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편가르기와 압수수색과 구속영장...혐오정치 의존하는 윤석열 정부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봄이다. 보이지 않던 온갖 생명들이 쏟아져 나온다. 죽었거나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세상을 채운다. 자연계는 그렇게 풍성해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온갖 상상 밖 일들이 윤석열 정부 아래 봄 바람을 타고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봄이 빚은 생동감과 풍성함이 아니라 분노와 갈등, 허탈과 좌절만 남기고 있다,

얼마 전 세종시에서는 어느 목사가 3.1절에 일장기를 내걸어 충격과 분노를 샀다. 3월 1일 봄바람에 일장기를 펄렁거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숨죽이며 기다렸을까. 

검찰공화국이란 말을 증명하려는 듯 대통령실과 행정부, 경찰, 국민연금공단, 금감원, 민주평통에도 검사나 검사였던 사람들로 채워진다. 대장동 50억 뇌물도 무죄로 둔갑시키는 사법부도 있다. 제주도민 사회에 큰 충격과 분노를 남긴 것은 국가수사본부장 정순신 낙마 사건이다.

지난달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 2인자 자리인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출신인 정순신 변호사를 임명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2인자 자리를 검사출신이 차지하는데 대한 경찰들 불만도 있지만 정씨가 하루 만에 사임한데는 묻혀가던 아들이 고1 때 저지른 학교폭력 사건이 드러나서다.

2017년 있었던 학교폭력 사건으로 가해자인 아들은 전학조치 처벌을 받았으나 정씨는 법기술자답게 소송에 소송을 거듭하며 전학 처벌을 무력화시킨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며 비난을 뒤집어쓴 채 하루 만에 물러났다. 

제주도민에게 충격과 모멸감을 준 것은 단순히 학교폭력 사건과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대통령실 인사 검증 문제가 아니었다. 가해자인 아들이 피해자인 제주출신 학생에게 퍼부은 말들이다. 

"제주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더러우니까 꺼져." 검사인 아버지를 두고 있음을 자랑하며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라는 말들이 판결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1 학생이 단순 괴롭힘 정도가 아닌 특정지역을 색깔론으로 폄훼한 것이다.

가뜩이나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제주4.3을 김일성 지령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해 도민들이 분노한 상태다.  

가끔 극우 정치인들이나 일베 수준에서 내뱉는 말이 어떻게 10대 학생 머릿속에 들어갔을까? 검사인 아버지, 10년 넘게 봤다는 조선일보 영향일까?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극한 좌우대립을 거치며 만들어진 색깔론과 지역 혐오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10대들 머릿속에서 스멀거리며 재생산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혐오정치에 의존함은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며 혐오정치 끝은 폭력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올해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 사진=오마이뉴스, 대통령실
혐오정치에 의존함은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며 혐오정치 끝은 폭력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올해 3.1절 기념행사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 사진=오마이뉴스, 대통령실

혐오정치 역사는 오래다. 혐오정치는 합리적 이성이 끼어들 틈 없이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분노로, 분노는 무차별 배제와 공격으로 이어진다. 과거 마녀사냥에서는 여성이 희생 대상이었듯 소수인종이나 사회 약자를 주로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여성과 성소수자, 소수민족,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혐오정치를 펼쳐 대통령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혐오정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빨갱이란 색깔 씌우기였다.

해방정국 아래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힌 제주도가 그랬고 폭동이라던 광주가 그랬다. 

제주사람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 아래 수십 년 억울함조차 내세우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 소리를 다시 생각지도 못할 다른 지역 10대 학생에게서 들어야하니 당혹스럽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가 가해자 정씨만은 아닐 것이다. 세대를 이어가는 색깔론이다. 

지금도 혐오정치는 여성과 이민자, 성소수자, 노동자 등을 상대로 시대마다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도 여성혐오가 선거판을 흔든 대표적 혐오선거였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우리 정치는 혐오정치, 편 가르기 정치가 휩쓸고 있다. 상대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정치는 복잡한 셈법 없이도 우리 편을 모으고 지지세를 키우는 손쉬운 정치술이다. 정치력이 미천할수록 의존할 만하다.

그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이미 지난 대선 승리로 혐오정치가 주는 위력을 맛 본 뒤다. 우리 편이 아닌 모두를 적으로 규정하고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때려잡을 기세다.

곳곳에 노조를 부패와 폭력 집단, 심지어 이적 집단이라 공격하는 정부여당 현수막이 나부낀다.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며 계층간 갈등도 부추긴다. 적나라한 편 가르기 정치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에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과 구속영장 청구로 대응하고 있다. 그럴수록 지지율이 오른다니 윤석열 정부로서는 필요할 때마다 쓰임새 많은 정치도구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란 이름아래 협의와 협력 대상인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다.
얽히고설킨 인간 관계속에서 다양한 이해와 요구는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정치란 본래 공동체 유지를 위해 대립과 충돌을 이해와 배려, 협의와 양보속에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모든 과정을 포기하고 상대를 배척해야할 나쁜 존재로 만들고 우리 편을 모아 죽자고 덤비는 것은 정치라 부를 수 없다.

혐오정치에 의존함은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며 혐오정치 끝은 폭력과 저항으로 이어진다.

낙인찍기와 편 가르기로 혐오와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는 입맛 맞는 정치세력을 모으고 표를 얻는 데는 참 쉬운 방법이긴 하나 그 뒤편 정작 정치가 해결해야할 일들은 쌓여간다.

협의와 합의 대상인 사회구성원을 배척하는 정치는 반드시 반발과 대립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 당연히 민주주의 근간인 협의와 합의는 사라지고 극단적 갈등으로 공동체마저 흔들릴 수 있다.

지금, 우리 상황은 혐오정치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들이 너무 많다. 

대중국 수출 감소로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치를 이어간다. 서민들은 난방비를 비롯한 물가와 이자 상승에 허덕인지 오래다. 타도 대상이 된 노조가 기업과 협력관계를 이루며 생산성을 높일 수는 없다. 국제 관계는 한·미·일 안보 체계로 편중되고 일본 전범기업 배상문제를 비롯한 외교는 굴욕적이다. 제주 제2공항이나 기후위기를 비롯한 환경문제 등 현안은 더 깊은 갈등으로만 치닫는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사랑받기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 군주를 두려워하는 국민은 없다. 혐오정치와 정치 실종이 빚은 암울한 미래가 두려울 뿐이다. / 김효철 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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