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6) 하종오의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 도서출판b, 2023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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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데믹 시대에 팽배해진 ‘거리두기 민주주의’의 일상의 리듬에 착실히(?) 적응해가는 동안 “아직도 변혁이나 혁명이 절박한 국가들이 있다는 사실 앞에” “세계시민이 아니라 자국민 중에서도 부도덕하고 부정의한 무리를 위해 전쟁하는 권력”(시인의 말)에 대해 탄식하고 비통하는 분노의 시적 정동을 벼리는 시인이 있다. 하종오 시인의 시집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는 ‘거리두기 민주주의’에 나포된 채 자국민의 생명과 건강과 안전에만 도통 관심을 쏟는 데 대한 세계시민으로서 정치윤리적 성찰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

가령,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를 살펴보자.

“전쟁을 벌이고/전쟁 피해를 당하는/우리 모두는 인간이다./인간에 대한 이야기는/하나도 빠짐없이 중요하다./전시 강간을 운 없는 개인이 겪은/안타까운 작은 일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분명히 직시해야 할 건/러시아가 훼손하고 있는 것이/인간이라는 점이다./전쟁은 추상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다./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구체적인 사건이다./개개인이 겪는 전쟁 피해를 규명하는 작업도 구체적인 사건이다./정치외교적 담론으로 전쟁을 중계해선 안 된다./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알려야 한다./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 부분

위 대목은 여느 시적 표현과 다른데, 한 연 전체가 큰 따옴표로 인용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이 부분에 대해 별도로 주를 달아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국내 일간지 특파원의 르포 중 우크라이나 여성 의원의 말을 적절히 행갈이를 하여 자신의 시적 표현으로 구체화한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이후 국내외 미디어들의 보도뿐만 아니라 해당 전문가들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거의 매일 타전되고 있지만, 위에서 직접 인용한 시적 표현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결코 소홀히 간주해서 안 되는, 이 전쟁이 지닌 심각성과 구체성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적 응시를 대면한 적이 없다. 여기에는 “전쟁은 추상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다./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구체적인 사건이다.”는 문제의식이 놓여 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여성 의원이 적시한 ‘전시 강간’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숱한 참상 중 하나로서, 바꿔 말해 인간의 생명을 전쟁의 형식으로 앗아가버리는 아수라의 현실 속 절대악으로 자행되는 그런 추상적 차원의 폭력의 성격을 띠는 게 아니다. 그보다 “러시아가 훼손하고 있는” 적(敵)‒타자가 “인간이라는 점”이 부정당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크라이나 여성 의원과 시인이 ‘전시 강간’을 주목하는 이유다. 러시아군은 점령군(혹은 침략군)으로서 전쟁터에서 약소자인 우크라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가했는데, 이것은 전쟁의 폭력의 형식 중 가장 반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것으로 인간의 생명(잉태와 양육)과 이어진 우주적 관계 자체를 유린․훼손․멸살함으로써 성폭력의 대상인 개별 여성은 물론, 그 여성과 이어진 뭇 존재의 삶에까지 미친다. 더욱이 ‘전시 강간’의 상처와 고통은 전쟁 후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러므로 “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3.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통탄한다. 

전쟁이 사람들을 더욱 빈자와 부자로/더욱더 약자와 강자로 벌려놓는다고 믿는/나는 통탄한다/육이오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에서 살아남은 한국인들/러시아에 침략당한 우크라이나에/폴란드가 오래된 무기를 지원하고,/폴란드에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여/한국이 부강해지는 문제에 대하여/의문하고 고민하지 않는 사실을 나는 통탄한다

— <무기 수출국> 부분

자국이 부강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자행되는 전쟁에 “오래된 무기를 지원하고”, “새로운 무기를 판매”하는 무기 수출의 악무한의 구조에 한국이 편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나는 통탄한다.” 시인의 눈에는 폴란드를 향한 한국의 무기 수출이 표면상 우크라이나 전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실 그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폴란드의 구식 무기를 대체한 것이듯,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가 나토(NATO)체제로 구축된 것을 상기해볼 때, 한국이 폴란드에 신형 무기를 수출한 것은 나토체제의 군사적 역학 관계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미국 주도의 냉전 질서에 협력한 한국식 군사경제의 한 모습일 따름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냉전 속 열전(熱戰)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국이 무기 수출로 국가의 부강을 추구함으로써 유럽의 냉전 속 우크라이나 전쟁에 연루되고 있는 데 대한 시인의 ‘통탄’은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여기서, 하종오 시인에게 민주주의 가치와 그것의 일상을 행복하게 누리는 일은 매우 값진 것이다. 그의 시력(詩歷)이 보증하듯, ‘하종오식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것은 개별 국민국가의 민주주의에 자족하는 시적 상상력의 지평을 넘어 지구화 시대의 세계시민으로서 민주주의의 일상을 꿈꾸는 보다 높은 차원의 정치적 상상력이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상상력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과 관련한 시편들에서 음미할 수 있다.

시인들이 부르는 슬픈 노래를/한 마리의 새가 듣고는 다른 새에게 전하러/평원과 고원과 산악을 날아다니며 부르고,/시인들이 들려주는 괴로운 이야기를/한 줄기의 바람이 듣고는 다른 바람에 섞여서/파슈토어와 다리어와 투르크멘어로 통역하여 들려주고,/시인들이 외치는 아픈 증언을/한 개의 돌멩이가 듣고는 다른 돌멩이에게 다가가/소련군과 미국군과 탈레반군을 맹비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인들은/새와 바람과 돌멩이를 진짜 시인이라 호칭한다

— <아프가니스탄 시인> 부분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 꿈을 꾸기 시작하면/남녀 아이가 한 교실에서 내내 공부하는 꿈/거리에서 음악가들의 연주와 노래를 실컷 듣는 꿈/부르카를 쓰지 않은 엄마의 얼굴을 마음껏 보는 꿈/그 꿈들을 없앨 수 없다는 걸/탈레반은 알고 있었나 보다/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먼 하늘 아래 먼 산 너머 먼 세상으로 연을 날리다 보면/탈레반을 축출하는 꿈도 꿀 수 있다는 걸/탈레반은 알고 있었나 보다 

— <연날리기 금지> 부분

“소련군이 침공하고 미국군이 공격하고 탈레반군이 점령한 나라”(<아프가니스탄 시인>) 아프가니스탄은 평원과 고원과 산악으로 이뤄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옛 소련의 가공할 만한 군사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은 급진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탈레반 세력의 통치에 놓이게 되면서 세계의 언론들은 약속한 듯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한 탈레반의 종교 근본주의와 폐색주의가 뒤섞인 반문명적 폭력에 초점을 맞춰나갔다. 물론, 탈레반에 대한 언론의 통매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탈레반이 보였듯, 자본주의 폐단에 대한 비판의 과잉을 넘어 서구의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과 이슬람문화의 교조주의적 자기동일성은 타자와의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인간 보편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시켜왔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될 것은, 하종오 시인이 비판적으로 꿰뚫고 있듯이, 탈레반 못지않게 미국과 옛 소련이 이 지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행한 반문명적 폭력의 실상을 눈감아서 곤란하다. 그래서 평원과 고원과 산악을 이루는 “새와 바람과 돌멩이를 진짜 시인이라 호칭”하는 이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와 바람과 돌멩이는 아프가니스탄에 어떤 공포와 죽음이 팽배했던지,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무참히 유린되고 압살되었는지 그 생생한 증언을 들려준다. 그리고 탈레반 점령 아래 아이들의 연날리기가 금지당한 이유에 대해 숙고하도록 한다. 미국과 옛 소련과 탈레반에 의해 점령 당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넘어 인간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향한 세계를 꿈꾸지 못하도록 하는 억압의 정치를 성찰하도록 한다. 여기서, 미국과 옛 소련이 물러간 마당에 탈레반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의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봤던 ‘새와 바람과 돌멩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역사를 향한 꿈을 꾸도록 하는 ‘연날리기’가 아닐까. 그래서 전쟁과 혐오가 없는 일상을 만끽하는 것, 즉 “아프가니스탄에서 내전이 끝났을 때/밭에서 나와서 허리를 펴고 둘러볼 수 있어/너무 좋았던 농부들”(<종전>)이 염원하는 민주주의적 삶을 시인은 함께 노래하고 싶다.

4.

물론, 이것은 하종오 시인이 기획하는 정치윤리적 실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일까. <난민 국가>가 시집의 맨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를 헤아릴 수 있으리라. 

난민국에선 누구를 만나도/좀체 눈치 보지 않고/일절 말다툼하지 않고/절대 등 돌리지 않아/사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니/모두 모두 이웃이 된다고/모두 모두 친구가 된다고/장담하는 난민만 살 수 있다//
어느 정도 이상 부유해지지 말고/어느 정도 이하 가난해지지 말자는 약속을/건국이념으로 삼는 국가가 될 것이다

— <난민 국가> 부분

시인은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축출되거나 벗어난 난민이 모여 ‘난민국’을 세운바,  이곳은 독재자와 전쟁이 없고,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지상 천국이다. 무엇보다 국민국가가 낳은 각종 차별과 배제 없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동등하게 인간으로서 위엄을 존중하는 이웃이자 친구의 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이 모든 바탕에는 적정한 정도의 경제적 부에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 속에서 공생공락(共生共樂)과 공빈낙도(共貧樂道)하는 ‘건국이념’이 튼실히 뒷받쳐주고 있다. 여기서, 시인에게 이런 ‘난민국’의 존재 유무의 신빙성을 캐묻는 것은 반시적(反詩的) 물음에 불과하다. 대신, 세계의 곳곳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민주주의적 일상이 심각히 위협받고 있는 지옥도의 현실에 대한 시인의 래디컬한 정치적 상상력의 정동이 수행하는 시적 성찰의 힘을 중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으로서 행복한 일상을 꿈꾸는, 그리하여 민주주의적 일상의 낙토를 향한 시인의 경이로운 꿈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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