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2) 제주도 산은 험준한 산이라 악한 사람 잘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악산 : 악산(惡山), 험준한 산
* 악혼 사름 : 억척스러운 사람, 독한 사람

제주 섬은 육지의 곡창(穀倉)인 평야 지대와는 판연히 다르다. 섬 전체가 한라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라산이 영산이라고 하지만 사방으로 험한 골짜기나 비탈진 자드락으로 평평한 땅이 없다. 산기슭을 내려야 좁은 농토가 있을 뿐이다.

좁고 거친 땅, 게다가 옛날에는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따비’라는 원시적인 연장으로 잡풀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땅을 갈아엎어 밭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황무지를 농토로 개척한 것이다. 비료도 없던 시절, 통시(돼지 기르던 변소)에 나던 썩은 짚과 풀을 섞은 퇴비 그리고 오랫동안 항아리에 오줌을 받아 썩혀 밭에다 뿌리는 거름(요소)이 고작이었다. 추석 명절날 차례를 지내고 오줌 허벅을 지어 밭으로 오르던 여인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제주 밭담길을 따라 시선을 올리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한라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거칠고 메마른 땅에도 주저앉지 말고 어떤 고된 일에도 끄떡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험악한 한라산을 닮아서 말이다. 그런 악착같은 사람이 아니고는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생활의 여유는 꿈도 못 꾼다 함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잡풀이 무더기로 자라던 들판을 갈아엎어 만든 명색 밭이라 보리며 조 같은 농작물이 잘 자랄 리 만무했다. 그래도 흙을 북돋우고 물을 주며 정성껏 농사를 지어 연명해 왔으니, 제주인이 얼마나 억척스럽게 강인했는지 알고도 남는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간은 아무래도 환경에 잘 적응한다. 악산 둘레에 밭을 만들어 농사를 할 만큼 강했다. 마을 가까이 내려갈수록 땅이 좋아 문전옥답이라 했다. 

조나 보리가 얼마나 여물었던가. 산으로 오를수록 밭이 지심이 얕은 박토(薄土)라 거기엔 산디(산도)나 모물(메밀)을 가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논밭으로 벼를 재배하는 다른 지역 농민들은 듣기도 처음일 것이다.

‘제주 산은 악산이난 악혼 사름 잘뒌다’

이게 어떤 말인가. 행간을 읽어야 하리라. 거칠고 메마른 땅에도 주저앉지 말고 어떤 고된 일에도 끄떡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험악한 한라산을 닮아서 말이다. 그런 악착같은 사람이 아니고는 농사지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생활의 여유는 꿈도 못 꾼다 함이다. 

어떤 얘긴가. 기가 막힌 얘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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