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09) 외딴 데도 살다 보면 고향 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웨똔 듸 : 외딴 데, 외딴 곳
* 설당 보민 : 살다 보면, 사노라면
* 고양 뒌다 : 고향 된다

타향이 고향처럼 정들어 살갑다 해도 고향을 잊지 못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타향이 고향처럼 정들어 살갑다 해도 고향을 잊지 못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다. 자신의 태생지이므로 정이 들 대로 든 곳이다. 온갖 추억이 깃들어 있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맺어져 있어 좀처럼 떠나기가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고향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며 한평생을 떠나지 않고 한곳에 눌러 살았다. 농경사회는 토지가 삶의 근본이라 밭이 있는 곳을 쉬이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향 사람들과의 정을 말할 때 지연(地緣)이라고 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참으로 도타운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쌓이면서 더욱 단단한 인과관계가 될 것은 불 보듯 한 일이다.

하지만 급진적으로 산업화하면서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살게 됐다.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나타난 것이 이농현상이다. 그런 바람에 지금은 농촌에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게 됐다. 노령화로 일손이 없어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도 그곳에 정착이 되면 정이 들게 마련이다. 유행가 구절에도 있지 않은가.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낯선 타향이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점차 정이 들어 고향을 느끼게 돼 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고향에 대한 애착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실향민이 되면 견디기 어려운 것이 향수라지 않는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고향에만 갇혀 살 수 없으니, 여기저기로 흩어져 객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먼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좀 많은가. 지구촌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람은 어디 가든 환경에 적응하게 돼 있다.

‘웨똔 듸고 살당 보닌 고양 뒌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고향 그리움’의 정서가 고스란히 함축돼 있다. 스스로 위로한 건 아닐까. 명절 때면 서울이 텅 비어 공동(空洞)이 된다. 한나절 가까이 고속도로를 타며 고향을 찾는다. 타향이 고향처럼 정들어 살갑다 해도 고향을 잊지 못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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