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11) 외손자를 사랑하느니 방망이를 사랑하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웨손지 : 외손자
* 궤느니 : 사랑하느니, 아끼느니
* 마께 ; 방망이

같은 손주인데도 외손주와 친손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외손주는 성(性)이 다르다. 딸이 낳은 자식이 손주인 건 분명하나 혈통이 다르다는 얘기다.

더욱이 조상 제사를 엄격히 지내던 옛날에는 대(代)가 끊기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양(養)을 들였다. 가까운 근친에서 구하지 못하면 먼 친척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양자를 맞았다. 요즘 딸만 낳아도 된다는 인식이 두드러진 것은 봉제사(奉祭祀)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제사 풍속을 가볍게 여기는 시대의 흐름을 주의 깊게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행사를 하거나 하는 가운데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야 친손이니 외손이니 해서 차별할 수는 없는 노릇히다. 속이야 어떻든 똑같이 사랑으로 대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아이들이 커오는 성장기에는 눈치 보이지 않게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손주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 어차피 사정이 달라진다. 조상 기일이면 외손주와 친손주가 다르다는 걸 손주들이 저절로 알아차리게 마련이다. 외손주들은 조부모 제사에만 참례하지 않는가.

그런데 손주들이 어릴 때는 이런 이치를 모른다. 그렇다고 대놓고 설명할 수도 없는 법. 때가 되면 손주들끼리 ‘아, 우리는 외손주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게 된다.

‘웨손지를 궤느니 마께를 궤라’

어찌 보면 폭발물을 숨겨 놓은 것같이 아슬아슬하다. 혹여 ‘너는 외손주니까’ 하고 차별했다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발 투족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러니 마음속에 간직할 일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헛된 게 외손주를 사랑하는 일, 차라리 방망이를 사랑하라 함이다.

하지만 실제 외손주에 대한 사랑은 친손보다 극진하면 극진했지, 덜하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딸에 대한 애정 때문에.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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