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24) 조천관만 가면 칡잎도 달다

조천읍 연북정. 사진=김관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br>
조천읍 연북정. 사진=김관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조천관 : 제주시 조천읍 지역을 예전에 조천관이라 했다
  *가민 : 가면, 당도하면
  *끅닙 : 칡잎
  *돈다 : 단다. 달다, 맛있다

옛날에는 원근(遠近)에 관계 없이 걸어서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녔다. 섬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섬 돌래기’라 했다. 짚신 돈돈이(단단히) 들메 신고 나섰으니 상당한 기백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에 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행여 무사하면 다행이겠으나, 700리 길에 몸이 아프거나 다리가 부상을 당할 경우를 생각할 때,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오랜 셍월을 모진 비바람 속에 맞서 온 제주인들 아닌가. 강인했다. 섬 돌래기쯤 조금 먼 외방에 갔다 오는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풍요하고 편리한 시대를 호의호식하며 사는 우리로는 도저히 생각이 미치지 않는 일이다.
  
섬도 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하물며 조천관쯤이야 대수겠는가. 

관덕정에서 30리 거리다. 하지만 참기 어려운 것이 허기(虛氣)다. 가다가 우물을 찾아 물로 고픈 배를 채운다 하나 정도가 있는 법. 곯은 배를 끌어안고 조천관에 이르렀지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으랴. 
  
길섶에 무성힌 칡 숲에 주저앉이 칡잎을 두 손으로 훑어서는, 입에 넣어 질겅질겅 씹을 수밖에.
  
못 사는 형편에 흉년이라도 들며 초근목피(草根木皮)를 가리지 않고 먹었던 가난한 시절 이야기다. 

필자도 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어지간히 가난에 부대껴선지, 밥 그릇에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종이 한 장도 함부로 쓰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배불리 먹고 편하게 살면서 가끔 듣는 조상들의 못 살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섬의 엄연한 역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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