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88) 노동 시간 기록하는 습관 필요

일한만큼 받고 일하는 것, 나의 노동시간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 사진=픽사베이
일한만큼 받고 일하는 것, 나의 노동시간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 사진=픽사베이

정부가 주69시간을 필두로 한 근로시간 제도개편을 발표한 이후 연일 여론이 뜨겁다. 직접 제도의 영향권에 있는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도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여론을 인식한 것일까? 정부에서 무분별한 포괄임금계약과 관련하여 감독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카드를 꺼내어 들었다. 포괄임금제란 무엇이며, 장시간 노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포괄임금제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서 직접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임금계약형태의 한 종류로서 판례의 해석에 따른 제도다.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소정근로시간 및 임금(구성방법, 계산방법, 지급방법)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하지만 포괄임금제 하에서는 근로계약 체결시 소정노동시간 이외에 연장․야간 및 휴일노동에 대한 시간을 사전에 약정하여 예정된 수당을 지급하게 된다.

예컨대 ‘기본임금에 제 수당을 포함한다’등의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판매사원 등 외근이 많아 노동시간 계산이 어려운 업종이나 감시단속적인 업무의 경우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포괄임금계약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경우가 많고 장시간 노동과 무료노동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법원에서는 포괄임금계약의 유효성을 엄격하게 판단하여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법원의 일관된 입장은 근무형태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실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고, 여러 사정상 정당하다고 인정될 때에 포괄임금 계약이 유효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노동시간을 계산할 수 있는 업종의 경우에는 포괄임금계약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노동시간 계산이 가능한 일반직종의 포괄임금제 도입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10인 이상 기업의 40%가량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답했고, 특히 사무직의 포괄임금 도입비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추가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이 확인 될 수 있어야 하고, 사전에 약정한 추가노동시간이 계약상 확인이 되어야 무료노동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급여는 월 300만원으로 한다’는 식의 근로계약이 체결되는 경우가 많고, 추가노동 시간이 늘어나더라도 그에 따른 임금이 지급되기 보다는 급여의 상한액이 정해져 있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무료노동이나 공짜야근의 상황이 등장하고 있다.

주6일 근무하는 식당의 구인광고에도 포괄금액이 적혀있을 뿐 기본급이나 고정 연장시간, 휴게시간 및 휴일에 대한 설명은 찾기 힘들다. 포괄임금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내담자의 근로계약서에는 ‘연차수당’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종종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근로계약서는 노동자의 휴일사용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위법의 소지가 다분하다. 

중요한 것은 포괄임금계약을 했더라도 실제 일한 시간에 비하여 임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근로조건이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 제한과 법정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에 엄격하게 인정되는 포괄임금제의 무분별한 확대가 우려된다. 하지만 취업을 위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포괄임금제의 계약서에 문제제기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이 체결됐다면 이 점을 염두에 두자. 나의 매일의 노동시간을 기록하자.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하게 되는 경우 노동시간에 대한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실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 중 많은 수는 자신이 일하는 시간을 핸드폰 앱이나 메모장에 기록하면서 관리하는 경우도 많다.

일한만큼 받고 일하는 것, 나의 노동시간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