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12) 왜가리 사냥 법으로

먹이를 따르려 말고 먹이가 너를 따르게 하라

 

왜가리 사냥 법으로

쭉 펴면 하늘이고 내리면 바다가 되는 
물끄러미, 물끄러미 수평선만 바라보며
외톨이 왜가리 녀석도 조간대에 산다지

바위를 쓰다듬는 노을 녘의 밀물처럼
“악법도 법”이라는 사냥 법을 펼치면서
반백의 소크라테스도 제주에 와 산다지

느린 듯 어리석은 듯 난세에서 배워 익힌 
재래식 사냥기법의 딱 한 발짝 거리에서 
물속에 거꾸로 비친 제 반쪽을 쪼는 새

먹이를 따르려 말고 먹이가 너를 따르게 하라
고요히 파문 짓는 그 오랜 사유 끝에 
부리 끝 파닥거리는 시 한 점을 만났네.

/ 2014년 고정국 詩

ⓒ고정국
ⓒ고정국

#시작노트

이 작품이 발표되자, 시조 단 중견이신 홍성란 시인(문학박사)이 과분한 평을 해주셨습니다. 차라리 오늘은 중앙에 월간 시 전문지에 홍 시인이 썼던 시평을 이곳에 옮겨 <시작노트>로 대신하겠습니다. 

얼마나 오래 왜가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행여 무슨 기척에 놀라 푸르르 날아갈까 봐 시인은 미동도 없이 오래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왜가리가 미동도 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듯, 종일 바위를 쓰다듬어 왔을 밀물이 노을 녘이 되기까지 왜가리는 물끄러미 수평선만 바라본 것일까. 관념에 지나지 않지만 왜가리는 “난세”에서 배워 익힌 “재래식 사냥기법”이라는 자세로 먹이가 자신을 “따르게 하”고 있었다. 절대로 성큼성큼 걷기 않았고 함부로 날개를 퍼덕이지도 않았다. 서둘러서도 절대 안 되었으니 “느린 듯 어리석은 듯”고수한 재래식 사냥기법, 그리하여 “오랜 사유 끝”에 왜가리는 부리 끝에 파닥이는 “시 한 점”을 낚아채게 되는 것이다.

만조 때 물에 잠기고 간조 때 지표가 드러나는 이 조간대에 사는 외톨이 왜가리, 왜가리가 발가락까지 “쭉 펴면 하늘이고 내리면 바다”가 된다니! 당연한 이야기를 도입, 초장에 얹어놓았다. 당연하기에 남들이 말하지 않는 것, 그러기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줄 알았는데 이 시인은 “쓰다듬는”다고 한다. 능청스런 어법, 이것은 세계를 보는 연민이고 사랑이고 자비가 아닐까. 

재래식 사냥기법은 어리석은 악법이지만 이 악법이 아니면 살아갈 방도가 없으니, 참 난세는 난세다. 왜가리가 어리석은 사냥 법을 고수하듯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악법을 따르는 반백의 소크라테스. 시인이 물속에 거꾸로 비친 제 반쪽을 쪼며 살아가는 생각, 난세를 헤쳐 나가기 위해 아프게 사유하며 수긍하고 포용하는 반백의 철학자가 아니 될 수 없다. 이 시의 미덕은 능청과 포용이 하나의 깨달음에 상도했다는 데 있다. 먹이를 따르려 말고 먹이가 너를 따르게 하라!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2),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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