 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평균 1400~1500시간대를 기록한다. 일찍이 주35시간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4차, 5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생산력의 발달을 포함할 미래 노동시장이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이 필요하고, 강요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과거의 시장이지 결코 미래의 노동시장이 될 수 없다. 노동 존중의 미래시장은 실노동시간 단축으로 나아가야 한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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