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부터 제주4.3, 한국전쟁까지…눈물마저 말라버린 한(恨)
13일, 통곡의 세월 담긴 주정공장수용소4.3역사관 개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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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건입동 주정공장수용소4.3역사관에 전시된 옛 주정공장 모습. ⓒ제주의소리

“그때 당시는 죄가 없어요. 죄 없어도 죄 있는 것으로 꾸며서 전부 보냈어요. 우리 형님은 산에서 귀순하라는 말을 듣고 내려왔다가 동척회사로 끌려가 그곳에서 조목조목 죄가 없어도 매를 맞았죠. 뼈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니까 안 한 것도 했다고 하고 죄가 있는 것으로 해서 징역을 갔어요. 징역 가서 목포에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제주시 연동 양두순 씨 증언)

“창고에 들어갔는데 한꺼번에 2~3천명을 막 잡아들여요. 동척회사에서 한 달간 있었어요. 하루는 갑자기 넓은 운동장으로 다 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그게 재판이었어요. 손들라고 해서 들었다가 내리라고 해서 내린 다음 들어왔는데 육지가서 일주일만 살다 올 거라며 300명씩 나눠 보냈어요. 나는 대구로 갔어요. 대구가서 사는데 눈물이 쏟아졌죠. 내가 뭐 징역을 살게 뭐있나, 뭔 죄를 지어서 왔나 그랬어요. 그러다 석방돼 돌아왔습니다.”(제주시 아라동 강창협 씨 증언)

피바람을 피해 몸을 숨긴 한라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고 해 내려왔더니 데려간 곳은 부두 근처 주정공장이었다. 주정의 재료인 고구마가 가득해야 할 창고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이내 곧 육지로 보내지거나 어디론가 끌려가 학살당했다. 

제주4.3 당시 주정공장은 제 역할로 사용되지 않았다. 무고한 민간인을 잡아들여 형무소로 보내거나 총살하기 위해 잠시 머물도록 한, 헤아릴 수 없는 통곡의 장소였다.

4․3의 아픔과 제주 근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밴 주정공장은 눈물마저 말라버린 한 많은 세월이 지난 뒤인 2023년, 역사기념관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제주도는 13일 오전 10시 제주시 건입동 옛 주정공장 터에 지어진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개관식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장정언 전 국회의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비롯해 유족 등 200여이 참석했다. 강종헌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장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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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제주도는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4.3영령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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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당시 최대 규모 수용소이자 헤아릴 수 없는 한이 담긴 주정공장 터에 역사관이 들어섰다. ⓒ제주의소리

4.3 당시 주정공장은 최대 규모 강제수용소였다. 고구마를 저장하던 주정공장수용소 상부 공간에만 3000여 명의 민간인이 수용됐으며, 하부 공간은 혹독한 고문과 취조가 이뤄진 조사실로 활용됐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은 불법 군법회의를 거쳐 비행장이나 동굴, 들판 등에서 학살당했다. 심지어 발에 무거운 돌을 단 채 깊은 바닷속으로 수장되기도 했다.

당시 토벌대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주정공장에 수용했다. 혹독한 고문과 열악한 수용소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임신부들은 공장에서 아이를 낳기도 했다. 

주정공장에 서린 한은 4.3뿐만 아니라 한국전쟁과도 연결된다. 6.25한국전쟁이 터지자 4.3을 좌익 활동으로 규정했던 당시 이승만 정부는 무고한 민간인을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는 적으로 간주해 주정공장 수용소로 잡아들인 뒤 학살했다.

예비검속자들의 다수는 4.3 당시 산으로 도망쳤다거나, 초토화작전 중 살고 있던 중산간 마을을 버리고 해안가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둥 셀 수 없는 억울한 이유로 잡혀간 사람들이었다. 

4.3과 한국전쟁이 있기 전부터 주정공장은 민족의 분노가 서린 공간이었다.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일제 동양척식회사(동척)가 세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항공기 연료로 활용할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해 제주 성곽을 허물어 항구를 만들고 주정공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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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1층에 마련된 추모의 방. 이곳에서는 행방불명된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된다. ⓒ제주의소리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주정공장 창고는 4.3 당시 최대 수용소이자 참혹한 감옥 그 자체였다. 1949년 선무공작에 의해 내려온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던, 삶과 죽임의 마지막 갈림길이 결정되는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에서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형제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며 그 모진 통곡의 세월을 견디며 지내오셨다”며 “사무친 질곡의 세월 속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제주공동체를 일궈낸 도민과 유족여러분께 경의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당시 수용소로 쓰인 고구마 창고나 혹독한 고문이 자행된 주조 공장은 사라졌다”며 “우리가 인력, 예산 타령하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도내 4.3유적들이 언제든지 훼손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영훈 도지사는 “민선 8기 제주도정은 4.3의 세계화와 관련한 기록유산 등재사업을 포함해 올해 75주년부터는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며 “75주년 4.3추념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다시 한번 윤석열 대통령님의 참석을 거듭 요청드린다”고 피력했다.

한편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은 매월 둘째, 넷째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4.3역사관에서는 4.3유적지해설사와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생생한 해설도 들을 수 있다. 해설 관람신청은 전화예약(064-725-4302)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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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개관식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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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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