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15) 고충석 제주대 명예교수, 前 총장

변혁기에는 현재 취하고 있는 방식이 가장 위험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을 그대로 방치해버리기 때문이다. - 플로리다 주의회 <미래자문위원회>                   

윤석열 정부에서 3대 개혁 과제를 천명했다. 연금, 노동, 교육 개혁가 그것이다. 역대 정부가 특정 이해집단의 반발을 두려워해 손도 대지 못했던 분야다. 이런 점에서, 지난 정부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을 저버렸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무원연금을 부분적으로 손대긴 했지만, 미완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추진하려고 하는 3대 개혁 과제가 성공하길 바라며 여기에 정부 개혁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도 최근에 강한 정부 개혁을 주문하고 나섰다. 앞으로 대대적인 개혁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정부 조직은 비대할 대로 비대해졌다. 정부 인력은 노무현 정부 97만8000명에서 이명박 정부 99만명, 박근혜 정부 때 103만2000명으로 조금씩 늘더니 문재인 정부 때는 116만3000명으로 급증해 역대 정부 중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중앙 행정기관에 대한 조직진단을 철저히 해 불필요한 행정절차, 기능 중복, 인력 배치 문제 점검 등 그 낭비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 산하 공기업에 대해서도 원점 차원에서 개혁의 밑그림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반드시 4차 혁명 등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하고 유연한 정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경쟁력 없는 정부를 가지고 일류국가가 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제주도로 눈을 돌려보자. 오영훈 지사도 도정을 개혁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주로 제주도 산하에 있는 공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그 수가 17개 정도로 알고 있다. 제주개발공사를 제외하고는 산하기관들의 사업비가 50%도 안 되는 소규모 기관이 대부분이다. 매출액 기준으로도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 논리로 보면 우선 개발공사를 제외한 영세한 공공기관들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키우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른 광역자치단체에 있는 기관이라고 해서 제주도에 꼭 존치할 필요는 없다. 제주의 여건이나 산업구조 등 특화된 공기업 모형을 창출·구축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도 차원의 정부부터 개혁하고 이와 연맥해 지방공기업을 개혁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오영훈 지사로서는 취임 이전에 이미 거대해진 제주도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 것인지,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정부 개혁이 시대적 소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개혁을 잘못하면 아니함만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왕 하려면 잘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이론적 근거에 의해 정부 개혁을 해야 할 것인가? 먼저 미국 행정학의 원조 격인 우드로 윌슨의 행정이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보자. 우드로 윌슨은 우리에게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미국 대통령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이분은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과 뉴저지 주지사를 거처 미국 대통령에 오른 저명한 행정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그가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가난한 식민지 조선 유학생 신분으로 이승만은 윌슨을 가끔 찾아가 조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역사의 기억이다.

윌슨은 정치와 행정은 다른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행정(public administration)을 기업에 비유하면서 행정은 경영의 한 분야(administration is a field of business)라고 주장한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행정도 정책이나 법률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이른바 능률성(efficiency)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능률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데 경비, 시간, 인력 등의 투입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거나, 주어진 인적, 물적자원을 가지고 공공서비스 등의 성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마치 민주주의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팥소(팥) 없는 찐빵인 것처럼 능률성이 담보되지 않은 행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면 정부 행정은 능률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정부는 관료제를 통해 능률을 달성한다. 관료제는 법규나 선례, 정해진 절차, 주어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운영되는 조직이다. 여기에는 정부 행정은 관료제적으로 통제될 때만이 능률성의 극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전제가 함의되어 있다. 정부 관료제는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일종의 불신을 갖고 관리 전략에 기초한 제도다. 정부 관료제가 추구하는 능률은 이른바 형식적 능률이다. 만약에 정부 행정을 기업이나 문제해결조직(adhocracy)처럼 운영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적어도 정부 관료제의 역기능으로 거론되는 규제 일변도, 형식 우선주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 부족 등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행정규제는 공무원들에게는 꿀단지 같은 것이다. 그 맛이 공무원의 실존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무원의 기득권을 침해할 수 있는 규제 완화가 쉽지 않다.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데 대만은 3년 걸리는데, 우리나라는 8년이 걸린다고. 한다. 산업을 위해 규제가 필요한데 규제를 위해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부 관료제의 부작용은 형식적 능률론을 맹종한 결과다. 관료제적인 정부 운영이 오늘날 비능률의 대명사로 간주하고 있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1980년 말, 시사주간지 타임스는 ‘정부는 죽었는가?’라는 질문으로 표제를 달았다. 1990년대 초,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교육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많은 자금이 투자되었음에도 학생들의 시험성적은 제자리에 있고 자퇴율은 더 높아졌다. 공기와 산천을 정화하려는 환경법안이 제정된 지 오래됐지만, 환경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 예산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액됐고 복지전달기관도 다기화되었지만 아사하거나 고독사하는 인구는 더 늘어났다. 저출산 문제해결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됐지만, 저출산 문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해결에 투자한 예산만 280조원이 넘었다고 하는데 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분명히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부과되고 있지만, 기존의 관료제적인 운영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떠한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 행정은 이제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오늘날 정부가 근본적으로 실패한 것은 목표가 잘못 설정됐기 때문이 아니라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진정한 발견을 위한 항해는 신대륙을 찾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있다’. 행정이 단순히 예산을 절약하는 차원을 넘어 일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일하는 방식에 혁신을 가져오는 정부 운영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관료적 정부가 아니라 기업가적인 정부라야 한다. 여기서 기업가적 정부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 기업가라는 단어의 참뜻은 훨씬 더 포괄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는 사업가가 아니다. 예컨대 정주영 회장이나 이병철 회장 등은 기업가이지 사업가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공공 부분의 최고의 지도자이지만 기업가형 정치인이다. 도지사나 대학 총장들 중에도 기업가형 행정가들이 꽤 있다. 예컨대 제주도지사가 제주의 생수를 상품화한 경우나 기존의 법과 제도를 활용해 렌터카 주소지를 제주로 옮긴 업체에 등록세율을 조정해줘서 1000억 이상의 세외수입을 올렸던 경우가 기업가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세이라는 학자에 따르면 ‘기업가는 경제적 자원을 생산성과 수익이 낮은 분야에서 높은 분야로 이전시키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업가는 생산성과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법으로 자원을 활용하는 사람이다. 공공기업가란 정확히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기업가적 모형은 이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공공부문의 제도를 말한다. 관료적 행위를 조장하는 정부 구조하에서는 조직의 혁신이나 창발성은 물론이고 실질적 능률성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에 제대로 대응도, 활용도 할 수 없다. 기업가적 정부 개념은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교육청이든, 공기업이든 자원봉사 단체든 모든 수준의 공공기관에 적용해야 할 준거 개념으로 작용해야 한다.

기업가적 정부 개념은 정부만이 공공문제 해결에 독점적인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공공문제 해결에 있어서 기업이나 비영리조직(NPO)이 정부보다 비능률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공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이나 비영리조직(NPO 등 제3부문 (3 sector)의 활력도 잘 이용할 필요성이 있다. 이른바 공공서비스 공급의 거버넌스 모형이다. 정부는 키(정책방향)을 잡고 노(집행)는 기업이나 NPO가 젓게 하자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미국의 여러 주 정부나 지방정부 수준에서 거버넌스 방식의 도입이 본격화돼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적 방식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은 정부 우월적 사고나 기업, 시민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제 정부와 기업 그리고 NPO 관계를 새롭게 조정해 공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한국이 최고 인기다. 베트남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국가브랜드를 높이는데 일찍 세계경영을 표방했던 ‘대우’라는 기업과 축구 감독 박항서의 역할이 매우 컸다. 대우나 박항서는 베트남에서 수십 명 몫의 한국대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15년 전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 때 무려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제거에 나서면서 막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최근 보도로는 예산군의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예산군 청년위원회, 예산군, 백종원 더본 코리아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 성공을 거뒀다고 전해진다.

정부만이 공공문제 해결을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 도덕적 정당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나 냉소가 만연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유능한가에 대한 평가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경향은 비슷하다.

그간 우리가 신앙처럼 신봉했던 ‘정부는 공정하다’는 신화는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이러한 믿음이 깨졌다. 이 사태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 하더라도 정부가 기업의 야수적 욕심을 잘 통제·감독하지 못한 책임은 매우 크다. 선박이 구조변경을 자의적으로 하는지를 엄격하게 감독하고 과적 실사 등의 출항요건 등도 꼼꼼히 검사했다면 세월호 사태는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감독 기능이 완전히 선박 주에 의해 포획된 결과로 일어난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이태원 사건도 일단은 일선 기관인 용산경찰서나 용산구청이 예방적 차원에서 치안 문제에 최선을 다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역설적으로 이태원 치안 문제를 용역회사 같은 민간회사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용역회사는 용산서나 구청처럼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1년 LH 직원 땅투기 사건도 고양이에게 푸줏간을 맡긴 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주택을 제공한다는 사명은 온데간데없고 땅투기가 주 업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 것이다. 공기업 중에는 공권력을 이용, 민간이나 공공기관의 땅을 싼값에 수용해서 민간건설업자에게 비싸게 되팔아 엄청난 이윤을 남긴 경우가 LH뿐이겠는가. 

제주도에서도 국가공기업이 땅투기를 한 예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있는 대장동·백현동 사건 등도 민간업자와 땅의 용도 행위를 지정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관이 합작해서 땅 투기를 한 사례의 전형이다. 이런 행위에는 참여기관에는 엄청난 지대를 가져다준다. 오늘날 LH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민간기업이 오히려 잘할 수 있는 분야다. 현대건설 등이 LH보다 훨씬 싼값에 도로나 아파트 등을 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LH의 기능을 민간기업에 위탁경영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한다. 구태여 그 많은 예산을 들이면서 이 기관을 존속시킬 필요는 없다. 이제 본래의 사명이 다 끝난 LH 같은 공공기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면 제주도의 경우 어떻게 기업가적 정부 모형을 공공문제 해결에 적용해볼 수 있는가. 특히 제주도가 기업, 시민사회단체와의 거버넌스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구축범위가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제주개발의 거시적 아젠더만 담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제2공항 문제나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중산간 건축조례 제정 같은 것들이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방향 설정은 도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가칭 ‘제주 21세기 미래 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무성한 논의를 거쳐서 제주도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여기에는 도, 전문가, 기업, 시민사회 인사 등이 위원으로 참석하고 그 인원은 100명 내로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도가 하는 집행업무에 대해서도 집행방식을 바꿔야 한다. 먼저 제주도가 하는 모든 업무를 직무 단위로 쪼개서 그 직무에 대해 시장성 검토(market testing)를 해야 한다. 시장성 검토는 민간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인지 공공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인지를 검토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보다 민간이 맡는 것이 더 능률적인 업무라고 한다면 그 직무는 민영화하자는 것이다. 과거 전화국의 업무가 정부의 고유업무라고 생각했는데 이 업무는 이제는 민간에게로 이양되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맡았을 때보다 서비스의 질이나 비용 면에서 결코 못 하지 않다. 오히려 세금이 이 조직 운영에 들어가지 않으니 그만큼 국가 재정은 절약되었다. 

정부 행정의 민영화를 거대한 이념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정부가 기업보다 잘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자원봉사단체 같은 제3부문은 적은 이윤을 내고 개인에 대한 동정과 헌신이 있어야 하는 사업(예컨대 유아 보호, 상담, 장애인이나 병자에 대한 간호, 자연환경 보호 등의 일) 등은 더 잘한다. 민영화가 정부의 기본적인 공공책임까지 민간부문에 완전히 이양하는 것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서비스의 공급이 이양된 것이지 이에 대한 책임이 이양된 것이 아니다. 도로가 민간업체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도로가 사설도로가 되지는 않다. 정부가 민간부문에 사업을 맡기더라도 정부는 여전히 정책 결정을 내리고 자금을 지원한다. 이러한 일을 잘해야만 훌륭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제주도도 운영상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하수종말처리장 운영 등은 민간전문 기관에 위탁을 맡기자. 그래야 비용 절감과 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것이다. 제주도가 대중교통 운영에 년 1000억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 성과는 시원치 않다. 버스노선 중 황금노선은 경쟁입찰을 시키고 만성적인 적자 노선에 대해서는 공영제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쓰레기 수거 문제도 민-관이 꼭 같은 조건으로 경쟁입찰에 참여해서 사업을 따도록 해야 한다. 이래야 쓰레기 수거비용도 적게 들고 수거의 질도 향상된다. 관이든  민이든 꼭 같은 조건으로 경쟁시켜야 거기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예산도 적게 들고 공공서비스의 질도 향상시키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정부가 했던 업무 중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공익성이 높은 분야는 반듯이 정부가 직접 해야 한다. 여기에는 만연한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운영해야 할 버스노선, 사회복지기관 운영, 치안, 감염병 예방, 산골벽지의 도로개설 등 다양한 예를 들 수 있다.

또한 공공문제 해결에 비영리조직인 제3부문에 대한 정부의 의존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제3부문은 사회가 희구하는 공공재 공급방식이다. 제3부문은 과거부터 대부분의 정부 사업이 존재하기도 전에 있었다. 정부보다 훨씬 먼저 사회문제를 다루어 왔다. 예컨대 과거 미국에서는 제3부문의 활동이 왕성한 도시에서는 사회문제가 가장 효율적으로 다루어졌다. 예컨대 주거부정자 문제를 다루는데 교회가 큰 몫을 했다. 이런 일에는 정부가 초보자다.

끝으로 공공문제 해결을 위해서 일정한 규모 이상의 예산 지원을 제주도로부터 받는 기업이나 제3부문에 대해서는 그 예산집행에 대해서는 사업평가 환류 체계가 반듯이 구조화돼야 한다. 나는 평가체계가 없는 조직에서는 혁신도, 동력도, 업적도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정부 돈은 눈먼 돈으로 먼저 먹는 놈이 최고라는 인식이 종종 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이 성공할 수 그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이 경제기획원으로 하여금 부처가 하는 사업을 엄격하게 평가하게 하고 그 결과를 해당 기관에 부여할 상벌과 연동시켰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경우 이 평가 업무를 전문성과 비교적 중립성이 있는 제주연구원이 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적법성 평가보다 업무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측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연구원이 성과지표를 개발하고 도지사는 이 지표를 척도로 해당 기관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대해 행정기관장에게 책임도 지운다는 성과 협정(performance agreement)을 맺어야 할 것이다. 도 산하 공기업에도 이 규정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2021년 기준 미술관·박물관 등 180개에 달하는 직영 공공시설물, 도 산하 각종 센터 등과도 성과 협정을 맺어야 할 것이다. 이들 조직에 도의 막대한 예산이 지원되고 있고 대부분이 만성적자 상태다. 2021년 도 직영 공공시설물만 해도 적자가 701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야말로 적자 상태임에도 망할 염려가 없는 한계기업 격이다. 기업 경영상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관장에게 재량권을 부여하고 성과에 대해서는 상벌 상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제주도가 성과 주체라고 해서 도의 산하단체를 관료적으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들 기관은 도의 하청기관도 하위기관도 아니다. 도의 주무관이 목에 힘주고 군기를 잡는 대상이 아니다. 제주도가 해야 할 공공서비스를 대신해주는 파트너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객관적 성과지표를 가지고 거시적으로 통제하고 감독해야지 미세한 일까지 관료적 방식으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일 중심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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