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100) 문학의 꿈 키워준 그 시간, 그 장소

향원의 창립과 해체

1967년 어느 봄 날, 막 고3이 된 까까머리 고교생 셋이 남양여인숙에 모였다. 여기가 셋 중 하나인 문무병 군의 집이었다. 문 군과 김동훈, 나는 이때 우리가 주축이 되어 제주시내 인문계 고교(오현고, 제주일고, 신성여고, 제주여고) 재학생 가운데 문학 지망생을 모아 문학동아리를 만들자고 결의했다.

당시에는 상당히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동아리 이름은 향원(鄕園)으로 정했는데, 지역적 정서를 감안한 작명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곧 동지 규합에 나섰는데, 동기생인 김재천(제주일고), 고미라(신성여고, 고금례로 개명), 정순희(제주여고) 등이 우선 포섭됐다. 그후 고1, 고2 후배들도 참여해 <향원> 제1집에는 모두 13명의 회원이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향원은 1967년에 창립해 1974년 군사정권의 긴급조치 발령으로 전국의 모든 고교생 서클과 함께 해체되기까지 8년 동안 아마도 제주도내 학생 동아리로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동참한 역대급 단체로 오래 전성기를 구가했던 동아리였다.

고교 문학 동아리 '향원'의 첫 번째 동인지 / 사진=제주교육박물관
고교 문학 동아리 '향원'의 첫 번째 동인지 / 사진=제주교육박물관

향원 회원과 지도교사

세월이 흘러 향원 멤버가 문학으로 대성한 사람도 있고, 전향한 인물도 있지만 동시대의 선구자로, 엘리트로 성장한 모태가 바로 향원이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문학 외길을 걸어간 사람은 시인으로 문무병, 김재천, 김대용, 김광렬, 강영은, 강방영 등이 있고 소설가로 정순희(작고), 김석희, 고원정 등이 있으며 극작가는 장일홍, 수필가는 김정옥(김가영으로 개명), 이영운 등이 있다. 비문학으로 외도한 사람은 고미라(소아과 의사), 문정인(연세대 교수, 대통령 특보), 김학렬(한국은행 경제교육센터 원장), 홍창희(부산대 교수), 강법선(제주국제협의회 이사장), 김영범(대구대 교수) 등과 서양화가 강요배가 있다. (괄호 안은 전직)

향원의 지도교사는 양중해(작고, 제주대 교수), 송상순(제주교대 총장), 고재환(제주교대 교수), 현길언(작고, 한양대 교수), 김원치(작고, 대검 검사장), 김길웅(수필가), 김순이(시인), 김경환 등인데 양중해 교수를 제외하고 당시 제주시내 고교 교사였다.

어쨌거나 대학 입시를 코 앞에 둔 고3 입시생들이 문학 동아리를 결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요즘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자들의 소행이었으나, 나는 지금도 향원을 만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향원의 활동 내용

향원의 활동은 동인지 <향원> 발행과 창작발표회(문학의 밤)가 있는데, 제주교육박물관에 보관 중인 자료(기증자 : 송상순) <향원> 제1집~제3집의 내용은 회원 작품과 지도교사의 격려사가 실려 있다. 제1집의 권두언은 “우리는 대하(大河)처럼 끊임없이 우리와 같은 길을 밟을 후배들에게 영원토록 계승시킬 것을 맹세한다”고 했지만, 이 야심찬 발언을 끝내 지키지 못해서 유감으로 생각한다.

향원 동인들은 ‘문학의 밤’을 열어서 신작을 발표했는데, 오현고 역사관에 보관 중인 자료(기증자 : 김학렬)에 따르면 제1회(1968.4.13.)에서 제15회(1969.6.6.)까지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갖고 지도교사의 강평과 자유토론을 벌였다. 1년 남짓한 기간에 15회의 작품 발표회를 가졌다는 건 이들 문학소년·소녀들이 얼마나 치열한 문학정신으로 창작에 매진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열정과 의지가 훗날 작가나 시인으로 데뷔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믿는다.

당시의 작품집은 회원들이 직접 가리방(철필)으로 긁어 등사한 조잡한 인쇄물이지만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기증 자료에 ‘향원 문학동인회 회칙’도 있는데, 회원의 회비가 단돈 ‘100원’이라는 조문이 있어 미소를 자아낸다.

동아리 '향원'이 1968년 9월 7일 가진 제9회 신작 발표회 자료집. / 사진=오현고등학교
동아리 '향원'이 1968년 9월 7일 가진 제9회 신작 발표회 자료집. / 사진=오현고등학교

향원의 존재 이유

왜 이 시점(2023년)에서 반 세기 전의 향원을 소환하는가? 현재 학교 현장의 메마른 입시 위주 교육으로 신음하는 청소년들에게 시급한 것은 예술 활동을 통한 촉촉한 감성 체험이다.

학생 스스로가 인성을 회복하고 가치로운 삶과 행복의 통로를 찾는 계기(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나의 고교 시절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이 좌절돼 엄청난 시련을 겪었지만 문학이 있었기에 방황했으나 자존감과 꿈을 잃지 않았다. 운명이 나를 넘어뜨리려 했지만 난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회상―남양여인숙, 그리운 벗들

향원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남양여인숙이다. 지금은 사라진 그 추억의 장소에서 난 어줍잖게도 수백 편의 시와 산문을 썼다. 남양여인숙은 <향원>의 산실이자 우리들의 아지트였으며 내 정신의 용광로였고 영혼의 자궁이었던 것이다.

거기서 만났던, 야속하게도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뜬 절친 김동훈과 동기생 정순희, 2년 후배인 강정희가 그립다. 정순희와 강정희는 착했고, 살아오면서 악독한 세곗년(세상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착하디착한 향원의 여자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 덧없는 세월 덕분에 어느덧 60~70대의 노년기에 접어든 향원 후배들의 얼굴을 보고 싶구나.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도다. 향원 시절은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 장일홍 극작가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제주의소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00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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