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 김치찌개의 시작은 한 청년의 죽음이었다.

“2015년 여름에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한 청년이 굶주림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요, 뉴스를 보시던 (글라렛선교수도회)한 수녀님께서 청년들 중에서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자각하신 거예요. 그렇게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서 운영해달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 저희가 청년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청년들에게 필요하다면 우리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2017년 12월 이문수 신부는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청년들을 위한 식당 운영을 시작했다. 메뉴는 김치찌개. 밥은 무한리필. 무료면 청년들이 심리적으로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생각에 3000원으로 가격을 정했다.

서서히 입소문이 퍼졌고 청년밥상문간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청년들이 부담 없이 든든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 성직자의 김치찌개는 밥 이상의 의미였다. 청년밥상문간은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됐다.

“식당을 개업하고 넉 달 정도 됐을 때 저를 찾아왔던 청년이 있었어요. 당시에 노숙 생활을 하다가 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싶다면서 찾아왔었어요. 굉장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청년 중에서 노숙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은 생각을 못 해봤거든요. 그래서 놀랐고, 저에게 왔던 이유가 물질적이거나 경제적으로 도와달라는 이유가 아니라 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인생의 진로에 대해 상담하고 싶어 왔다는 것도 새로웠어요.”

정릉에서 1호점을 열었고, 이화여대와 낙성대에도 2, 3호점이 생겼다. 밥을 먹으러 왔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청년문간협동조합의 직원으로 함께하게 된 학생도 있다. 김치찌개로 배를 채우던 학생은 사회에 진출해 청년문간의 후원자가 돼 다시 이 신부를 찾아오기도 했다.

밥에서 시작한 청년문간의 활동은 점차 넓어졌다. 이 신부와의 아침 기상 챌린지, 대화하고 미션을 세우고, 플로깅을 하고 길을 걸으면서 청년들이 스스로 탐색하고 다른 누군가와 연결하는 일을 도왔다. 

청년문간 in 제주, 새로운 도전

2023년 1월 30일 제주시 이도2동에 청년밥상문간 4호 제주점(승천로 7)이 문을 열었다. 서울 외 지점으로는 처음이다.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꿈꾸며 제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과의 인연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언젠가는 제주에도 청년밥상문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여름에 제주를 방문했다가 청년밥상문간의 취지를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님께서 그걸 마음에 담아두셨던 것 같아요. 얼마 뒤 가을이 되자 ‘어떤 자리에 식당이 나왔는데 한 번 해보시겠냐’고 연락을 주셨고,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주점이 시작됐습니다”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 진행하는 공공적 프로젝트인 ‘동네부엌’은 청년밥상문간과 결이 맞닿아 있었고, 청년밥상문간의 제주 사무처 역할을 맡게 됐다.

고호진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청년문간의 사업 취지에 공감했고, 저희도 동네부엌이라는 식품조리 사업을 하고 있다는 연결고리가 있었다”며 “인화로 조리분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훈련받으신 분들을 청년밥상문간에 추천드렸다”고 설명했다.

따뜻한 협업으로 서울 밖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청년밥상문간. 하지만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물가가 급격히 치솟으며 원가는 3000원을 넘긴지 오래다. 팔면 팔수록 적자인 구조다. 

식당 운영이 가능한 것은 후원자들 덕분이다. 식사비 보다 많은 금액을 결제하고 가거나, 모금함에 지폐를 넣고 가는 손님들이 있다. 선한 뜻에 공감해 협동조합을 꾸준히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신부가 tvN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한 뒤 그 뜻에 공감한 유재석 씨가 선뜻 5000만원을 기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제주점이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나눔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식재료를 기부한 도민도 있고, 얼마 전에는 가수 KCM의 생일을 맞아 한 팬이 20명 상당의 식사나눔 기부를 했다. 현재 네이버 해피빈에서는 청년밥상문간 제주점 운영비 마련을 위한 모금이 진행 중이다. (https://happybean.naver.com/donations/H000000188195?p=p&s=rsch)

청년밥상문간의 뜻은 문간방(門間房)의 문간이다. 청년들이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사랑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 이 신부는 청년문간의 미션을 ‘청년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일’이라고 전한다. 제주에 문을 연 4호점의 의미가 각별한 이유다.

“저희 식당에 대해서 제주에 계신 분들에게 설명을 해드렸을 때 ‘제주에는 굶는 청년이 없는데'라고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사실 저희가 온 것은 제주에 굶는 청년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청년들이 제일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제주이기 때문이었거든요. 제주의 청년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뭍의 청년들과 제주의 청년들이 함께 만나서 서로 성장하고 또 서로의 안목이 넓어지는 계기들을 많이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청년밥상문간이 청년들의 놀이터였으면 좋겠어요. 와서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고 또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 놀이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