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4) 최열·홍지석,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혜화1117

미술사만큼 어렵고 고급진 학문도 드물다. 역사 영역은 스토리텔링 기반의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다. 미술사 또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이 많다. 많은 것들을 알아야하는 미술사 공부는 그래서 난해한 관문들을 통과해야 하며, 그만큼 앎의 깊이와 넓이가 남다른 학문 분야이다 보니 ‘고급진’ 학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하나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당대의 정신 문화사를 꿰뚫어볼 줄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당대의 기술력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해당 작품이 탄생한 배경 지식으로 당대의 철학과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제반 영역을 헤아리며, 작품의 도상이나 재료, 기법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는 다방면의 학제 간 융합을 토대로 한 총체성의 학문이다. 

‘미술사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고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후배의 질문 선배의 생각’이라는 긴 부제를 단 이 책 <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는 미술사학자 최열과 예술학자 홍지석이 나눈 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은 미술사와 미술사학에 대한 정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미술사 서술의 방법, 이념과 현실 기르고 기록과 증언, 사실과 해석 사이의 미술사의 위치, 역사와 비평의 차이, 미술사 공부의 방법론 등에 이르는 미술사 관련 주제를 다루고 있다. 미술사와 예술학이라는 학문적 배경의 차이를 넘어 학문적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몇 년에 걸친 대화를 기록하고 정리하여 이 책을 펴냈다. 

선배 최열(1956~)은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주역으로서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민족미술협의회,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등의 미술동인 및 미술운동단체 활동을 했다. 이후 한국근대미술사학회, 인물미술사학회 등의 학회 활동을 했으며, 가나아트 편집장,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으로 일했고, 고려대, 국민대, 중앙대, 홍익대, 서울대 등에서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한국근대사회미술론>, <한국현대미술운동사>,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한국근대미술비평사>, <한국현대미술비평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 <민족미술의 이론과 실천>, <미술과 사회>, <김복진힘의미학>, <권진규>, <박수근평전>, <한국만화의 역사>, <한국근대수묵채색화 감상법>, <사군자 감상법> 등의 어마어마한 미술사 관련 저서를 펴냈다. 

후배 홍지석(1974~)은 예술학을 전공했으나 한국근현대미술사 공부에 심취하여 관련 저술을 해오고 있으며, 특히 북한미술관련 연구와 저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미학예술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남북문학예술연구회 등의 학회 활동을 해왔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진보적, 실험적 예술 활동을 참신한 시각으로 재조명했으며, 1920년대 김복진이 주도한 카프 성립 과정을 조명한 것을 비롯해 나혜석·정현웅·김주경·오지호·길진섭·문학수·백영수 등 주요한 근대미술가들의 이념과 실천을 작가론의 형태로 연구했다. 최근 북한미술의 동향과 쟁점을 다룬 북한미술에 관한 연구 성과가 많고, 김용준·이여성·이쾌대 등 월북미술가들을 연구했으며 미학과 예술학 방법론 연구와 미술비평에서도 크게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60대의 중진 연구자 최열과 40대의 소장학자가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로 만나면서 궁극적으로는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의 입장에서 나눈 이 책의 대화 내용은 미술사 공부의 목적과 과정, 방법, 역할, 차이 등을 다루고 있다. 미술사 서술의 기초인 연대기와 계보학 등을 거쳐 이 책은 미술사를 넘어서 비평의 영역에까지 도달한다. 

이 대화는 오늘날 미술과 미술사가 가고 있는 길에 관하여 체계적이고 친절하게 길안내를 해주고 있다. 이 책의 주안점은 ‘미술’이 아니라 ‘미술사’에 있다. 미술이 독자적인 영역으로 제도화한 지 100년이 지나는 동안, 미술사 또한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강점기의 고유섭(1905~1944)과 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서구학문인 미술사가 도입된 이래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탄탄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구에서 비롯하였으므로 서구적 태도에 갇혀있던 미술사라는 학문을 동시대 한국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주체적인 사유체계를 지향하는 것이 두 연구자의 공동목표다. 이들은 일방적인 질문과 대답에 그치지 않고 미술사와 예술학의 차이와 공통점, 민주화운동 시기를 거친 이와 90년대 이후에 배움과 일을 펼친 이의 생각의 차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각자의 저술과 강의에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도 바쁜데, 이렇게 연구자들 사이의 지적이 대화로 교감한 일은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거니와 어렵고도 고급진 학문인 미술사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이해를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정신문화사의 소중한 열매이다. 따라서 이 책은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우리시대 학자들의 지적인 대화를 통하여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는 수준 높은 담론이다. 

미술사는 객관성과 엄밀성을 요하는 학문이어서 주관성의 개입을 극도로 자제한다. 그러나 이 책은 미술사 서술에 관한 경험담을 담고 있어 여느 저술에서 찾아보기 힘든 저자의 감성적인 대목들까지도 만날 수 있다. 끝으로 이 책에 담긴 함의를 하나 더 말하자면, 그것이 미술사 연구자에 대한 오마주의 뜻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민중미술운동에 헌신하다가 절차적 민주화 성취 이후 한국근대미술사학을 하나의 운동으로 설정하여 조사연구, 저술과 출판, 학회 창립 등에서 발군의 노력과 실력을 발휘해온 최열이라는 연구자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단계를 넘어 새로운 물적 토대와 정신문화를 꾸리고 있는 21세기 한국에서 이렇듯 미술사라는 학문을 대상으로 고담준론(高談峻論)을 펼친 이 책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는 정신문화의 한 줄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큰 즐거움이 아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현(現) 광주시립미술관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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