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69)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사계절, 2022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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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휠체어에 색칠을 하고 장식을 덧입혀서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장애’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나 상상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필자처럼 장애에 대해 무지하거나 생각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청각 장애인이자 SF소설가인 김초엽과 지체 장애인이자 변호사인 김원영의 협업으로 탄생한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와 과학기술의 다양한 관계 맺음에 대해 성찰하는 책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이보그(cyborg)는 자기 제어에 관한 학문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로서, 과학기술에 의해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증강 인간을 의미한다. 영화 속 로보캅이나 탄소 섬유 재질의 의족을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던 피스토리우스 같은 인물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사이보그는 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아이콘이 되어 SF영화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몸을 기계로 대체하여 강력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장애는 더 이상 결함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고 장애인들이 지금처럼 여러 사회 활동에서 소외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현재 장애에 적용되는 과학기술은 대부분 이 지점을 겨냥한다. ‘장애를 극복하는 따뜻한 기술.’ 그렇다면 장애인이 사이보그가 되는 일은 마냥 긍정적인 것일까?

두 저자는 통념과는 달리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장애인이 기계의 도움을 받는 사이보그적인 존재라고 인정한다 해도 대부분의 장애인이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지도 않을뿐더러, 기계와 연결되는 일이 하루아침에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되는 것처럼 반가운 일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애인과 결합된 현실의 기계는 자주 고장 나고 접촉면에 염증을 일으켜서 항상 신경 쓰이는 값비싸지만 불완전한 기술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자들은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기술이 장애를 그저 온정적인 시혜나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심지어는 소외시키기까지 하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상성에 대한 열망이 과학기술에도 강하게 투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성 규범을 따르는 과학기술은 장애를 결함이자 결여된 상태로 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는 손상에 따른 비정상적 상태이므로 치료의 대상으로 쉽게 환원된다. 하지만 정상성 규범에 입각한 장애에 대한 시선은 장애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고, 현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장애(disability)는 단지 몸의 특정한 기능이 결여(dis-ability)된 상태가 아니라 ‘정상이 아닌 몸’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획득한 일종의 신분(지위)에 가깝다. 따라서 고도로 발전한 테크놀로지가 기능의 결여를 보완한다 해도 여전히 장애는 존재할 수 있다.”(155쪽)  

어떻게 하면 정상성 규범에서 벗어나 장애를 달리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들이 내리는 처방은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세심하게 듣자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둘러싼 논쟁이다. 2019년부터 국내 스타벅스 매장을 시작으로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퇴출되고 친환경 종이 빨대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플라스틱 주름 빨대가 없으면 음료를 마시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환경 보호라는 대의를 위해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한 기업이나 소비자들은 장애인의 존재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장애 활동가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빨대가 필요한 장애인들은 직접 친환경 빨대를 가지고 다니라는 요구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장애인의 권리 보호나 기술과 장애의 접근성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환경 보호라는 보편적 가치가 장애 당사자들의 권리와 상충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계속해서 논쟁하고 결국 타협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빨대를 퇴출하고자 했던 이들은 장애인의 입장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난 후에야 이런 문제를 이해했다는 점이다. 

요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문해력’이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고 있다. ‘심심한 사과’ 논란이 보여주듯이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에 관한 문해력’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시급히 갖추어야 할 능력이 아닐까 한다. 장애 당사자의 경험, 특히 과학기술과 더불어 일상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는다면 과학기술을 통해 장애가 모두 극복되는 유토피아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나 기술만능주의만이 판을 치게 될 것이다. 

물론 저자들은 자신들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오롯이 대변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 사이보그와 장애를 연결하는 시도가 자칫 현실의 장애 문제와는 동떨어진 사변적인 논의로 흐를 것을 걱정하고, 이런저런 이론에 익숙한 자신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장애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처럼 보일까 우려한다. 또 장애를 온정적으로 대하는 과학기술에 비판적이면서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고민을 내비치기도 한다. “장애를 고치는 약이 나와도 먹지 않겠다.”라고 외치는 장애 활동가를 보고 그 확신에 존경을 표하면서도 그런 확신이 다른 조건을 살아내는 장애인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덮어버리지는 않을지 우려를 표하는 김원영의 태도는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조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과학기술과 관련하여 장애인의 목소리를 계속 강조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장애 정체성이나 존재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장애인의 몸으로 물질세계와 직접 상호 작용하는 구체적인 경험이고, 그 경험은 개인의 자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278쪽)

이런 장애 경험을 통해 우리는 취약함이 극복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차이로 인식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 되는 세계보다는 취약한 사람들이 제 자신으로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미래, 어떤 손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손상된 몸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받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라는 저자들의 믿음은 장애에 적용되는 과학기술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서로의 불완전함, 서로의 연약함, 서로의 의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계의 존재 방식을 저자들은 ‘연립(聯立)의 존재론’이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은 불완전한 우리가 함께 서 있을 수 있도록 서로를 잘 돌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돌봄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할 때야 비로소 진정한 ‘따뜻한 기술’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불신하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를 진정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 설령 불가능한 꿈이라고 해도 사회 전체와 개개인의 시민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아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수면의 질이 점점 떨어져서 걱정인데,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 황임경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박사. 의철학, 의료인문학, 서사의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팬데믹, 모빌리티, 테크놀로지》(공저), 《Body Talk in the Medical Humanities: Whose Language?》(공저),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2》(공저),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공저), 《내러티브 연구의 현황과 전망》(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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