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7) 김남주 평전, 김형수, 다산책방, 2022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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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판은 날아와 더불어 / 불이 되자 하네 불이 /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 들불이 되자 하네 (중략)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김경주 작곡의 노래 <죽창가>는 김남주의 시 <노래>에서 나왔다. ‘만인을 위해 싸울 때 나는 자유’라는 시인의 외침도 안치환의 노래 <자유>에 절절하게 녹아들었다. 그의 노래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는 운율을 맞추기 어려운 김남주 시를 록 버전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변계원 작곡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민족주의 성향의 김남주 시인의 노래 가운데 주의와 파당을 넘어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다. 이렇듯 김남주 시인의 말은 노래로 살아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는 곧 노래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로 살아있는 김남주의 시어는 말의 힘을 가진 살아있는 예술이다. 

‘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 영혼을 던져보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 <김남주 평전>은 살아 꿈틀거리는 생동감으로 충만한 김남주의 예술과 그의 삶을 재조명했다. 그것은 김남주문학의 토대를 형성한 전반부의 삶과 민중문학을 일구며 군부독대를 향해 투쟁을 전개한 후반부의 삶을 생애사 서사로 풀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전기의 서술방식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그러한 삶이 치열하게 당대의 사회정치적인 의제들과 만나온 과정과 그 결과물로서 예술적 성취를 유기적으로 그려내면서, 민주화투쟁을 거치면서 시인이 겪어온 고초를 예술적 언어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상하게 풀어낸다. 이 책이 전기가 아니라 평전인 이유이다. 

작가 김형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통찰의 언어를 구사하는 예술가다. 그는 평전을 통해 한국의 근현대 사상사를 성찰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일대를 그린 <문익환 평전>과 원불교의 창시자 박중빈의 사상을 담은 <소태산 평전>을 쓴 바 있다. 식민지와 분단의 모순을 온몸으로 받아낸 선구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그려낸 김형수의 평전 작업은 위대한 종교지도자의 삶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읽어낸 독특한 관점의 서사를 지니고 있다. 김형수의 평전 작업은 뛰어난 인물의 삶을 성찰하는 방식으로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재검토한다. 소태산과 문익환과 김남주에 이르는 평전을 통해 김형수는 20세기 한국의 정신사적인 맥락을 짚어낸다. 

저자 김형수가 그려낸 시인 김남주는 삶과 혁명과 예술을 일치시키며 살아온 순수한 사람이다. 일각에는 김남주의 시에 대해 정교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절묘한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시문학 본령의 가치와는 거리를 두려는 야박한 평가도 있다. 이른바 참여시와 순수시로 나누어 전자의 문학적 가치를 폄훼하려는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순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성찰해본다면 답은 정반대의 결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김남주만큼 순수한 삶을 살다간 시인은 그리 흔하지 않다. 시인의 문학계 후배이자 광주 지역의 후배로서 저자 김형수가 듣고 본 사실에다가 시인이 남긴 글들과 주변인들의 취재를 통해 촘촘하게 구성한 그의 삶의 여정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희생과 헌신 그 자체였다. 참여시인 김남주를 순수시인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시인으로서 본격 활동한 20년 동안 김남주는 세상을 뒤엎는 거대한 혁명의 흐름과 함께 했다. 그는 사회변혁의 에너지와 동행한 예술가의 삶을 사회사적인 맥락의 예술론으로 펼쳐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가이다. 그 이유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는 김남주에게 주어진 조건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회변혁의 한가운데 서서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살아갔던 김남주의 업적은 시대의 부름에 응답한 예술가가 아니라 스스로 앞서나가며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 세상을 개척해나간 행동주의예술가의 전형으로 우뚝 서있다. 

김남주에게 민중은 낱낱의 이야기로 흩어진 다중의 산발적인 목소리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나가는 하나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 민중의 힘을 받아안은 김남주의 예술은 혁명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김남주 예술이 혁명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사회정치사적인 정황들 가운데 예술적 실천이 자리잡아가는 모습들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그것은 시와 혁명을 하나로 보았던 김남주의 순수한 열정이다. 예술과 혁명의 공통점은 순수이다.

김남주가 대적했던 군부독재가 사라진 시대이지만 여전히 그가 지향했던 세상에 적대적인 세력들은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혁명적 사건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지속성을 만들어 가려는 민중의 열망이 집결하는 과정과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남주의 삶과 예술은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성찰하게 하는 정신적 촛불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현(現) 광주시립미술관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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