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 후기

과거를 잘 정리하는 것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번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 <기억·저항·평화>는 4.3미술제의 중요한 매듭이자 물꼬였다. 

1부 ‘기억’에서 지난 시간들을 환기하고 성찰 지점을 짚어 보았다면, 2부 ‘저항’, 3부 ‘평화’에서는 내일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서를 찾는 시간이었다. 최태만(미술평론가)과 리춘펑(작가·기획자)의 발표를 통해 미얀마와 홍콩의 정세를 톺아보며 현재 진행 중인 노골적인 국가 폭력에 대응하는 예술적 저항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준기(미술평론가)와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아키비스트·기획자)의 발표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예술 연대의 장으로서 4.3미술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탐라미술인협회(회장 강문석)는 지난 1일 토요일 제주시소통협력지원센터 5층에서 &lt;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gt;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탐라미술인협회(회장 강문석)는 지난 1일 토요일 제주시소통협력지원센터 5층에서 <4.3미술 국제 학술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연대의 가능성

4.3미술제가 동아시아의 지역과 연대해야한다는 생각은 고 김현돈(철학자·미술평론가)의 글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그는 12회 4.3미술제 <동행>(2005) 글에서 “이제 4.3미술은 평화·인권이란 보다 확장된 주제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미술 역량을 결집하고, 우리와 전후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미술인들과 연대하여 ‘동아시아 평화미술제(가칭)’를 기획해보는 것도 미래의 한 의미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이는 21회 4.3미술제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 - 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2014)에서 첫발을 뗐고 이후 현재까지 오키나와, 타이완, 홍콩 등의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실현되고 있다. 2019년에는 김준기와 박경훈(작가), 양동규(작가), 홍성담(작가), 토미야마 카즈미 등이 모여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EAPAP)가 출범하기도 했다.

4.3미술제 초기 10년은 새로운 시도, 학술 행사, 교류 전시, 공동 창작, 출판 등이 추진되는 역동적인 시기다. 이후 10년은 주도 세력의 세대 교체가 요구되는 동시에 제도권으로 진입하는 시기로 보여진다. 2000년대는 4.3특별법(약칭) 제정 공포, 진상 조사 보고서 발행, 대통령의 공식 사과,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등이 진행되며 4.3이라는 역사와 대규모 희생이 국가에 의해 인정되고 공식 추념 제도를 갖춰갔다. 이 시기의 탐라미술인협회(이하 탐미협)는 4.3평화기념관 내외 전시 설치를 위한 작품을 제작했고, 4.3미술제 공간 또한 제주시 원도심에서 4.3평화기념관 예술전시실로 옮겨갔다. 

그리고 2014년 21회부터 25회까지 5년 동안 외부 전시 감독을 선임하여 운영되었고, 이후 26회부터 현재까지는 ‘4.3미술제 준비위원회’에서 기획 추진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전의 4.3미술제가 탐미협 회원전이었다면 최근 10년 동안 개최된 4.3미술제는 국내외 참여작가가 40~60명에 달하는 대규모 국제 연대 기획전이었다. 4.3미술제의 기획 운영 방식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해마다 수십점씩 새롭게 창작되는 작품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23회부터 25회까지 예술·전시 감독을 맡았던 김유정(미술평론가), 양은희(기획자·미술사가), 안혜경(기획자·아트스페이스씨 대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점이다. 무엇보다 이들(21회부터 25회까지 예술·전시 감독을 맡은 탐미협 외부 전문가)은 제주도립미술관 등 제도를 활용하고 운용 기금을 확대하여 4.3미술제가 제주도의 공식 행사로 도약하는데 밑돌을 놓았다. 또 국내외 걸출한 작가를 초대하고, 다양한 연계 행사를 개최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1회부터 25회까지 전시와 관련한 글이 다방면으로 생산되었고, 모두 도록으로 엮어 자료를 남긴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성과다. 

제주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4.3미술제를 직접 체험하고 관계해 왔기 때문에, 이들의 기획은 탐미협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경계에서 오랜 시간 깊게 고민한 결과로서 의미 있다. 양은희는 24회 4.3미술제 <회향(回向), 공동체와 예술의 길> 당시 제주도립미술관이라는 제도와 제주시 원도심 13개의 문화공간을 잇는 시도를 했고, 좌담회 시리즈 ‘담소’를 기획 진행하여 제주 미술 생태계의 현황과 고민 등에 대한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4.3미술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기록이 인상깊다.

그는 “동일한 작가들이 반복해서 4.3미술제를 이끌어가는 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4.3미술제는 “적극적으로 확산해야” 하고, “많은 작가들이 4.3미술제를 하나의 허브처럼 생각하고 그 시대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고, 전달하는 공간으로 생각을 한다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혜경은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 당시 4.3의 다양한 층위를 현재적 관점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4.3 70주년을 맞아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국·영·일문으로 된 초대장을 제작했다. 또 전시기간 배포될 수 있도록 작가 및 작품 소개가 국·영문으로 수록된 카달로그 사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4.3미술제와 출품 작가들을 국내외로 소개하는 좋은 매개가 되었다. 이 외에도 참여작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수 차례의 사전 워크숍, 제주대학교 미술학부 학생들과 진행한 마중물 프로젝트, 전시 연계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세대와 관객을 고려한 행사를 개최했다.

맨 왼쪽부터 23회, 24회, 25회 4.3미술제 포스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맨 왼쪽부터 23회, 24회, 25회 4.3미술제 포스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동안 개최된 4.3미술제 연계 학술행사는 적지 않다. 자료에 따르면 1회 4.3미술제 <닫힌 가슴을 열며>(1994) 당시 “4.3미술의 현재적 의미”(김유정 발표), “민족미술의 뿌리와 지역미술의 전망”(원동석 발표) 세미나가 있었고, 15회 4.3미술제 <개토開土-60년 역사의 변증>(2008) 당시 기념 심포지움 “4.3미술 15년의 궤적, 역사와 미술의 관계맺기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 1994년 세미나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2008년 심포지움 당시 제작한 자료집 겸 전시 도록은 귀한 자료다. 지금도 발췌 인용되는 성완경(미술평론가), 김종길, 박경훈의 글이 바로 이 도록에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후 21회 4.3미술제 <오키나와 타이완 제주 사이 - 제주의 바다는 갑오년이다!>(2014) 연계 국제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당시 생성된 자료 또한 제주에서 동아시아 평화 예술 연대를 시도하는 시작점으로서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24회에도 학술 심포지움이 시도되었지만 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이를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기록과 아카이브의 중요성 때문이다. 생각과 말들이 종이 위에 안착하지 못하면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 해마다 4.3미술제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고찰 과정이 기록으로 남는 것은 그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1차 사료로서 훗날 지금을 짐작해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관계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말하게 하는 일. 기록하는 일. 이러한 연대의 힘이 최근 10년 4.3미술제의 동력이었고, 앞으로도 더 큰 가능성을 열어 주리라 믿는다. 

우리 시대의 ‘불숨’

첫 번째 글이 4.3미술의 예술적 성취에 대해 질문하는 글이라면, 본 글은 사회적 실천에 대해 질문하는 글이다. 30년전 ‘불숨’이 4.3을 말하는 것, 유가족들과 함께 애도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불숨’은 무엇일까. 나는 25회 4.3미술제(2018) 당시 참여작가 워크숍 마지막 프로그램에서 강의했던 김종민(전 4.3위원회 전문위원)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여러분들은 4.3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합니다.” 

제주 전역의 마을을 다니며 7천명에 달하는 생존희생자의 증언을 채록하고, 4.3연구의 1차 사료가 된 제민일보 연재 <4.3은 말한다>를 만들어낸 장본인의 말이기에 현장은 고개를 숙여 고요해졌었다. 

지난 2018년 4.3미술제 참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에서 강사로 참여한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8년 4.3미술제 참가 작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에서 강사로 참여한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국가 주도 4.3기념사업의 대표 슬로건이었던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이제는 ‘완전한 해결’과 같은 문장들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던 제주도민들의 저항은,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4.3은, 희생자 1인당 국가 보상금 9천만원 지급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올해 4.3추념식장에 나타난 서북청년단이 그것을 보여 준다.

4.3미술제는 이미 2005년부터 평화와 인권이라는 확장된 주제를 제안하며 발전해왔다.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고 대통령의 역사적인 공식 사과가 있은 직후다. 이는 1980년대에 불을 지핀 4.3진상규명운동과 희생자명예회복운동의 결과이자 국내외가 주목하고 있는 성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외람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 본다. 4.3진상규명운동과 희생자명예회복운동에 복무하는 미술로서 4.3미술제는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 말이다. 이 두가지 모두 미해결 상태이고, 대한민국이 섬으로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미해결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4.3미술제는 국가 기금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국제 연대 기획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4.3미술제가 좀 더 큰 폭으로 진자운동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제는 동아시아를 넘나들게 될, 이렇듯 넓고 아름다운 광장이 기념 사업으로 안주하지 않기를 바란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가, 평화로움과 동시에 벼락같은 긴장감이, 충격이 있기를 바라 본다. / 끝

※ 홍콩에서 온 리춘펑의 발표에서는 좌우의 경계, 정치가 만들어 낸 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이 흥미로웠다. 오해가 아닌 대화, 지역과 지역의 연결과 협업은 최근 나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에서 온 토미야마 카즈미의 발표에서 던진 질문에 대해서도 답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의 경향을 언급한 내용들은 논쟁점이 있다. 하지만 본 글의 논지에서 벗어나는 내용이기에 이 정도의 언급으로 아쉽게 남겨둔다.


#박민희

시각예술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사회와 역사 읽기에 흥미를 갖고 독립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2회 4.3미술제 <얼음의 투명한 눈물>(2015) 아키비스트로, 25회  4.3미술제 <기억을 벼리다>(2018)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2017년에는 4.3미술제 아카이브 웹페이지를 기획 제작했으나 2018년 이후 업데이트하지 못하고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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