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86) 시대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

국제노동기구의 설립 목적을 서술한 ‘필라델피아 선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UN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는 1944년 필라델피아에서 총회를 열고‘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를 필두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선언 이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는 노동의 존엄을 이야기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다. 

노동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는 필라델피아 선언 이전에 미국의 반독점규제법에서도 확인된다. 1914년에 제정된 반독점규제법인 ‘클레이턴법’(법령을 제안한 의원의 이름이 Clayton이어서 클레이턴법으로 명명됨)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 또는 통상의 품목이 아니다(제6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독점규제법에 인간의 노동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독점규제법은 특정 기업의 시장 독점을 규제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에는 유사한 제도로‘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있다. 당시 미국의 반독점법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활동이 기업의 담합과 같이 취급되어 탄압의 도구로 활용되자, 클레이턴법을 통해 반독점규제의 대상에서 노동을 제외시킨 것이다.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것은 독점금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넘어, 노동의 인격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독점금지법 상의 어떠한 규정도 상호 조력의 목적을 위하여 설립되어 있는 노동단체 등의 합법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1914년 미국의 클레이턴법은 2023년 현재, 110년차 현존하는 규정이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앞에서 열린 '멈춰라 노동탄압! 개정하라 3조-윤석열 정권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 모습. / 사진=오마이뉴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DDP 앞에서 열린 '멈춰라 노동탄압! 개정하라 3조-윤석열 정권 규탄! 민주노총 결의대회' 모습. / 사진=오마이뉴스

작년 연말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하여 ‘사업자 단체의 담합’이라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법 위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들어서 건설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활동 과정에서 불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면 관련법에 따라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기업도 아니고 사업자단체도 아닌 노동조합에 공정거래위반 제재를 들먹이며 노동조합법 상 보장되어 있는 근로시간 면제 제도에 따른 노조전임자의 운영마저도 부정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의 공정거래법상으로도 ‘다른 법령에 따라 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적용 제외 조항이 존재한다.  

도내 건설노조 조합원 중에는 건설 현장 뿐만 아니라 사업주와 근로 계약을 체결하고 레미콘 회사에 채용되어 운전직으로 일하는 조합원도 있다. 이 조합원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업주와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요구는 간단하다. 도내 동종업계 중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으니 임금을 좀 올리자는 요구다. 실제로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종업체 노동자보다 월 50만원 가량 낮다. 노동자의 요구만큼 임금을 인상하더라도 월 급여가 300만원이 되지 않는 처우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 노동자들이 교섭을 체결하지 못하여 파업 등의 쟁의 행위를 한다면 이 또한 공정거래위반이라 할 것인가!

다양한 고용 형태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다. 화물연대의 사례와 같이 고용 형태 상 개별사업자로 되어있지만, 실질은 특수한 계약 형태로 일하면서 노동 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해 결사체인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한 배달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택배사 중 하나인 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하청인 대리점의 택배기사의 노동조합인 택배노조는 직접적인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지난달 13일, 법원은 원청사용자로서 근로 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와 직접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인정했다. 오히려 노동시장과 법원의 흐름을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쫒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부의 장시간 노동 시간 확대 정책 등의 노동개악안이 발표된 이후, 일상적인 노동조합의 활동 조차 부정적인 이미지로 치부되어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을 통해 공안 탄압을 상황을 만들어 노동조합 흔들기에 나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의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동자의 두드림은 연초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새롭게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 새롭게 사용자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노동자, 업무를 마치고 먼 길을 찾아와 노동조합 가입 상담을 하는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찾아 행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굳건하게 존재한다. 오늘도 자신의 터전을 지키며 하루를 시작했을 모든 노동자를 응원한다!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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