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31)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 태도를 돌아본다

2019년 유엔 본부에서 한 고등학생이 세계 60여 개국 정상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세계로 보도되었고 이후 수백만 명이 기후파업에 동참했다. 잘 알려진 기후 운동의 상징적 인물, 스웨덴의 환경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이야기다. 

2019년 그는 우리 나이로 17살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미숙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다. UN에서 트럼프와 눈싸움을 하는 그를 조롱하지도 않았고 어린 나이에 정치에 관심을 둔다고 핀잔을 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벨평화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2019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이 되었다. 이후 세계 각국의 청소년 활동가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몽골의 툰베리’, ‘인도의 툰베리’라는 식의 별칭이 따라붙으며, 청소년 환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을 반대하며, 채식 생활을 하며 세계 곳곳에서 환경 시위를 하고 있다. 

그에게 아무도 배후 세력이 누구인지 따져 묻지 않는다. 만일 배후가 있다면 기후위기를 조장하고 유발하는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레타 툰베리 같은 청소년 환경활동가들이 나오면 좋겠다는 말들이 흘러 다녔다. 툰베리는 기후위기를 문제로 인식하지만, 행동을 주저했던 이들에게 행동의 계기가 되었고 견고해 보이는 신자유주의 성장 담론에 균열을 내며 연대의 씨앗이 되었다. 한 청소년의 등교 거부 운동이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시계를 잠시 앞으로 돌려보자. 지난 4월 6일 서귀포 청소년수련관에서 제2공항 기본계획안 2차 도민경청회가 열렸다. 이날 찬반 양측의 토론이 끝나고 방청객의 한 청소년이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토론과 의견 듣는 건 이게 아니었다”며 “욕설과 비방이 난무한데, 이것이 의견이냐”, “저희(청소년)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공부해서 열심히 바꾸라고 하는데, 어른들이 나서서 미래를 망치고 있어 공부를 하지 않고 여기에 온 것”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청소년의 발언이 있고 난 후 “감성팔이한다”, “학생이 맞냐”는 식의 일부 참석자들의 폭언과 욕설이 난무하며 경청회는 결국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당일 현장을 전하는 뉴스를 보며 ‘그래, 한국의 학생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지!’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 발언을 대하는 극심한 온도 차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위기 얘기를 하며 우리의 미래를 돌려달라고 하는 건 대단하고, 제주의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제2공항은 우리의 미래를 망칠 것이라고 얘기하는 건 학생의 본분을 잊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인가? 이중적 판단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지난 6일 제2공항 기본계획 도민 의견 수렴 경청회에서 발언하는 정근효 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6일 제2공항 기본계획 도민 의견 수렴 경청회에서 발언하는 정근효 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청소년의 발언에 화를 낸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몇 가지 문제가 떠오른다.

학생들이 어떻게 알고 경청회에 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제2공항에 대해 저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IT강국 대한민국의 정보 접근성을 생각하면 청소년들의 참석이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청소년들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굳이 인터넷을 찾지 않더라도 제주도가 걸어둔 현수막이 워낙 많아 길거리만 다녀도 경청회를 하는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주 제2공항 관련 자료는 넘쳐난다.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위기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한 정보를 가지게 된 것도 정보통신기술 때문이지 않은가. 

다음으로 학생들이 어떻게 그런(제2공항의 필요여부) 판단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소위 ‘뭘 안다고 지껄이냐’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는 일명 ‘사주론’도 같은 맥락이다. 예전부터 사주를 받아본 사람들은 특히 그런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학생들은 미숙하다고 여기는 차별적 경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학생들은 미숙한가? 그렇다면 학생들을 미숙하다고 여기는 우리는 성숙한가? 토론회장에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이 오히려 미숙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미숙한 존재이지 않던가. 공론화니, 숙의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끝으로 학생들은 학교에만 가야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학생은 학교 이외의 장소에는 가면 안된다는 입장과 사회문제는 학생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학생이 갈 수 없는 장소는 정해져 있다. 소위 청소년 유해환경에는 갈 수 없다. 그 이외의 장소에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더욱이 경청회가 열린 장소는 청소년수련관이다. 다음으로 사회문제는 청소년과 관련이 없을까. 곧 다가올 4.19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청소년의 사회참여는 그레타 툰베리를 통해 노벨상까지 들먹이지 않았던가. 왜 우리는 우리 곁의 소중한 이들은 가벼이 여기고 저 멀리 있는 이들은 존중하는가. 우리 곁의 소중한 청소년들에게 학교나 가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다.

끝으로 사족을 달자면 학생들에게 툭툭 던지는 반말을 잠시 짚어보자. 대체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는 일단 반말부터 하고 본다. 그런데 학생에겐 무조건 반말을 해도 될까? 가끔 사극을 보면, 아이들에게 존칭을 쓰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조선시대가 배경이라면 왕족에겐 누구나 높임말을 한다. 언어의 위아래에는 이렇게 무의식중에 계급적 생각이 깔려있다. 왕족, 평민처럼 나이를 계급처럼 여겨 나이가 많으면 높이고 반대면 낮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 계급사회를 깨뜨리고 나온 사상이 ‘동학’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생각은 역으로 하늘 아래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조선 시대에 왕이나 평민이나 모두 똑같다는 생각은 혁명적이었다. 

지독한 동학교도 중의 한 사람이 소파 방정환 선생이다. 방정환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으로 3.1운동을 주도한 동학의 지도자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이기도 하다. 동학의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은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다. 어린이를 때리는 것이 곧 하느님을 때리는 것이라 했다. 동학에 흐르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에 어린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말고 쳐다보라는 동학의 생각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 날을 만든 배경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경어를 사용하자는 것도 김기전 선생이 이미 100년 전에 주장한 말이다. 일상에서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기 힘들다면 학교에서부터 그런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다시 학생들에게 반말을 하는 문화를 돌아보자. 우리 청소년들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존중해야 한다.

제2공항 찬반 여부를 떠나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제주에서 이런 일이 생겨 생각을 나눌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제2공항은 청소년이 살아갈 세상의 일이다. 2030년에 20대 중반이 되는 지금 고등학생들이 제2공항을 안고 이고 함께 살아가야 할 그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균열을 낼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경청하자!


#안재홍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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