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11) 우도 달님이

 

혼자서 그렇게 가리라, 벗은 발로 가리라

 

우도 달님이

무일푼 발자국이 제 소리를 낮추는 이치
사방천지 벽이라는 바람의 기별 앞에 
멍 하니 앉은 자세로 별만 헤고 있었지

산정에서 잠시 머문 춥디추운 별자리가 
근처 별들에게 안부처럼 깜빡일 때
쓸쓸히 붙일 곳 없는 별동별이 떠나고,

소리 내지 않았어도 이를 곳에 이르는 법
만경창파 돛단배가 노를 내려놓더라도
바다가 소리 낮추며 그 배 업고 갔던 밤

푸른 하늘 은하수로 소리 없이 흘렀기에 
시작도 끝도 없이 상현 하현의 보법으로
혼자서 그렇게 가리라, 벗은 발로 가리라.

/ 2013년 고정국 詩

ⓒ고정국
ⓒ고정국

#시작노트

이 년 전 제주 동쪽 섬 우도초중등학교에서 1년 정도 글쓰기 지도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맨 먼저 가르친 것이 ‘하늘 관찰’과 ‘하늘과 인사하기’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에 눈으로 보이는 것 다섯과, 마음으로 보이는 것 다섯’을 말해보라고 어린이들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요, 저요! 저요, 저요” 그 중 맨 나중에 손을 들었던 일학년 꼬맹이소녀 대답이, “달님이요...” 사뭇 움츠려드는 목소리였습니다. 

제 시조작품 1만 2천 수 내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어가 자연의 어버이 즉, ‘하늘’이면서 그곳에 뜨고 지는 태양, 달, 별, 구름 등입니다. 해님은 낮에 뜨고, 달님 별님은 주로 낮에 뜹니다. 그리고 저들 움직임에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품 <우도 달님이>의 원제목이 <고요보법으로>임을 알려드립니다.

며칠 전 정월대보름에 열일 제쳐두고, 우도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마중 나갔습니다. 23년 2월 5일 오후 다섯 시 삼십오 분, 비로소 제주동쪽 종달리 바닷가에서 고요히 떠오르는 보름달을 찍었습니다. 내가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에 맞춰, 우도봉 등댓불, 방파제 빨간 등댓불 그리고 아롱아롱 우도면 민가에서 글썽여오는 불빛들도 사람의 눈빛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달님이요…”하고 대답했던 그때 일학년 꼬맹이소녀도 “선생님, 여기요, 저~요오!”하며 나를 향해 손 흔드는 것 같아, 나도 우도 초등학교 근처 유난히 커 보이는 불빛 하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2),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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