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천병희 역), 명상록, 도서출판 숲, 2005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이자, 로마 오현제(Five Good Emperors)의 한 명이었다. 오현제는 네르바(재위 96∼98), 트라야누스(재위 98∼117),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 5명의 현명한 황제를 말한다. 

5현제 시대에는 황제의 자식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유능한 인물을 양아들로 입양해 황제의 후계자로 삼았다. 그런데 아우렐리우스는 이 규칙을 깨고 친아들인 콤모두스(재위 180-192)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콤모두스는 네로에 버금가는 폭군이었고, 현명한 황제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우렐리우스는 자식 문제는 어떻게 하지 못했고 로마 역사에 큰 우를 범했다. 

후기 스토아 철학자에는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외에도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65), 에픽테토스(Epiktetos, 55?-135?)가 있다. 이들은 각각 황제, 정치인, 노예였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처럼, 세네카는 ‘인생론’을, 에픽테토스는 ‘담화록(엥케이리디온)’ 등의 책을 남겼다. 모두가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삶의 지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덕분에’라는 말로 시작한다. 누구 덕분에 이러이러했다는 식의 기술이다. 1장의 첫 문장이 이렇다. “나의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나는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되었다.” 15명의 사람과 신들이 등장하고, 그들 덕분에 자신의 덕성이 형성되었음을 아우렐리우스는 상세하게 기술한다. 책 본문 처음 상당 부분이 이런 내용으로 채워진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2장에 있는 문장 때문에 잠시 책 읽기를 멈췄다. “책을 멀리하라. 책에 끌려 옆길로 들어서지 마라.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책도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내 수긍되는 문장으로 이끌린다. 한 줌의 흙이 되는 인생임을 알게 해주는 문장이다. 네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네가 마음의 평정을 얻는 데 쓰지 않으면 네 시간도, 너도 사라질 것이고, 두 번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이기적인 충동에 끌려다니는 꼭두각시로 자신을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다. 명성이나 평판은 쉬 사라지는 것임을 수없이 이야기하며 거기에 뜻을 두지 말라고 한다. 행운아마인드를 깨우는 문장도 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나야말로 불운하구나!”가 아니라, “이런 일을 당했는데도 용감하게 참고 견디니 행운아구나!”라고 생각하라. 

무엇을 행하든 그에 대한 열정은 그 가치에 비례한다는 말씀도 무척 가슴에 와닿는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판단력을 믿으라고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네 판단과 행동을 견지하고, 너를 방해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너를 화나게 하는 자들에게 온유하게 대하라고 권한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답게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헌신을 강조했다. 그는 이성적 동물의 선은 공동체이고, 우리 인간은 공동체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언급한다. ‘명상록’의 여러 군데에서 그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자연법칙에 따라 우의와 정의로써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다음 문장처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문장이 있을까? “너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무엇을 행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로 인하여 덕을 본 것은 너다.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결코 멈추지 마라.”

스토아 철학의 중심 개념에는 ‘오이케이온(oikeion)’이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속하는 것, 우리에게 속하는 것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스토아 철학은 인간에게는 자기보존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까지 배려하는 사회적 성향과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성향이 있다고 본다. 

아우렐리우스는 말한다. “내 본성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우리는 두 발처럼, 두 손처럼, 두 눈꺼풀처럼, 상하 치열처럼 서로 협조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성적인 존재는 공동체적 존재이기도 하다. 

마음의 평정

스토아 철학은 공동체를 위한 행동을 강조하는 동시에, 공동체 일 외에는 온전히 자신의 일에 충실할 것을 권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공동체의 이익과 관련시킬 수 없을 경우에는 남들을 생각하느라 네 여생을 허비하지 마라.” 

스토아 철학은 에피쿠로스 철학과 흔히 비교된다. 스토아 철학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질서가 이미 존재한다”는 실재론적 사고에서 ‘목적론적 세계관’을 주장했다. 반면에 에피쿠로스 철학은 “객관적으로 타당한 질서는 없다”는 유명론적 사고에서 ‘원자론적 세계관’을 주창했다. 스토아 철학은 목적론적 결정론을 토대로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삶의 목표로 제시한 반면에, 에피쿠로스 철학은 원자론적 유물론을 토대로 ‘정신의 균형잡힌 평온’을 삶의 목표로 제시한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우리는 그의 스토아 철학이 에피쿠로스 철학만큼이나 “마음의 평정”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마음의 평정’에 기초해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것은 어떤 철학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었다. 

“주위 환경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다소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재빨리 네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고, 필요 이상으로 허둥대지 마라. 계속해서 마음의 평정으로 되돌아가라.”

나가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을 잘 요약하는 한 문장이 있다. 6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인생은 짧다. 지상에서의 삶의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

물론 어떤 사상체계를 따르는가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하지만 스토아 철학보다 에피쿠로스 철학이 더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 책에서 받아들일 것이 없는 게 아니다. 아니 배우고 따라야 할 점이 꽤 많다. 

하지만 존재가 당위를 좇아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 현실의 모습은 이런데 높은 당위의 소리는 듣기는 좋아도 행하기는 어렵다. 윤리적인 요구를 수용하기에 내 그릇이 넉넉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늘 느끼는 바다. 

요즘 세대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추구한다.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헌신, 선한 삶의 추구, 참고 견디는 인내의 삶을 ‘올바른 삶’으로 제시하는 것은 현 세태와는 맞지 않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인생이 짧으니 내 인생을 충실하게 살라는 권고는 어떤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봉사’ 외에도 ‘마음의 평정에 기초한 선한 자신으로의 매진’이 곳곳에 나온다. “왜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가? 그럴 시간에 너 자신을 위하여 선한 것을 더 배우고 우왕좌왕하기를 그만두라.”

오늘날 점점 사라지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생각한다면, 공동체성을 일깨우는 가르침이 귀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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