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9) 내 고향 봄 바다엔

섬비탈 토종동백도 눈시울을 붉힌다

 

내 고향 봄 바다엔

겨우내 윗목에 누워 뒤척이던 고향바다
봄은 그 머리맡으로 양은대야를 끌어당기며
어젯밤 잠 설친 돌섬의 젖은 이마를 만지고 있다

푸근히 뜸 잠결에 안개꽃 봄눈이 와서
포물선 물마루 끝이 하늘자락에 허물어지면
아득히 옥돔 어장에 등을 켜는 풍란 한 촉

아직도 가슴에 남은 흉터 하나를 어쩌지 못해
세월의 뒷켠에 숨어 떠난 자를 그리워하던
섬비탈 토종동백도 눈시울을 붉힌다

바다가 솜이불 펴고 남녘창을 열어둔 까닭
돌아오라 사람아, 저 치잣빛 수로를 저어
위미리 낮은 방파제 초록등도 켜리라.

/ 1991년 고정국 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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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개맡이 물봉봉 들민 옷 맨뜨글락 벗어그네/숨비멍 곤작싸멍 또꼬양 뱃쪽뱃쪽/감시룽 오물OOO 고조리가 돼베영”
- 졸저 사투리시집 <지만울단 장쿨레기>에서

죄송하지만, 여기에서 이 시의 내용을 표준어로 번역하고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1950년대 고향바다 이야기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사용했던 사투리는 표준어 번역을 하지 말아달라는 바다의 각별한 부탁이 있어서였습니다. 사람들이 제주어 또는 사투리 운운하지만, 당시 내가 사용했던 언어는 우리마을의 표준어였고, 나의 모국어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고향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인간적인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내가 화내면 고향도 화를 내고, 내가 울면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고향도 같이 웁니다. 어쩌다 나도 시인 또는 작가라는 호칭을 듣게 된 입장이고 보니, 어떤 원고나 강의 등의 약력 란에는 반드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임을 밝힙니다. 또한 고향 문학후배님들에게 시집이든 산문집이든 반드시 고향사투리로 엮어낸 저서 한 권씩 가져달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게 고향에 대한 보답이며, 조상에 대한 보답이며, 이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학 또는 글쓰기가 ‘자아의 재발견’이라 한다면, 나야말로 자연의 일면이고, 그 자연의 일면이 고향인 셈입니다. 그래서 고향 마을은 내 육신의 어버이며, 고향 언어는 내 정신의 어버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山北에 와 살면서도 잠 잘 때 머리맡은 항상 山南쪽에 두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허리에 총탄을 맞고도 꽃피우는 동백나무처럼.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2),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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