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14) 고향 뻐꾸기

 

고향 뻐꾸기
 
내 고향 잡목 숲에 텃새 한 마리 숨어서 산다
고 씨 집안 대물림에 늙어서도 목청이 고운
4.3 때 청상이 되신, 올해 구순의 고모가 산다

오름이 오름을 막고 무심이 무심을 불러
해마다 뻐꾸기 소리 제삼자처럼 듣고 있지만
고모님 원통한 숲엔 오뉴월 서리도 내렸으리

반백 년 한라산은 등신처럼 말이 없고
“간곡 간곡, 꺼꾹꺼꾹” 숨어 우는 우리 고모
간곡히 위미 사투리로 되레 나를 타이르시네.

/ 1990년 고정국 詩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시작노트

무작정 타임머신 타고  50년 전의 고향마을로 돌아갔습니다. 이르는 처소마다 그때의 사람들이며, 올레 골목골목이며, 초가지붕이며, ‘빌레’위로 머리 풀고 쓰러지는 파도자락이며, 이곳저곳 산촌초목들이 담담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4.3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그 참상의 중심에, 고모부님의 시신을 수습하던, 고모의 모습을 채록 과정에서 들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체험했던 이곳 위미 마을에선 새들조차 고향사투리로 운답니다. 

그처럼 1947년생인 내가 배운 위미 사투리에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 마을 망오름 뻐꾸기는, “간곡 간곡, 꺼꾹 꺼꾹…”, 이제 그만 서로 화합하고 정답게 살아달라는 고모님 염원이, 저 간곡한 소리에 녹아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일 보초, 이 보초 …, 너는 졸고 있지 않나?”/ 해 지면 순번제로 보초섰던 아낙들도/삼 보초 사 보초 하며 하늘나라로 갔더란다.”

“바다는 그로부터 웃음소릴 내지 않았네/올레길 초가마다 제사상에 불을 켠 밤/홀어미 한숨소리에 해조음이 슬펐네.”

-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에서

그때 첫돌박이 나를 업고 바닷가 숨을 곳을 찾아 달음질쳤던, 당시 열 살 큰 누이는 이제 팔순 중반 나이가 되어, 부모님 제삿날이면 찾아와 마디 굵은 손가락으로 이미 칠십대가 돼버린 오라비 얼굴을 쓸어주기도 한답니다.


#고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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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2),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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