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3) 쓰기 좋은 게 솔박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솔박 : 제주에서 쓰던, 한 되 들이만큼 나무를 파서 만든 둥그스름한 그릇

제주 농촌에서 흔히 쓰던 목그릇은 나무를 파서 만들어 곡물을 담거나 퍼낼 때 썼다. 곡식을 장만할 때, 이를테면 까불러 바람에 불림질할 때면 으레 솔박을 사용했다. 솔박에 담아 부으며 껍질이나 쭉정이를 바람에 불려 골라냈고, 골라낸 알곡을 맥(멱서리)에 담을 때도 없어서는 안되는 그릇이다.

정육면체 모양의 됫박이 있었으나. 그것은 솔박이 조금 진화한 것이고 옛날부터 줄곧 써 온 것은 솔박이었다. 그렇게 만만하게 쓰이면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긴요한 도구였다.

곡식을 바람에 불림질하며 정선(精選)해 장만할 때, 필요에 의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바꿔 담기 위해 푸고 담을 때, 양을 몇 되라 헤아릴 때, 때로는 찐감저(삶은 고구마)나 대축(옥수수) 따위를 넣어 머리맡에 두고 군것질할 때…. 농촌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의 하나였다.

농촌 살림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솔박같이 없어서는 안될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농촌 살림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솔박같이 없어서는 안될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쓰기 좋은 솔박인다.’

다양하게 쓰이는 솔박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면서, 사람에 빗댄 은유로 보면 훻씬 흥미롭다.

농촌 살림 이곳저곳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솔박같이 없어서는 안될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밭갈이면 밭갈이, 마차 일이며 마차 일, 밭담을 쌓고, 초가지붕을 일고, 바당일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게 없는 쓸모 있는 사람을 ‘솔박’이라 했음 직하다.

그렇게 다양한 능력과 솜씨를 겸비했으면서도 우쭐대거나 공치사하지 않은 순박한 사람, 그래서 ‘쓰기 좋은 솔박’이라 함이다.

손에서 놓이지 않을 만큼 다양하게 사용되는 바가지라 해서 ‘손박’, ‘솔박‘, ’좀팍세기’, ‘좀팍’이라고도 부른다.

장방형의 원통형으로 가벼운 나무인 닥낭(닥나무)나 폭낭(팽나무) 등을 피사 만들어 가볍기는 하나, 약한 나무인데다 하도 박하게 쓰기 때문에 한쪽이 쉬이 닳는다.

날로 번영을 누리는 제주에 솔박 같이 유용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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