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8)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2022

책의 주인공은 빨치산 출신의 아버지이고, 화자는 주인공의 딸이다. 전지적 시점은 물론 아니고, 1인칭 시점인데, 마치 전지적 시점처럼 아버지와 그 주변 인물의 형상과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단편 활동사진과 같은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간간히 사이사이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를, “전직 빨치산”, “국방군의 포위 직전 아지트를 빠져나와 곡성군당을 살렸다는 전설 속의 혁명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로서 체면과 긍지를 잃지 않은” 인물, 그러나 “사회주의자답게 의식만 앞선 농부”,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로 딸의 이름을 ‘아리’로 정한 아버지로 ‘정의’ 내리고 있다. 제목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무엇에서 ‘해방’되는, 또는 아버지를 ‘해방’시키는 과정인가? 아니면 아버지에 대한 딸의 ‘해방’ 일지인가? 처음에는 전자인줄 알았다가 잠시 후엔 후자라고 단정했고, 그리고 마지막에선 다시 전자로 기울었다. 

사회주의자란 누구, 아니 무엇인가? 

사회주의자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사회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19세기 중반에 처음으로 ‘사회주의’란 용어가 사용된 후로 다양한 갈래치기로 인해 과학적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등등 분파도 다양하고 정의 또한 각양각색인지라 말하자면 길고 장황하다. 다만 여기서는 아버지의 사회주의자로서의 덕목에 대해 언급할 따름이다.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한 번도 정색하고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게다가 국졸인 아버지에게 사회주의 이론을 요구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그들을 위해 싸운다고 믿었으며, 결국 산(백운산)으로 올라가 빨치산이 되었고, 산에서 내려와 전기고문을 당해 사시斜視가 되었으며,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내가 되었다. 그러다 지리산 남부군 출신의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명의’인 한의사의 한약 한 첩으로 딸 아리를 낳았다. 비록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뇌출혈로 사망하기는 했으되 유물론을 신봉하는 사회주의자답게 영생을 얻거나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먼지’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67쪽) 
둘째, 유물론을 신봉하기 때문에.(15쪽) 
셋째,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않기 위해.(61쪽) 
넷째,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지기 위해.  

그럼 “핵심만 중요한……사소한 일상 따위 돌아보지 않는 사회주의자” 다운 남부군 출신의 어머니는 어떨까? 

“아버지가 북한을 비판하면 파르르 날을 세우던, 누가 보면 천생 사회주의자였다.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 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음에도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21쪽)

그럼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피를 받고 그런 아버지의 교육을 받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이다. 남들에게는 빼도 박도 못하는 빨치산의 딸이겠지만.”라고 말하는 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만에 하나 어머니가 월북했다면 자기 농사에 심혈을 기울이다 진작에 숙청당했을 거라고. 그것이 당신들이 믿는 사회주의의 실체라고.”(103쪽)

복선複線

책속에 길이 몇 갈래가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안에 적어도 또 다른 한 가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블랙 코미디 같은 빨치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속에 우리 사회의 코미디만도 못한 웃기는 상황에 대한 비꼼이다. 

하나는 이른바 ‘사회주의자연(社會主義者然)’하는 이들에 대한 비웃음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자들이 많다. 한 때 사회주의자인 것이 마치 벼슬인양 거들먹거리는 자들. 그들은 이 책을 읽으며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의 말대로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위한다면 그게 사회주의자인가?  

둘째, 사회주의 이론과 전혀 별개의 실천적 형태에 대한 비판이다. 아시다시피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의 양태는 독재주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민중(인민)에 의한, 민중을 위한 지배를 위해 만들었다는 ‘공산당’은 이상理想은 저버려둔 채 탐욕과 야망으로 변신해간 이들의 소굴이 되었다. 그들이야말로 사회주의의 본질에서 벗어나 반사회주의자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사회 또는 나라들이 ‘사회복지社會福祉’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의 분배와 기회의 평등에 성공함으로써 이른바 사회민주주의(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가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수탈과 탄압이 극에 이르러 마침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한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절반 정도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자본주의이며, 지금의 사회주의는 절반의 자본주의와 독재주의가 결합된 우스운 형태의 사회주의이다. 아마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어딘가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거나 레닌 또는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멱살을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멱살 잡힌 이들은 제3세계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를 표방한 황당무계한 독재자들에게 화살을 돌리겠지만.     

셋째,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빨치산’, ‘빨갱이’와 동격이거나 동의어였다. 한때 이 모든 것이 금기어였고, ‘반동’을 때려잡는 빌미이자 죄목이고 무기였다. 황당한 것은 지금도 ‘빨갱이’는 좌파를 때려잡는 우파의 좋은 몽둥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무슨 ‘꼴값’인가? 

넷째, 가장 형편없는 일은 이를 봉건제의 잔재인 연좌제緣坐制(조선시대 연좌제는 1894년 폐지되었으나 6.25전쟁 이후 남북분단 상황에서 관례처럼 시행되었다가 1980년 없어졌다)로 엮었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시작과 끝도 사실은 ‘빨갱이의 딸’의 아버지에 대한 해원인 셈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빨치산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전한 빨갱이 콤플렉스,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 그 흉측한 일면을 비꼬고 희화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버지는 박선생(아버지의 동기동창이자 절친)이 구독하는 조선일보를 빼앗아 후루룩 일별했다.
그러고는 박선생에게 휙 집어던졌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46쪽)

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사회주의자인 것도 바보짓이야.”

아마도 청량리 경찰서에서 풀려난 후에 하신 말씀인 듯하다. 어쩌면 아버지도 한때 사회주의에 열광했을 지도 모른다. 굳이 말씀하시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저리 겡우 바르고 똑똑헌 양반이 왜 하필 뽈갱이가 되었을꼬?”
그래놓고는 꼭 한 마디 덧붙였다. 
“하기사 그 시절에 똑똑흐다 싶으면 죄 뽈갱이었응게.”
“똑똑한 사램만 뽈갱이였거니. 게나 고등이나 죄 뽈갱이였제.”(117쪽)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사촌들이 했던 말이다. 한때 개나 소나, 게나 고둥이나 죄다 ‘뽈갱이’였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도 많았고, 또한 아무나 그토록 오래 ‘뽈갱이’로 버틴 것도 아니었다. ‘뽈갱이’ 가운데 절반 넘게는 살해되었고, 나머지는 전향하거나 포기했으며, 소수는 비전향으로 남았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 고상욱씨처럼 전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향하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로 굳건히 ‘사회주의자’로 자처한 이들도 없지 않다. 사실 고상욱씨가 굳건하게 사회주의자로 버틴 것은 단순히 사회주의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 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252쪽)

여기에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 그녀가 결국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위해 눈물 흘리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여정을 눈치 챌 수 있는 단서 말이다. 아리의 아버지는 사실 이런 인물이다. 

“아버지는 본디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사람이었다.”(20쪽)
“아버지는 언제나 인간을 신뢰했다.”(57쪽)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랑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68쪽)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절대 굽히지 않는 아버지.”(103쪽)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138쪽)
“아버지는 화끈한 합리주의자이긴 했다.”(168쪽)
“아버지는 진짜 냉정한 합리주의자구나.”(217쪽)

그리고 그는 “소멸(죽음)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44쪽)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전기고문으로 심한 후유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문 중에 젤 쉬운 것이 전기고문이다. 금방 기절해 붕게.”라고 말할 줄 아는 고난 속에서도 유머와 담담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회주의자이면서도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주의자’(109쪽)가 될 수 있었다. 설사 누군가(민중 포함)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돈을 떼일지라도 사람을 끝까지 믿어줄 수 있는 사람, 이념 때문에 결코 아무나 죽이지 않는 사람, 질 게 뻔한 싸움(빨치산 싸움)을 하면서도 끝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사람. 그 ‘오죽하면’은 남에 대한 말이지만 또한 자신에 대한 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딸 ‘아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딸이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녀가 ‘빨치산 딸’이라는 수렁에 빠져 겪어야만 했던 천형과도 같은 일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설 110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고 말하고, 다시 50쪽 정도 지난 다음 “아버지를 잃었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하며, 좀 더 지나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부르며” 눈자위가 붉어졌다. 그리고 끝날 무렵이 돼서야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제야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그녀는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를 찾은 것이리라. 

남은 말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이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딸의 해방일지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딸의 해방은 곧 아버지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뒷모습으로만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앞모습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닌 아버지인 이유이다. 그렇게 그녀는 이전에 “나의 우주였다.”는 아버지를 다시 찾았다. “내일이면 몇 줌의 먼지로 화할”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그런 아버지가 살았던 구례에 가고 싶다.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을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는 바로 그곳에 가서 누군가 구례 토박이가 ‘항꾼에(함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젊은 시절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읽고 충청남도 보령시 관촌(冠村 갈머리)에 가고 싶었던 것처럼.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등 70여 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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